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이민자의 세 가지 삶의 유형(AAA)
우리는 Korean American 즉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국제경기에서 한국과 미국이 겨루게 될 때 어느 편을 응원해야 할지 마음에 갈등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럴 때마다 우리의 정체성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로서 한국인과 미국인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은 흔히 바나나에 비유되듯이 겉은 노란색이나 속은 하얀색인 이중적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에 따라 다소간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보다 한국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다 미국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살고 있는 한 어느 누구도 완전히 한국적일 수도 없고 완전히 미국적일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떤 마음 자세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즉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이 사회에 적응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한번쯤은 정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구약성경 예레미야 29장을 토대로 세 가지 방식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 세 가지를 편의상 AAA(Triple A)로 정리해보았습니다.
1. Alienation (소외)
자기가 속한 사회의 모든 것을 무조건 배격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 사회 속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자기들만의 게토를 형성하여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Korea Town, China Town, Tokyo Town 같은 것들도 어느 의미에서는 이러한 패턴에 속하는 양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은 오매불망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생각에 젖어 바벨론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도무지 정착을 하지 못한 채 늘 마음이 붕 떠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 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늘 자신을 격리시키며, 심지어 반미운동에 가담한다면 굳이 이민을 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2. Assimilation (동화)
그 사회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가령 ‘미국 것은 양잿물도 좋다’는 식이 바로 이러한 태도에 속합니다.
(예레미야 29:8-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 바 꿈도 신청(信聽)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거짓 예언자들이나 점쟁이들이 이스라엘 동족일 수도 있겠고 바벨론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아니면 비록 신통한 꿈을 꾸었다고 말할지라도 일체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이민자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이민자들이 사는 나라의 잘못된 종교나 풍습은 일체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좋은 것만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나 우리 자녀들이 본받아서는 안 될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서는 안 될 종교나 사상이나 문화나 전통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러한 것들은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좋은 전통과 미풍양속은 잘 지키고 전파해나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3. Adaptation(적응)
그 사회의 좋은 것은 수용하고 나쁜 것은 배격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외국에 가면 불편한 점 중의 하나가 전기입니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120불 볼트를 사용하는데 한국에서는 220볼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기 면도기를 충전하는 데에도 변압기가 있어야 하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도 어답터가 필요했습니다. Adaptation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서양 격언에 “로마에 가면 로마식으로 하라”(Do in Rome as the Romans do.)라는 격언이 있는데,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적응입니다.
(예레미야 29:5-7)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여기서 세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집을 짓고 거기에 거할 것이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바벨론에 정착할 마음으로 거기에 마음을 붙이고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은 우리 이민자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살 생각으로 그곳에 간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원하지도 않았는데 강대국에게 침략을 당해 애꿎게 이국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곳에 정을 붙이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구주택인 집도 짓고 생업도 열심히 일구라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정하신 시한이 차서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그곳에 마음을 착 붙이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에 살려고 아예 마음을 먹고 이민을 왔으면서도 도무지 이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분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사정상 돌아가게 되면 돌아가더라도 일단 이곳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집도 사고 비즈니스도 하고 직장도 가지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낳고, 며느리와 사위를 보고, 자자손손 대대로 인구를 늘려감으로써 민족의 역량을 키워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곧 힘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이제는 한 가구당 한 명의 자녀도 갖지 않는, 그야말로 심각한 인구절벽의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요즘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 and South Africa)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되는 것도 인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이 위협을 느낄 만큼 큰 세력으로 부상한 것도 폭발적인 인구팽창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비록 이방인의 땅 바벨론에서 설움과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강성해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면서 살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성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차별을 덜 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차세대들이 이곳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면 우리는 이곳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우리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차세대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합니다. 경제, 학문, 언론, 문화, 예술, 예능, 체육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점차 많이 나와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중국, 인도, 베트남처럼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러 이민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력이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도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별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위해 힘쓰고 그것을 위하여 나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너희들을 포로로 잡아간 철천지원수와 같은 나라지만 그러한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도 힘쓰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까?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자기들을 괴롭히는 나라지만 그 나라에 몸담고 사는 동안에는 그 나라가 평안해야 자기들도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바벨론이 전쟁에 휩싸이고 내란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돌고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그곳에 사는 자들 모두가 힘들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힘쓰고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정이야 어떻든 이제는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공동운명체가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막연한 탁상이론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을 위시하여 위정자들을 위해, 미국 사회를 위해, 미국 경제를 위해, 그리고 미국 교회를 위해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또 우리의 좋은 것은 그들에게 소개하면서 더 좋은 제3의 문화를 창출해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은 한때 ‘Mixing Bowl 정책’을 채택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채택한 정책이 ‘Salad Bar 정책’이었습니다. Salad Bar는 여러 가지 야채를 비롯해 각종 음식들을 함께 섞지 않고 이것저것 따로 먹지만 뱃속에 들어가면 각기 자기가 지닌 영양소를 우리 몸에 공급해 준다는 이론에서 이러한 정책을 표방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Salad Bar 정책이 바로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적응방식이라고 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미국사회에서 격리되거나 동화되지 않으면서도 이 미국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되지 않도록 창조적으로 적응하는 지혜로운 이민자로서 이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1. Alienation (소외)
자기가 속한 사회의 모든 것을 무조건 배격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 사회 속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자기들만의 게토를 형성하여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Korea Town, China Town, Tokyo Town 같은 것들도 어느 의미에서는 이러한 패턴에 속하는 양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은 오매불망 조국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생각에 젖어 바벨론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도무지 정착을 하지 못한 채 늘 마음이 붕 떠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 이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고 늘 자신을 격리시키며, 심지어 반미운동에 가담한다면 굳이 이민을 올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2. Assimilation (동화)
그 사회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가령 ‘미국 것은 양잿물도 좋다’는 식이 바로 이러한 태도에 속합니다.
