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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혀 길들이기

신약의 지혜서로 일컬어지는 야고보서에는 혀를 길들이는 것과 관련해 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2에는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언어생활을 지혜롭게 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경험하는 바이지만, 정말로 혀를 길들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혀는 비록 세 치밖에 안 되는 작은 지체이지만 우리 온 몸에 굴레를 씌우는 큰 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야고보서에는 아주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작은 혀의 위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3-6)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그래서 혀를 잘못 놀리면 우리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시 비유를 통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최근 캘리포니아 주에서 세 건의 화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에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고 있는데, 아직도 불길이 다 잡히지 않고 진행형이어서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희생자가 100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서울 면적만한 광활한 지역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으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혀는 보통 불이 아니라 지옥에서 솟아나오는 불길과 같이 맹렬해서 우리 인생의 수레바퀴를 송두리째 태워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을 마귀에 빗대어 화마(火魔)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언어의 기능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마치 칼이 의사에 손에 들려지면 사람을 살리는 이기(利器)가 되지만 강도의 손에 들려지면 흉기(凶器)가 되듯이, 언어도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을 지혜롭게 선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혀가 순기능을 발휘할 때는 때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좋은 예로, 한국 외교사에 가히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큼 길이 빛나는 서희의 담판을 들 수 있습니다. 고려 초에 무관과 외교관을 지냈던 서희는 거란의 1차 침략 때 적장 소손녕을 논리정연한 담판으로 설득함으로써 교전을 치르지 않고 그들을 격퇴시켰을 뿐만 아니라 강동 6주까지 덤으로 얻어내는 쾌거를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짐승과 새와 해물(海物), 심지어 벌레를 길들이는 것과 비교하면서 혀를 길들인다는 것이 정말 지난(至難)한 과제임을 매우 실감나게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7-8)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은 다 길들므로 사람에게 길들었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온갖 들짐승과 새들과 파충류와 바다 생물들은 조련사들에 의해 길들여질 수 있습니다. 곡마단의 서커스를 위해 코끼리, 사자, 앵무새, 코브라 같은 것들을 조련하고, 또 대형 수족관에서는 돌고래를 훈련시켜 돌고래 쇼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혀는 능히 길들일 자가 없습니다. 사나운 짐승도 길들여지면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고분고분 잘 따르는데, 혀는 조련하기가 너무나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독을 품어내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니 혀는 정말 고약한 요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칼에 죽은 자보다 혀의 독침에 쏘여 죽은 자가 더 많다.”고 풍자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혀를 길들일 수 있는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들은 우리 안에서 즉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5:18-20)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 당시 율법주의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힐난하자 주님께서 그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정곡으로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면을 가꾸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마음 속에 돋아나는 온갖 잡초들을 뽑아내고 거름을 주고 벌레를 퇴치하면서 정성스레 마음의 뜰을 가꾸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혀가 길들여져 자연스레 언어의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저자는 바로 이러한 교훈을 아주 멋지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9-12)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뇨.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언어의 기능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만 주신 매우 소중한 선물입니다. 혹 동물들 가운데 자기들 나름의 방법을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언어기능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학문을 연마하며 저술활동을 하고 강의나 교육을 합니다. 언어에는 이 외에도 수많은 순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성에 물든 인간은 이 소중한 언어의 기능을 너무나 쉽게 남용하고 심지어 오용함으로써 언어의 역기능을 낳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가짜 뉴스’가 대표적인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마치 양날의 칼과 같아 잘 사용하면 선한 도구가 되고, 잘못 사용하면 악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지혜서인 잠언에는 언어생활과 관련된 교훈이 참 많이 나옵니다. 우리 속담에도 언어생활과 관련된 속담이 유난히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언어생활이 아주 중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언어생활에 참으로 실수가 많다는 것을 방증해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회 있는 대로 잠언을 가까이 하면서 특히 언어생활에 관한 교훈을 깊이 묵상하며 삶에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잠언 25:11)라는 교훈이 우리 삶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