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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자존감을 가집시다

자존감을 갖는다는 것은 인생의 성공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존감을 가지려면 열등감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열등감을 콤플렉스(complex)라고 하는데, 사실 콤플렉스라는 말은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프로이드(Freud)라는 심리학자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으로 얽혀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complex’라는 용어는 복잡다기(複雜多岐)한 인간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 매우 적절한 용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의학박사이기도 한 모러스 신부님은 인간심성 계발과 심리치료 연구 및 사목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콤플렉스,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라는 책을 저술했고, 그 책에서 41가지의 콤플렉스를 소개하고 있는데 정말 별의별 콤플렉스가 다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외디푸스 콤플렉스나 나르시스 콤플렉스를 비롯해 롤리타 콤플렉스, 삼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카인 콤플렉스, 예레미야 콤플렉스, 피그말리온 콤플렉스, 보헤미안 콤플렉스, 공작 콤플렉스, 타조 콤플렉스, 황소 콤플렉스, 심지어 어머니 콤플렉스와 아줌마 콤플렉스도 있습니다. 그저 이름만 갖다 붙이면 될 정도로 정말 다양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41가지 콤플렉스 중에는 물론 우리가 가장 자주 언급하는 ‘열등 콤플렉스’와 ‘우월 콤플렉스’도 있습니다. 그저 간략하게 열등감과 우월감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도 열등감에 대하여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열등감은 원래 ‘Inferiority Complex’입니다. 수많은 콤플렉스가 있는데도 우리가 콤플렉스 하면 보통 열등감을 의미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모든 콤플렉스 가운데 열등감이 가장 보편적인 콤플렉스이며, 따라서 가장 문제가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Maxwell Martz는 미국인의 95%가 열등감과 함께 열등감으로 인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열등감의 원인과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열등감이 전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입니다. 크리스천 심리학자들 중에는 열등감의 뿌리를 죄에서 찾으려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열등감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열등감을 신앙적으로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1:26-28이 신앙적으로 열등감을 극복하는 비결의 단초를 제공해줍니다.
(창세기 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 Imago Dei)에 대해서는 매우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논문만 해도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공통된 해석은, 하나님의 형상은 외형상의 형체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형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형상이 외모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일반적으로 하나님처럼 지정의(知情意)를 지닌 인격체로 창조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다른 피조물들과는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서로 의논하셔서 “우리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결정하신 후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는 복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삶에 고난과 역경이 있지만 그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 복된 삶을 살기를 열망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예레미야 29: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셋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물의 통치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미 우리에게 땅을 정복하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令長)이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인간은 정말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는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cast being)로 규정했습니다. 즉 인간은 자신이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태어난 불안전한 존재이며, 이렇게 내던져진 존재인 인간은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운데 늘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본적인 정서는 불안(Angst, anxiety)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문학가인 사르트르도 인간은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존재인데 다만 자신의 의식을 통해 세상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물들과 구별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이 세상에서 분명한 목적을 발견하고 그 목적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릭 워렌 목사님이 말하는 ‘목적에 이끌리는 삶’(purpose-driven life)인 것입니다. 복음송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고 /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하나님께서 하루하루 창조를 마치신 후에 마치 노래의 후렴처럼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도 특별하게 창조된 존재로서 가히 ‘창조의 왕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토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너무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아상(自我像)을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이 자아상(Self-Image)에 대한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거울을 놓고 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한 후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를 알아보는 실험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무덤덤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혹 어떤 동물들은 거울 속의 모습을 보면서 공격하려 들기도 했습니다. 역시 자신의 모습인 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숭이는 자신의 모습인 줄은 아는 듯했지만 그냥 그것으로 끝나고 자신의 자아상에 대한 통찰이나 분석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직 우리 인간만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나름대로 통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만이 자아상을 인식하고 세워 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자아상을 세워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세워나갈 수도 있고 부정적인 자아상을 세워나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아상을 세워나가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있다면 나의 자아상을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높은 자존감(self-esteem)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비하에 빠지며 열등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존중히 여깁니다. 이것은 이기심이나 자만심이나 우월감과는 다릅니다. 자기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기용납(self-acceptance)의 성숙한 태도입니다. 찬송가 중에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take me as I am)라는 가사가 있는데, 바로 이러한 마음 태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과소평가하거나 과대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있다면 우리는 건전한 자아상을 확립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에 더하게 되면 우월감에 빠지게 되고, 덜하게 되면 열등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 어느 것도 건전한 자아상을 세우는 데에는 방해물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떨어지는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으니까요. 매일 아침 인터넷으로 배달되는 ‘Our Daily Bread’ 중 최근에 읽었던 글 중에 소개하고 싶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Comparing ourselves with others is a sure recipe for unhappiness”(남과 비교하는 것은 불행의 확실한 비결이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으면 강점도 있는 것이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등감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이 주신 강점과 장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심지어 우리의 약점과 단점까지도 선용하시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약점과 단점을 호도하려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약점과 단점으로 인한 열등감도 우리를 성장시키는데 있어서 귀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서 건전한 자아상을 가지고 자존감을 회복함으로써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