(예레미야 29:8-9)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 바 꿈도 신청(信聽)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거짓 예언자들이나 점쟁이들이 이스라엘 동족일 수도 있겠고 바벨론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이 아니면 비록 신통한 꿈을 꾸었다고 말할지라도 일체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이민자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이민자들이 사는 나라의 잘못된 종교나 풍습은 일체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좋은 것만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나 우리 자녀들이 본받아서는 안 될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서는 안 될 종교나 사상이나 문화나 전통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러한 것들은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좋은 전통과 미풍양속은 잘 지키고 전파해나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3. Adaptation(적응)
그 사회의 좋은 것은 수용하고 나쁜 것은 배격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외국에 가면 불편한 점 중의 하나가 전기입니다. 미국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120불 볼트를 사용하는데 한국에서는 220볼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기 면도기를 충전하는 데에도 변압기가 있어야 하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도 어답터가 필요했습니다. Adaptation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서양 격언에 “로마에 가면 로마식으로 하라”(Do in Rome as the Romans do.)라는 격언이 있는데,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적응입니다.
(예레미야 29:5-7)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하여 자녀를 생산하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취하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생산케 하여 너희로 거기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
여기서 세 가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집을 짓고 거기에 거할 것이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바벨론에 정착할 마음으로 거기에 마음을 붙이고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정황(Sitz im Leben)은 우리 이민자들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살 생각으로 그곳에 간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전혀 원하지도 않았는데 강대국에게 침략을 당해 애꿎게 이국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곳에 정을 붙이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구주택인 집도 짓고 생업도 열심히 일구라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정하신 시한이 차서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곳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그곳에 마음을 착 붙이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에 살려고 아예 마음을 먹고 이민을 왔으면서도 도무지 이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는 분들을 가끔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사정상 돌아가게 되면 돌아가더라도 일단 이곳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집도 사고 비즈니스도 하고 직장도 가지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낳고, 며느리와 사위를 보고, 자자손손 대대로 인구를 늘려감으로써 민족의 역량을 키워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곧 힘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이제는 한 가구당 한 명의 자녀도 갖지 않는, 그야말로 심각한 인구절벽의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요즘 BRICs(Brazil, Russia, India, China and South Africa)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되는 것도 인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이집트인들이 위협을 느낄 만큼 큰 세력으로 부상한 것도 폭발적인 인구팽창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비록 이방인의 땅 바벨론에서 설움과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강성해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당하면서 살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강성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차별을 덜 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차세대들이 이곳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하려면 우리는 이곳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우리의 역량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차세대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합니다. 경제, 학문, 언론, 문화, 예술, 예능, 체육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점차 많이 나와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중국, 인도, 베트남처럼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여러 이민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력이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어도 미국 주류사회에서는 별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위해 힘쓰고 그것을 위하여 나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너희들을 포로로 잡아간 철천지원수와 같은 나라지만 그러한 나라의 평안을 위해서도 힘쓰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십니까?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자기들을 괴롭히는 나라지만 그 나라에 몸담고 사는 동안에는 그 나라가 평안해야 자기들도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바벨론이 전쟁에 휩싸이고 내란이 일어나고 전염병이 돌고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그곳에 사는 자들 모두가 힘들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평안을 위해 힘쓰고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정이야 어떻든 이제는 같은 배를 타고 가는 공동운명체가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저 막연한 탁상이론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국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을 위시하여 위정자들을 위해, 미국 사회를 위해, 미국 경제를 위해, 그리고 미국 교회를 위해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또 우리의 좋은 것은 그들에게 소개하면서 더 좋은 제3의 문화를 창출해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은 한때 ‘Mixing Bowl 정책’을 채택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채택한 정책이 ‘Salad Bar 정책’이었습니다. Salad Bar는 여러 가지 야채를 비롯해 각종 음식들을 함께 섞지 않고 이것저것 따로 먹지만 뱃속에 들어가면 각기 자기가 지닌 영양소를 우리 몸에 공급해 준다는 이론에서 이러한 정책을 표방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Salad Bar 정책이 바로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적응방식이라고 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미국사회에서 격리되거나 동화되지 않으면서도 이 미국사회에서 이질적인 존재가 되지 않도록 창조적으로 적응하는 지혜로운 이민자로서 이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Number | Title | Date |
118 |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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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
117 |
나만 겪는 고난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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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5 |
116 |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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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8 |
115 |
회복탄력성(resil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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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11 |
114 |
광야를 지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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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4 |
113 |
인생은 미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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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8 |
112 |
하나님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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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1 |
111 |
하나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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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4 |
110 |
일상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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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7 |
109 |
에벤에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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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9 |
108 |
약속을 붙드는 ‘아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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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2 |
107 |
역지사지(易地思之)
|
2020.02.15 |
106 |
황금률(黃金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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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8 |
105 |
유니크한 목회, 유니크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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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1 |
104 |
자유와 방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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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5 |
103 |
날마다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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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2 |
102 |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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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6 |
101 |
고난 중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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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
100 |
“목회는 상식으로 하는 거야!”
|
2019.10.10 |
99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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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5 |
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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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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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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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3 |
89 |
이민자의 세 가지 삶의 유형(A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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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