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터치다운’ 인생
‘수퍼보울 선데이’(Super Bowl Sunday)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는 주일은 LA 램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엇츠가 격돌하는 제 53회 수퍼보울 시합이 벌어지기 때문에 풋볼 팬들은 벌써부터 마음이 들떠있습니다. 수퍼보울을 보기 위해 TV 앞에 모이는 미국인들만 해도 1억 명을 훌쩍 넘고 시청률도 40%를 상회하며, 30초당 광고비가 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정말 인기가 대단한 스포츠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특히 이번 시합은 이미 5승을 거둔 노장 쿼터백 41세의 탐 브레이디와 샛별로 떠오르는 24세의 쿼터백 제리드 고프의 대결이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마도 자신이 운동을 잘한 것 같지는 않으나 그 당시 그레코로만(Greco-Roman) 사회에서 널리 유행했던 스포츠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서신을 보면 우리 신앙생활을 스포츠에 비유한 구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달리기, 권투, 레슬링 등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마태복음 13:34)고 할 정도로 비유 애호가셨을 뿐만 아니라 가히 비유의 달인이라고 할 만큼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비유들을 많이 베푸셨습니다. 독일 신학자인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비유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비유란 땅의 것으로 하늘의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비유의 정의는 특히 예수님의 천국의 비유를 설명하는데 적절한 정의인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상의 영적인 세계를 설명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궁여지책으로 이 땅의 비근한 예를 들어 설명하실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어쨌든 비유는 천상의 진리 외에도 신앙생활에 있어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적절한 한 가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예수님과 바울의 흉내를 내볼까 합니다. 정말로 인기가 대단한 수퍼보울 시합에 즈음해서 ‘터치다운 인생’이라는 주제가 머리를 스쳐갑니다. 풋볼 경기에서는 터치다운을 많이 할수록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터치다운을 해야 승리자가 될 수 있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유념해야 할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풋볼 경기에서 터치다운을 하려면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경기를 펼친다고 해도 터치다운에 실패하면 경기에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거친 몸싸움을 하면서 기를 쓰고 상대방 골문을 향해 전진합니다.
(고린도전서 9:26)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向方)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달리기를 할 때 결승점(finish line)을 향해 달려야 하며, 복싱을 할 때 상대방을 향해 주먹을 날리되 유효타가 되도록 가격해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3-14)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는 목표(goal)입니다. 사도 바울은 삶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소명을 붙잡고 이방 사도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Purpose-driven Life)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장기 베스트셀러가 된 까닭이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을지 모르나 내심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나는 왜 사는가?”라는 자신의 ‘존재이유’(raison d'etre)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 팝송 중에 “What am I living for if not for you?”(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요?)라는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저는 설교할 때 you 자리에 Jesus를 넣으면 정말 멋진 신앙고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비키 앤(Vicky Anne)이라는 가수가 그런 내용으로 개사(改詞)를 해서 부른 것을 우연히 유투브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세우되 영원한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 세상 저 너머에서도 불변하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게 됩니다. “끝이 좋아야 다 좋다”(All is good that ends well.) 또는 “마지막 웃는 자가 진정으로 웃는 자이다”(He/she who laughs last laughs best.)라는 서양 속담들은 은연중 기독교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는데...” 오호통재(嗚呼痛哉)로다 가슴 치며 후회해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일 뿐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 땅의 나그네 삶 속에서 영원한 본향에 갈 준비를 착실히 하는 자가 진정 현명한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의 모든 경기에 해프타임(half time)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해프타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연령에 있든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척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미식축구인 풋볼이 럭비와 다른 점은, 럭비는 반드시 공을 뒤로 던져야 하지만 미식축구는 공을 앞으로만 던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룰은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 즉 개척정신과 잘 부합됩니다. 프런티어(Frontier)의 원래 의미는 개척지와 미개척지의 경계 지역을 일컫는 변경(邊境)이라는 뜻인데, 미국 역사에서는 서부개척과 관련이 있습니다. 독립 당시에 13개 주로 시작했던 미국은 1803년부터 1848년까지 여러 정책들과 밀려오는 이민자들로 인해 서쪽으로 팽창해 나갔는데, 이것을 ‘서부개척 시대’라고 부릅니다. 