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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미국의 한 기독교 여론조사기관에서 해마다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에 대하여 조사하는데, 해마다 바뀌긴 하지만 몇 구절이 돌아가면서 자리바꿈을 하는데, 그 중의 한 구절이 로마서 8:28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 구절을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영국의 위대한 성경주석가인 바클레이는 이 말씀을 이렇게 쉽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좋은 방향으로 혼합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겪는 일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보면 전혀 좋게 보이질 않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함께 혼합해서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내실 때는 결국 이것들이 좋은 결과로 귀결된다는 영적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진찰한 후 진찰 결과에 따라 여러 가지 약들을 혼합해서 약을 조제하기도 합니다. 이 여러 약들을 하나하나 따로 사용했을 때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경우도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노련한 처방에 따라 조제된 약들은 상화보완작용을 하여 독성은 제거되거나 중화되어 결국 유익한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성경주석가는 이 구절을 가리켜 ‘하나님의 국수틀’이라고 명명한 적이 있는데, 저는 이것이 참으로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해서 자주 인용하곤 합니다. 국수틀에는 매우 다양한 밀가루 반죽이 들어갑니다. 모양도 크기도 다 다르지만, 국수틀을 통과해서 마지막에는 가지런하게 균일한 오래기가 되어 나오게 된다는 점에 착안한 매우 함축적인 비유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가장 노련한 의사이신 하나님께서 처방을 내리실 때까지 참고 기다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지나온 생애를 돌이켜 보면 때로는 고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변장된 축복임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우리 나라 성경의 ‘선’(善)이라는 번역은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다소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도덕적인 의미의 ‘선’(착함)이 아니라 오히려 ‘좋음’ 또는 ‘유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in all things God works for the good of those who love him...”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간에 한국신학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윤평중 교수가 “조국 사태는 ‘위장된 축복’이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일간신문에 게재한 바 있습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사회적 신뢰가 사라진 폐허의 공간에서 우리는 황량하고도 황망하다. 나라 전체가 공황 상태다. 하지만 모든 고난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회복 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최악의 고난 앞에서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다. 정치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우리 현대사는 곧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 칠흑 같은 어둠의 현실을 '지성의 비관론과 의지의 낙관론'으로 뚫고 전진한 역사였다. 조국 사태라는 사회적 재난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건 전적으로 우리네 결단에 달렸다.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전환점이 멀지 않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권의 최대 기획인 '조국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좌초시켰다. 지금의 위기를 위장된 축복으로 해석해야 할 이유다.”

우리가 인생길를 걸어가다 보면 늘 우리 앞에 탄탄대로만 놓여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걸림돌이 있습니다. 그 걸림돌에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캄캄한 터널 안에 갇힌 것 같이 암담한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어 허우적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경우에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하나님이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록 걸림돌에 부딪쳐 넘어진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에게 능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새 힘을 주셔서 다시금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우리를 넘어지게 했던 그 걸림돌이 오히려 디딤돌이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최근에 한국교계에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뜻있는 분들이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결의 이후 가장 수치스러운 결의이며, 심지어 혹자는 그보다 더 수치스러운 결의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대형교회의 목회자 세습에 대한 타협안의 통과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같은 교단에 속해 있던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기분이 매우 착잡합니다. 그러나 목회자 세습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반대 운동에 앞장섰던 어느 목사의 말처럼 이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에 맡길 길밖에 없습니다. 겉으로 좋은 것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 나쁜 것이 항상 나쁜 것도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선하신 의도와 섭리가 있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요셉의 생애입니다. 그는 정말 부당하게 애매한 고난을 당했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있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요셉에게 일어난 일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을까.”라는 신앙적인 회의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 자신이 일방적으로 주신 꿈 때문에 이런 애매한 고난을 당하는데도 어떻게 모르쇠로 일관하시는 것인가.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꿈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며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낙심하거나 좌절한 적이 없습니다. ‘마침내’ 그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맥맥히 이어져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정만 바로보고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중도포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실 좋은 결말을 내다볼 수 있는 ‘마침내’ 신앙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쉼표’를 ‘마침표’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 악을 빚어 선이 되게 하시는 전화위복의 연급술사, 불리한 상황을 유리한 상황으로 뒤바꾸시는 역전의 용사,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