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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기독교인과 삼일절

우리는 비록 조국을 떠나 이 미국 땅에서 코메리칸(Komerican)으로 살고 있지만 늘 조국 대한민국을 한시도 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조국이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폴란드의 유명한 음악가인 쇼팽이 한 말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가 약관 20살에 예술의 나라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는 “너는 폴란드의 자랑이 되어다오.”라며 아들의 마음 속에 조국애를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쇼팽의 선생님 역시 훌륭한 애국자여서 조국을 떠나는 그에게 조그마한 은컵에다 폴란드의 흙을 넣어 정성스럽게 싸 주며 “어디를 가든 조국을 잊지 말게. 이 한 줌의 흙을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 주게나.” 하며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공부하는 동안 힘들 때마다 “나는 폴란드 사람이다.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아야지.” 하며 열심히 노력했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누구보다도 폴란드의 이름을 드높인 애국자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도 “폴란드 흙이 담긴 이 컵을 내 무덤 속에 함께 넣어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애국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간 애국자요 애민자(愛民者)였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 구약의 선지자들도 모두 애국애민자였습니다. 특히 에스더는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일사각오의 마음으로 동족을 떼죽음의 위기에서 구해낸 정말 위대한 구국(救國) 여성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동족과 조국의 회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던 헌신적인 애국자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동족이 구원을 받는 일을 위해 자신은 버림을 받아도 좋다는 선민후사(先民後私)의 마음을 가졌던 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이 땅에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지만 장차 멸망하게 될 혈육의 조국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던 진정한 애국자의 귀감이 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제 곧 삼일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그래서 삼일절을 앞두고 언론에서도 집중적으로 3.1운동을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서 북한선교 세미나 강사로 이 지역을 방문한 적도 있는 윤학렬 영화감독이 제작한 ‘1919유관순-그녀들의 조국’이 3월 14일 한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곳 워싱턴 지역에서도 버지니아 주와 메릴랜드 주에서 동포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큰 행사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뉴욕과 뉴저지 주에서 유관순 열사 동상을 세우는 법안이 마련되는 등 3.1 항거정신을 높이 기리는 움직임이 있어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서 감사한 마음과 함께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올해는 또한 2.8 독립선언 100주년의 해이기도 해서 더욱 더 의미가 깊은 한 해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이 대한독립만세 사건에 앞장섰습니다. 그 당시 남북한을 합친 전체 인구는 2천만 명 정도였고, 기독교 교세는 그 중 1%를 조금 웃도는 25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천도교는 200만 명에 육박했고, 불교나 유교는 300만 명을 상회하는 상당한 교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3.1 운동을 주도한 33명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 천도교인이 15명, 불교인이 2명이었습니다. 절대수로 보아도 그렇지만 인구비례로 따져보아도 기독교인의 수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교통시설이나 통신시설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온 국민이 일제히 궐기할 수 있었던 것도 거미줄처럼 촘촘한 교회의 조직 덕분이었습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3.1운동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피해 상황이 반증하고 있습니다. 6개월간 계속된 만세운동으로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 종교인으로는 장로 교인이 3,348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천도교인 2,200명, 유교인 346명, 불교인 220명, 천주교인 55명 순이었습니다. 체포된 종교인의 6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3.1 운동이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유관순 열사는 선교사의 인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화여고에 재학 중인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1919년 4월 15일에 경기도 화성에서 있었던 제암리감리교회 방화학살 사건은 일제가 얼마나 악독하게 기독교를 탄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 반원들과 함께 이곳을 탐방했을 때 그 당시의 비극적인 참상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작 25만 명밖에 안 되는 기독교 인구였지만 3.1운동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자 가장 심한 탄압과 박해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한 마디로 3.1운동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었고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서는 성경 교독문(交讀文) 중에 국가기념주일, 삼일절, 광복절을 기념하는 교독문이 들어있는 이유도 기독교가 애국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새로 개정된 성경에는 이 두 교독문 대신 ‘나라사랑’ 교독문 다섯 편이 실려 있음).

우리는 지금 비록 해외에 나와서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조국의 기쁨이 곧 우리의 기쁨이요, 조국의 슬픔이 곧 우리의 슬픔입니다. 조국이 잘 되어야 우리도 미국 땅에서 어깨를 펴고 살 수 있습니다. 조국이 자랑스럽게 느껴져야 우리도 이 땅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국이 잘못되고 국제사회에서 지탄을 받으면 우리도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도 한국 땅에는 우리의 가족과 친지들과 친구들이 살고 있고, 우리의 동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의 제1 조국인 대한민국만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제2 조국인 미국을 위해서도 애국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미국에 정을 붙이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루하루의 삶이 보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민자로서 한국인과 미국인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Korean이면서 동시에 American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Korean American 즉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에서 선량한 시민으로 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해야 하며, 다방면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전서 2:1-2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禱告)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당파(黨派)를 떠나 미국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이유는, 그들이 국가경영을 잘 함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안정되고, 나라가 안정되어야 국민도 안심하고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나라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지구촌을 둘러보면 지금 이 순간에도 위정자들의 탐욕과 실정(失政)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는 제1, 제2 조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조국은 하늘나라임을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3:20은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들입니다. 우리는 장차 우리의 영원한 조국인 하늘나라로 가야할 자들입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곳으로부터 다시 오셔서 우리의 낮고 천한 몸을 당신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영광스러운 부활체로 변화시켜주시리라는 약속을 붙들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로마 황제의 직할시였습니다. 빌립보라는 도시 이름도 알렉산더 대제의 아버지인 필립 2세에서 따온 것입니다. 로마는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귀족들에게 포상으로 로마 근교의 영지를 하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나누어 줄 영지가 없게 되자 마케도니아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던 빌립보를 신도시로 개발해서 공신들에게 영지로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빌립보는 완벽하게 로마식 도시가 되었고, 로마 문화가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로마 문화는 한 마디로 노예문화입니다. 수많은 전쟁을 통해 잡아온 포로들을 노예로 부렸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로마 인구의 절반이 노예였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 중에서 절반은 시민권자였고 나머지 절반은 시민권자는 아니었으나 노예 신분을 면한 자유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비록 식민지 신민(臣民)으로서 온갖 불이익과 서러움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천국시민권자라는 신분(status)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품고 당당하게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조국인 천국을 늘 마음에 품고 하늘나라를 위해서도 애국자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러한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날마다 매순간마다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가운데 천국시민권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으로써 하나님 나라 건설에 한몫이라도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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