후에 케네디는 이 정신을 다시금 일깨우며 ‘New Frontier’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젊은 나이에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프런티어 정신은 변경을 개척해 지경을 넓혀가는 도전정신을 말합니다. 미국에는 주마다 닉네임이 있습니다. 버지니아주의 닉네임은 ‘Old Dominion’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마지막 주인 알라스카주의 닉네임은 ‘The Last Frontier’(마지막 변경)입니다. 이런 진취적인 개척정신은 미국 국민들의 저변에 흐르는 정서입니다. 그러나 알라스카주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어느 지역으로 더 뻗어나가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미식축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 바로 이 프런티어 정신입니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모습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한 번에 수십 야드를 전진하지 못해도 한 걸음씩 전진하다 보면 마침내 상대방 문전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승률이 10%도 안 되는 Green Bay Packers 팀을 맡아 9년간 6번의 슈퍼볼 진출과 5번의 우승을 기록한, NFL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드코치로 평가받는 미식축구계의 레전드 Vince Lombardi는 네 번 공격에 10야드를 갈 수만 있다면 승리는 보장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늘 주지시켰다고 합니다. 네 번 공격에 10야드를 가면 다시 공격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론 팀웍(team work)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풋볼과 관련해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팀웍과 관련된 명언을 두 가지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Individual commitment to a group effort – that is what makes a team work.”(개개인이 그룹의 노력에 헌신하는 것, 그것이 바로 팀웍을 이루는 것이다)
“The achievements of an organization are the results of the combined effort of each individual.”(한 조직의 성취는 각 개인의 노력이 합해진 결과물이다.)
미국인들의 ‘사행시’ 중 ‘TEAM’의 네 알파벳을 이용한 사행시를 본 적이 있습니다.
T: Together / E: each / A: accomplishes / M: more
(함께 하면 각자가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팀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까지도 강조하는 맛깔나는 사행시입니다. 시합에 이기려면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팀 플레이에서는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풋볼에서 11명의 선수들이 각자 자기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할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풋볼은 함께 멀리 가야하는 게임입니다. 신앙의 경주도 함께 멀리가야 하는 경주입니다. 신앙공동체의 모든 멤버들이 각자 최선을 다하면서도 함께 보조를 맞추어 전진할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경기에는 룰이 있습니다. 특히 풋볼의 룰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것 같습니다. 골프도 룰이 꽤 까다로운데 올해부터 많이 완화했다고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현행 룰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룰을 여긴 것 때문에 다 이겨놓고도 실격을 당하거나 몰수패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대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당연히 룰을 지켜야 하듯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당연히 룰을 지켜야 합니다. 신앙인의 룰북(Rule Book)은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대로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이단들은 열정은 있지만 게임 룰을 어겼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신앙생활에도 꼭 같이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임의 룰북인 성경을 읽고 배우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 우리는 수퍼보울을 앞두고 인생의 성공적인 터치다운에 대하여 상고해보았습니다. 함께 나눈 몇 가지 비유적인 교훈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승자(winner)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아마도 자신이 운동을 잘한 것 같지는 않으나 그 당시 그레코로만(Greco-Roman) 사회에서 널리 유행했던 스포츠에 상당한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서신을 보면 우리 신앙생활을 스포츠에 비유한 구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달리기, 권투, 레슬링 등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마태복음 13:34)고 할 정도로 비유 애호가셨을 뿐만 아니라 가히 비유의 달인이라고 할 만큼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비유들을 많이 베푸셨습니다. 독일 신학자인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비유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비유란 땅의 것으로 하늘의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비유의 정의는 특히 예수님의 천국의 비유를 설명하는데 적절한 정의인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천상의 영적인 세계를 설명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궁여지책으로 이 땅의 비근한 예를 들어 설명하실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어쨌든 비유는 천상의 진리 외에도 신앙생활에 있어 영적인 진리를 설명하는 적절한 한 가지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예수님과 바울의 흉내를 내볼까 합니다. 정말로 인기가 대단한 수퍼보울 시합에 즈음해서 ‘터치다운 인생’이라는 주제가 머리를 스쳐갑니다. 풋볼 경기에서는 터치다운을 많이 할수록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에서 터치다운을 해야 승리자가 될 수 있으며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유념해야 할 교훈들이 있습니다.
