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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유니크한 목회, 유니크한 교회

(이 칼럼은 지난 12월 16일 워싱턴한인교역자회 송구영신예배와 금년 1월 19일 리치몬드한인교회협의회 신년감사예배에서 했던 두 가지 다른 설교 중 일부를 발췌해서 편집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김새가 unique하듯이 우리의 인생길도 unique합니다. 유일무이(唯一無二)합니다. 둘도 없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올해는 경자년 쥐띠 해입니다. 그런데 한때 과학자들은 사람과 쥐의 DNA의 99%가 같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과 침팬지의 DNA가 99% 일치한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사람과 쥐 사이에도 꼭 같은 확률의 유사성이 있다고 하는 건 뭔가 좀 믿기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유사성의 정도에 있어서 과학자들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나 전혀 무근한 억지주장이 아닌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DNA에 있어서 이 근소한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듯이 우리 인간도 서로 DNA가 다르기 때문에 이 지구상에 꼭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각기 독특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목회자들 그리고 그 목회자들이 목회하는 교회 또한 유니크할 수밖에 없으며, 성도들 또한 유니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목회와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단순하게 수평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불행은 비교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 속담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들은 배고픈 건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건 참지 못한다는 자조적인 말을 하기도 합니다. 사촌이 논을 사지 않았을 때는 안 아프던 배가 사촌이 논을 사는 순간 배가 아픈 까닭이 무엇이겠어요? 비교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비교할 때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그때부터 불행이 싹트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요한복음 21:18 이하의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요한복음 21:18-22)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요한)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베드로의 길이 있었고, 요한의 길이 있음을 깨우쳐주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순교를 당했고, 요한은 비록 밧모섬에 유배를 가긴 했지만 천수를 누렸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사역을 단순비교 내지는 수평비교해서 우열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베드로가 순교했으니 그가 요한보다 더 위대한 사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단지 우리 인간의 평가일 뿐이며 하나님의 평가는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교회를 섬기든 작은 교회를 섬기든, 일반 목회를 하든 특수목회를 하든, 국내목회를 하든 해외선교를 하든,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만 성실하게 지고 가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작은 교회를 섬기시는 목회자도 그 나름으로 마음고생이 심하고, 큰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도 그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 흔히 “바람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듯이 대형교회 목회는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목회의 결과에만 연연하지 말고 목회의 과정도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릭 프롬이 말할 것처럼, 목회에 있어서도 ‘소유 모드’(having mode)보다는 ‘존재 모드’(being mode)를 지향할 때 비교의 덫에서 헤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대학촌에서 캠퍼스 미니스트리를 하는 목회자는 이런 개념을 가지지 않으면 속이 새카맣게 타서 수명이 단축될지도 모릅니다. 그저 ‘못자리 목회’를 한다고 생각하면 속이 좀 편하지 않을까요? 모판에서 잘 자란 벼 모종이 남의 논에서 튼실하게 자라 소담한 결실을 하는 모습을 믿음의 안목으로 바라볼 때 어쩌면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사역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가 있습니다. 저는 이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를 금수저로 보고, 두 달란트 받은 자를 은수저,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자를 흙수저로 해석해도 과히 지나친 해석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수저든 하나님께는 다 소중한 수저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수학은 절대치의 수학이 아니라 상대치의 수학이라는 점이 우리에게는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수학은 백분율의 수학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가 네 달란트를 더 남긴다면 80%를 남긴 것입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 받은 자가 한 달란트를 더 남긴다면 50%를 남긴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가 한 달란트만 더 남겨도 그는 100%를 남긴 게 됩니다. 절대치로 보면 가장 적게 남겼지만 상대치로 보면 배나 남긴 셈이 되며, 따라서 주인으로부터 가장 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 목회자들이 취해야 할 교훈은 최고의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가 될 때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서양이 공유하는 사상 가운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인간 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후에 하늘의 명을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서양 버전은 “Do your best, and God will do the rest.”입니다.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다는 뜻 아닙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같은 내용의 말입니다. 지극정성으로 하면 하늘도 감동해서 도움을 준다는 뜻입니다.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목회자든 일반 성도든 우리에게는 유니크한 삶이 있습니다. 남과 비교함으로 비굴해지거나 우쭐해지지 말고, 나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하나님께 “참 잘했다!”고 칭찬받는 나날의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한 해를 결산할 때는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대견스럽게 여겨져 하나님께 무한 감사하는 한 해가 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