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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고난 중의 감사

신촌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는 다음과 같은 한 무명시인의 시가 걸려있다고 합니다.
주님!
때로는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주심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 아들 딸이 걱정거리가 되게 하시고
부모와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 된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눈물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거짓이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나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
이렇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몇 년 전에 저는 구안와사(口眼喎斜)로 안면이 마비되어 입이 돌아가고 말할 때도 발음이 또렷하지 않아 한 동안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완치가 되었지만 목회를 하는 입장에서 ‘난감하네!’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주름살도 은혜로구나!”라는 사실입니다. 얼굴 근육이 마비가 되면 마비된 쪽 이마에 주름이 잡히지 않습니다. 신경이 마비되어 주름을 잡아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굴에 주름이 있다고 불평을 하지만 그 주름이 은혜인 줄 고난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얼굴 근육의 신경이 돌아온 후에도 한 동안 귀가 먹먹해서 특히 찬송을 부를 때는 귀가 웅웅거리는 바람에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그러니 귀가 웅웅거리지 않고 또렷하게 들리는 것만도 큰 감사의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비교적 건강한 편인데도 오래 전에 허리 디스크로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물리치료로 고쳐보려고 상당 기간 애를 썼지만 생각만큼 차도가 없어 목회하는데 지장이 되는 것 같아 마침내 수술을 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수술을 받았는데 다행히 지금까지 격한 운동을 해도 아무 지장이 없어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벌떡 일어나는 것만도 감사의 제목입니다. 한참 심하게 아플 때는 차 페달을 밟는 것도 쉽지 않았고,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옆으로 굴러서 어렵사리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습관적으로 “주님,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기도가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고난은 그 자체로서는 유쾌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고난도 감사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 무엇인가를 배울 때 우리는 ‘고난의 유익’이라는 역설적인 축복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당할 때 그 고난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난을 한낱 몹쓸 쓰레기로 처리해버릴 게 아니라 재활용해야 합니다. 고난은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라 재활용 아이템입니다. 고난을 리싸이클해서 삶의 자양분으로 삼는 자가 진정 지혜로운 자입니다. 고난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그 가운데서 아무 것도 취하지 못한다면 더욱 억울한 일 아니겠어요. 우리는 넘어지더라도 일어날 때는 무엇인가를 줍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모든 일에 긍정 마인드를 적극적으로 작동시켜야 합니다. 무병장수라는 말이 있지만 요즘에는 일병장수라는 말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병이 한 가지 있어야 평소에 늘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오히려 장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 역시 긍정적인 생각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서두에 인용한 무명시인의 시가 잘 대변해주듯이 고난 가운데서도 분명히 깨닫고 배울 게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인생독본이라고 할 수 있는 탈무드에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난의 유익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 119:67, 71)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좋은 일이나 기쁜 일에 감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마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궂은일이나 슬픈 일에도 감사하는 것이 성숙한 감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노래했듯이 ‘전천후 감사’야말로 진정한 감사요 성숙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박국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런 신앙이 참으로 훌륭한 신앙입니다. 우리는 자칫 계란을 낳아주는 암탉보다 계란 그 자체에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암탉과 계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귀합니까? 물론 암탉이 더 귀하죠. 계란은 한 번 먹어치우며 그만이지만, 암탉이 있는 한 계란은 계속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그 분 자신으로 인하여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축복의 계란을 낳아주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27년간 옥살이를 한 후 출옥할 때에도 건강한 상태로 출옥했습니다. 기자가 그 비결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감옥에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물을 마시면서도 감사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할 때도 감사하고, 늘 감사했기 때문에 건강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는 마치 젖소의 젖을 짜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젖을 짜야 계속 젖이 나옵니다. 젖을 아낀다고 며칠씩 그냥 묵혀두었다가는 더 이상 젖이 나오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우물에서 계속 물을 퍼 올려야 새로운 감사의 조건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영국의 스펄젼 목사님의 말씀을 늘 가슴 깊이 새기면 좋겠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면 이 모든 것이 필요 없는 불야성(不夜城)의 천국을 주신다.”(요한계시록 21:23-25 참조)
Happy Thanksgiving in the L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