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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기다릴 줄 아는 믿음

우리 한국 민족은 이중적인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해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은근과 끈기’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인내심이 많은 민족인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잠시도 잠시도 참지를 못하는 조급성을 지닌 민족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분이 말하기를,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숱한 외침(外侵)을 받은 역사적 경험 때문에 ‘고난을 견뎌내는 인내의 DNA'가 있다고 했습니다. 단군 신화에 보면,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으면서 끝까지 잘 견딘 곰은 인간이 되었지만 그것을 참아내지 못한 호랑이는 인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 단군신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한민족의 근성은 ’은근과 끈기‘로 특징지어집니다. 참고 기다리며 견디는 인내의 근성이 몸에 배어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는 우리 속담이 말해주듯이 몹시 성급한 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국에 가면 한국인의 trade mark는 ‘빨리빨리’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외국여행을 하다 보면 Korean인 것을 알아보고는 "빨리빨리”하면서 놀려댄다고 합니다. 이런 조급한 민족성 덕분에 우리 나라는 현대 인터넷 시대에 IT 산업에서는 세계 첨단을 걷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IT시대에는 분초를 다투기 때문에 온 세계가 ‘빨리빨리’ 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삼성전자를 필두로 5G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급한 덕분에 많은 덕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면에 한 순간 콩죽 끓듯이 뽀르르 끓다가 순식간에 냉랭하게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어떤 성도님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자기의 조급한 성격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조급한 성격을 고쳐주시옵소서. 저에게도 인내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지금 당장 그렇게 해주시길 원합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이 성도는 조급한 마음을 고쳐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성급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성격을 고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을 요합니다. 어쩌면 온 평생이 다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그 급한 성격을 고쳐달라고 하니 그렇게 인내심이 없고서야 어떻게 급한 성격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야고보서 5:7-11에는 인내에 관한 교훈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야고보서 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길이 참으라’는 말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참으라는 뜻입니다. 길이 참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17년 매미’입니다. 한국의 매미는 유충으로 땅 속에 있다가 1-2년이면 매미로 부화를 합니다만, 이곳 미국을 비롯해 북미주에 사는 Magicicada spp라는 매미는 부화되기 전에 유충으로 땅 속에서 지내는 기간이 무려 17년이나 됩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17년 매미’입니다. 저는 한때 테니스를 즐겼는데, 하루는 테니스 코트에 죽은 매미가 즐비하게 깔려있어 ‘이거 웬 일인가’하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미국 생활을 오래하신 목사님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를 하게 되었는데, 한 마리의 유충이 매미가 되기까지 장장 강산이 거의 두 번이나 변하는 17년이라는 긴 인고의 세월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이쯤 되면 ‘인내의 챔피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부화하는 시기도 일정해서 7월경에 부화를 하는데 부화한 후에 짝짓기를 하기 위해 수컷이 얼마나 큰 소리로 울어대는지 귀가 따가울 정도입니다. 암컷을 부르기 위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할 수 있는 한 큰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긴 세월을 기다려 부화를 한 다음 짝짓기를 하고는 겨우 한 달도 채 못 살고 죽고 맙니다.

야고보서 5장에는 인내를 구체적으로 교훈하기 농부의 인내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농부는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며 길이 참습니다. 비가 잘 오지 않는 이스라엘 땅에서는 1년에 딱 두 번 우기가 있는데, 가을 파종 때 내리는 비를 이른비라 하고, 봄 추수기에 내리는 비를 늦은비라고 합니다. 이른비와 늦은비가 제 때에 내려주어야 1년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기가 되면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애간장을 태우며 기다리니 이것이 인고(忍苦) 즉 ‘고통스러운 기다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기다림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래서 한자어 ‘참을 인(忍)’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천정에 가는 실로 매단 예리한 칼끝이 방바닥에 반듯하게 누운 사람의 심장을 겨누는 형상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참을 인’ 자를 만들 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것 같습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입니다. 농부는 이른비 늦은비도 기다려야 하지만, 수분을 섭취하고 햇빛을 받아 일정 기간 자라도록 지켜보아야 하며, 거름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며 병충해가 생기기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홍수가 나지 않을까, 태풍이 불지 않을까 정말 노심초사하며 한 해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중학교 시절까지는 농촌에서 자라면서 농사 일을 도왔기 때문에 농부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을 추수기에 홍수가 나서 논둑이 터져 모래가 휩쓸려 들어오는 바람에 벼가 다 모래 속에 묻혀버리는 것도 보았고, 보리 추수기에 깜부기라는 병이 들어 보리 농사를 망쳐버려 속상해하는 모습도 보았으며, 한 순간 불어오는 태풍에 과일이 우수수 떨어져 낙과(落果)를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한숨짓던 모습도 새록새록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농부에게는 남다른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추수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한 마디로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늘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농부가 콩이 속히 자라기를 바라는 조급한 마음에 하루는 작심하고 콩 줄기를 위로 뽑아 올렸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조급한 마음을 가진다면 아무 것도 거둘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숙성기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아침에 성숙한 신자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바람에 시달리고 쨍쨍 내리쬐는 태양의 연단과 무서리도 견뎌내는 가운데우리의 신앙인격은 조금씩 서서히 무르익어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5:3-4을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 인내할 수 있다면 그 결과로 ‘연단’이라는 열매를 얻게 되는데, 여기서 ‘연단’이라는 말은 영어성경에는 ‘character’(인격)라고 번역돼 있습니다. 인내를 통해 우리 인격이 성숙해진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6장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오래 참아 마침내 복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이 갑절의 은혜를 받은 비결도 다름 아닌 인내였습니다. 한때 청소년들의 혼전순결 운동의 모토가 ‘진정한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다’(True love waits.)였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이 모토를 패러디해서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기다리는 것이다’(True faith waits.). 우리 모두 인내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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