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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광야를 지날 때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광야에서 겪었던 세월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8장은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이 건너다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광야 40년의 삶을 회고하며 그 의미를 새겨보면서, 이제 곧 들어가게 될 가나안 복지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8: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는 말 그대로 황량한 곳입니다. 거기에는 결핍과 불편과 위험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광야는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불안한 곳이요,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장장 40년을 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저는 몇 년 전에 그저 글로만 읽고 말로만 듣던 광야 길을 따라 요르단의 성지들을 순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요르단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인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이 살았던 땅입니다. 성경에도 나오는 유명한 ‘왕의 대로’(King's Highway)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통과했던 길인데, 마치 미국 동부지역의 95번 고속도로처럼 지금도 요르단 국토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중요한 도로입니다. 왕의 도로는 모압 평지를 지나 아르논 계곡을 통과하게 되는데, 요르단 사람들은 아르논 계곡을 ‘요르단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비할 바 못되지만, 그런대로 깊은 협곡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험난한 지역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참으로 고생이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불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는 독사와 전갈과 같은 위험한 생물들이 살고 있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으며, 기껏해야 가시나무 떨기만 드문드문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기적의 식품인 만나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떨기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을 먹고 살았다는 주장을 하는데, 막상 그곳에 가보면 그러한 주장이 얼마나 ‘소설 같은’ 주장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삭막한 곳에서 족히 200만 명은 되었을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돌보심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했음을 뼛속 깊숙이 느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짐 버그(Jim Berg)라고 하는 목사님은 광야(Wilderness)가 W로 시작되는 것에 착안해서 광야의 특징을 W로 시작되는 네 단어로 설명한 적이 있는데, 저는 요즘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첫째, 광야는 ‘방황하는 곳’(Place of Wandering)입니다. 광야는 자신이 지금 어디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없는 막막한 곳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자칫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지금 온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의 공포가 언제 엄습해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둘째, 광야는 ‘부족한 곳’(Place of Wanting)입니다. 온통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에서는 물과 양식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사십년 동안 먹고 마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도 어쩌면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일자리를 잃고 의식주를 걱정해야 할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한 고비가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돌보시는 본존섭리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상황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신명기 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셋째, 광야는 ‘전쟁하는 곳’(Place of Warring)입니다. 광야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죽습니다. 전쟁에서는 이겨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른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며 또 승리할 줄 믿습니다.

넷째, 광야는 ‘기다리는 곳’(Place of Waiting)입니다. 기다리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기다림을 체득했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움직일 때를 기다려야 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40년의 기한이 차기까지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이 코로나 사태가 하루 이틀에 끝나리라는 조급한 마음 대신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힘든 때는 마냥 지속되지 않는다”(Tough times never last.)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신 데에는 겸손과 순종 그리고 나아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시려는 선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합적인 메시지에 마음의 귀를 기울이면서 신앙적인 지혜를 터득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고난과 고통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인해 요즘 유행하는 말을 패러디해 본다면, “하나님은 다 계획이 계셨구나!”라고 우리 모두가 고백하게 될 날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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