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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황금률(黃金律)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이 한 구절을 가리켜 ‘황금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친히 그렇게 명명하시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한 구절이야말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독교의 기본윤리라고 생각해서 그러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만 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듯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정말 황금과 같이 귀하고 으뜸가는 법칙이란 뜻입니다. 종교를 떠나 인간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최상의 도덕률일 뿐만 아니라 또한 보편적인 가치로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고 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Golden Rule’이라고 하는데, 회사 이름과 상표에도 이 이름을 차용한 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때 저도 상호(商號)에 매력을 느껴 ‘Golden Rule’이라는 건강보험회사에 가입한 적도 있으니까요. 성경에서 7과 12는 완전수이기 때문에 장절을 외우기도 아주 쉽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 보면, 남에게 먼저 선을 행하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칭찬 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칭찬하고, 사랑 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인정해주고, 이해받고 싶으면 먼저 남을 이해해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깨끗한 물을 마시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기 원한다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깨끗한 물을 마시고 깨끗한 공기로 숨쉴 수 있도록 내가 먼저 그것들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황금률은 상대방을 배려하라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황금률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황금률이 언급되어 있는 마태복음 7장 12절 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니라.”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물론 문맥상 바로 앞의 내용과 연결돼 있습니다.
바로 앞의 내용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으로 기도에 관한 유명한 교훈입니다. 이 교훈은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녀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절대적으로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실 뿐만 아니라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좋은 것’(good gifts)은 비록 원급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사실상 최상급 즉 ‘가장 좋은 것’(best gifts)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선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무엇이든지 남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다는 의미로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내가 대접받기 위해서 먼저 남을 대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반대급부를 바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서 고운 말을 기대하고 고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지켜 고운 말을 하면 상대방도 그 보답으로 고운 말을 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혹 상대방이 고운 말로 보답을 하지 않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주님의 교훈의 골자입니다. 또 우리 속담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속담도 어떤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오해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에게 베푸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몇 갑절로 보상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되로 주면 말로 받겠지”라는 계산을 하면서 잇속을 차릴 요량으로 선행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히브리적인 표현입니다. 마태복음 22:34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한 율법사가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물었을 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시면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골자, 핵심)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 말씀과 황금률을 연결해 보면,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은 달리 표현한다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론지어도 무방하리라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황금률과 비슷한 교훈을 동서고금을 통해 다른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든다면, 공자님은 “자기 자신에게 행해지기를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도 행치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공자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에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교훈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데 비해 공자님의 가르침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유교를 비롯해 다른 종교들의 가르침은 다 소극적인 가르침인데 비해 기독교의 가르침은 적극적인 가르침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부르는데 반해 다른 종교들의 교훈들을 한 단계 낮은 교훈이라고 해서 '은률'(Silver Rul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기심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라는 주님의 교훈 즉 황금률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보다 더 살만한 세상으로 바뀌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황금률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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