첫째,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풋볼 경기에서 터치다운을 하려면 상대방의 골문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아무리 화려한 경기를 펼친다고 해도 터치다운에 실패하면 경기에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거친 몸싸움을 하면서 기를 쓰고 상대방 골문을 향해 전진합니다.
(고린도전서 9:26)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向方)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달리기를 할 때 결승점(finish line)을 향해 달려야 하며, 복싱을 할 때 상대방을 향해 주먹을 날리되 유효타가 되도록 가격해야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3-14)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는 목표(goal)입니다. 사도 바울은 삶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소명을 붙잡고 이방 사도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그의 인생의 목표였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Purpose-driven Life)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장기 베스트셀러가 된 까닭이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을지 모르나 내심 인생의 목적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나는 왜 사는가?”라는 자신의 ‘존재이유’(raison d'etre)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 팝송 중에 “What am I living for if not for you?”(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요?)라는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저는 설교할 때 you 자리에 Jesus를 넣으면 정말 멋진 신앙고백이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비키 앤(Vicky Anne)이라는 가수가 그런 내용으로 개사(改詞)를 해서 부른 것을 우연히 유투브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세우되 영원한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 세상 저 너머에서도 불변하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게 됩니다. “끝이 좋아야 다 좋다”(All is good that ends well.) 또는 “마지막 웃는 자가 진정으로 웃는 자이다”(He/she who laughs last laughs best.)라는 서양 속담들은 은연중 기독교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이렇게 사는 게 아니었는데...” 오호통재(嗚呼痛哉)로다 가슴 치며 후회해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일 뿐입니다. 더 늦기 전에 이 땅의 나그네 삶 속에서 영원한 본향에 갈 준비를 착실히 하는 자가 진정 현명한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의 모든 경기에 해프타임(half time)이 있습니다. 인생에도 해프타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연령에 있든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다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척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미식축구인 풋볼이 럭비와 다른 점은, 럭비는 반드시 공을 뒤로 던져야 하지만 미식축구는 공을 앞으로만 던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룰은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 즉 개척정신과 잘 부합됩니다. 프런티어(Frontier)의 원래 의미는 개척지와 미개척지의 경계 지역을 일컫는 변경(邊境)이라는 뜻인데, 미국 역사에서는 서부개척과 관련이 있습니다. 독립 당시에 13개 주로 시작했던 미국은 1803년부터 1848년까지 여러 정책들과 밀려오는 이민자들로 인해 서쪽으로 팽창해 나갔는데, 이것을 ‘서부개척 시대’라고 부릅니다. 후에 케네디는 이 정신을 다시금 일깨우며 ‘New Frontier’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젊은 나이에 당당히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것입니다. 프런티어 정신은 변경을 개척해 지경을 넓혀가는 도전정신을 말합니다. 미국에는 주마다 닉네임이 있습니다. 버지니아주의 닉네임은 ‘Old Dominion’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마지막 주인 알라스카주의 닉네임은 ‘The Last Frontier’(마지막 변경)입니다. 이런 진취적인 개척정신은 미국 국민들의 저변에 흐르는 정서입니다. 그러나 알라스카주에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어느 지역으로 더 뻗어나가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미식축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이 바로 이 프런티어 정신입니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모습이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비록 한 번에 수십 야드를 전진하지 못해도 한 걸음씩 전진하다 보면 마침내 상대방 문전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승률이 10%도 안 되는 Green Bay Packers 팀을 맡아 9년간 6번의 슈퍼볼 진출과 5번의 우승을 기록한, NFL 역사상 가장 위대한 헤드코치로 평가받는 미식축구계의 레전드 Vince Lombardi는 네 번 공격에 10야드를 갈 수만 있다면 승리는 보장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늘 주지시켰다고 합니다. 네 번 공격에 10야드를 가면 다시 공격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론 팀웍(team work)도 강조했습니다. 그는 풋볼과 관련해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팀웍과 관련된 명언을 두 가지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Individual commitment to a group effort – that is what makes a team work.”(개개인이 그룹의 노력에 헌신하는 것, 그것이 바로 팀웍을 이루는 것이다)
“The achievements of an organization are the results of the combined effort of each individual.”(한 조직의 성취는 각 개인의 노력이 합해진 결과물이다.)
미국인들의 ‘사행시’ 중 ‘TEAM’의 네 알파벳을 이용한 사행시를 본 적이 있습니다.
T: Together / E: each / A: accomplishes / M: more
(함께 하면 각자가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팀웍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까지도 강조하는 맛깔나는 사행시입니다. 시합에 이기려면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팀 플레이에서는 독불장군이 없습니다. 풋볼에서 11명의 선수들이 각자 자기의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할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풋볼은 함께 멀리 가야하는 게임입니다. 신앙의 경주도 함께 멀리가야 하는 경주입니다. 신앙공동체의 모든 멤버들이 각자 최선을 다하면서도 함께 보조를 맞추어 전진할 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경기에는 룰이 있습니다. 특히 풋볼의 룰은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것 같습니다. 골프도 룰이 꽤 까다로운데 올해부터 많이 완화했다고 하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현행 룰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룰을 여긴 것 때문에 다 이겨놓고도 실격을 당하거나 몰수패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대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지켜야 할 룰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당연히 룰을 지켜야 하듯이,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당연히 룰을 지켜야 합니다. 신앙인의 룰북(Rule Book)은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대로 신앙의 경주를 해야 합니다. 이단들은 열정은 있지만 게임 룰을 어겼기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들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신앙생활에도 꼭 같이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임의 룰북인 성경을 읽고 배우고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 우리는 수퍼보울을 앞두고 인생의 성공적인 터치다운에 대하여 상고해보았습니다. 함께 나눈 몇 가지 비유적인 교훈을 통해 인생의 진정한 승자(winner)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Number | Title | Date |
118 |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
|
2020.05.02 |
117 |
나만 겪는 고난이 아닙니다
|
2020.04.25 |
116 |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이로다!
|
2020.04.18 |
115 |
회복탄력성(resilience)
|
2020.04.11 |
114 |
광야를 지날 때
|
2020.04.04 |
113 |
인생은 미완성
|
2020.03.28 |
112 |
하나님의 지혜
|
2020.03.21 |
111 |
하나님의 섭리
|
2020.03.14 |
110 |
일상의 감사
|
2020.03.07 |
109 |
에벤에셀
|
2020.02.29 |
108 |
약속을 붙드는 ‘아멘 신앙’
|
2020.02.22 |
107 |
역지사지(易地思之)
|
2020.02.15 |
106 |
황금률(黃金律)
|
2020.02.08 |
105 |
유니크한 목회, 유니크한 교회
|
2020.02.01 |
104 |
자유와 방종
|
2020.01.25 |
103 |
날마다 새롭게
|
2020.01.12 |
102 |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1)
|
2019.12.06 |
101 |
고난 중의 감사
|
2019.11.23 |
100 |
“목회는 상식으로 하는 거야!”
|
2019.10.10 |
99 |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
2019.10.05 |
98 |
외식하는 자여!
|
2019.09.28 |
97 |
값진 은혜와 값싼 은혜
|
2019.09.22 |
96 |
기다릴 줄 아는 믿음
|
2019.03.24 |
95 |
기다릴 줄 아는 믿음
|
2019.03.24 |
94 |
자존감을 가집시다
|
2019.03.16 |
93 |
자존감을 가집시다
|
2019.03.16 |
92 |
침체된 신앙에서 벗어납시다
|
2019.03.09 |
91 |
침체된 신앙에서 벗어납시다
|
2019.03.09 |
90 |
이민자의 세 가지 삶의 유형(AAA)
|
2019.03.03 |
89 |
이민자의 세 가지 삶의 유형(AAA)
|
2019.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