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3.1절 만세사건을 기리며
며칠 전에 인터넷 신문에서 읽었던 충격적인 기사입니다. 6.25 전쟁 때 북한군이 퇴각하면서 기독교인 1,026명과 천주교인 119명을 집단학살했다는 사실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광범위한 학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종교말살 정책을 펴온 북한의 공식적인 지시로 이뤄졌으며, 충남·전남·전북 지역의 피해가 특히 컸다고 합니다. 보고서에 의하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9월 26일 북한 당국은 “반동 세력을 제거한 후 퇴각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이후 한 달여간 전국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학살의 참상은 너무나 잔학무도했습니다. 삽이나 몽둥이나 죽창으로 구타한 후 구덩이에 파묻고, 산 채로 불태워 죽이거나 생매장을 했으며, 몸에 말뚝을 박아 우물에 던져넣거나 총칼로 살해한 후 교회까지 불태웠고, 폐광산에 몰아넣고 집단살해한 후 매장하는가 하면, 몸에 돌을 달아 바다에 빠뜨리는 등 온갖 잔인한 수법이 동원되었습니다. 젖먹이를 가슴에 안은 채 죽임을 당한 엄마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성경적 가치들을 내세우며 반공에 앞장섰습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 당국과 남한의 좌익 세력은 기독교인들을 친미·반공 세력으로 규정하고 탄압과 말살정책을 펼쳐오던 중 퇴각 전에 부랴부랴 숙청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것입니다. 학살 방법이 너무나 잔인해서 생각만 해도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고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올해로 3.1절 103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일제 강점기인 기미년 1919년 3월 1일, 일제식민통 치에 항거하며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남녀노소, 어른과 학생,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모든 겨레가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던 날입니다. 총칼에 의한 일제의 공포정치에 맞서 우리 민족은 비폭력으로 응수했고,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으로 촉발된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은 결국 감격스러운 8.15 광복으로 이어져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기독교인들은 대한독립만세 사건에 앞장섰습니다. 그 당시 남북한을 합친 전체 인구는 2천만 명 정도였고, 기독교 교세는 그 중 1%를 조금 웃도는 25만 명에 불과했습니다. 교통시설이나 통신시설이 별로 발달하지 못한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온 국민이 일제히 궐기할 수 있었던 것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어져 있던 교회의 조직 덕분이었습니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3.1운동의 주역이었다는 사실은 피해 상황이 반증하고 있습니다. 만세운동으로 체포된 사람들 가운데 종교인의 60%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3.1 운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유관순 열사는 선교사의 인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화여고에 재학 중이던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 시절 급우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는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감리교회 방화학살 사건은 일제가 얼마나 악독하게 기독교를 탄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였습니다. 한 마디로 3.1운동의 중심에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 나라 잃은 서러움을 온몸으로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이 칼럼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인해 백척간두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힘이 모자라는 우크라이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습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던 미국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약소국가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도움을 주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섣부른 개입을 꺼리고 있으며, 특히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 때 겪었던 모욕적인 학습효과 때문에 매우 신중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UN이 있다고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러시아도 회원국인 안정보장이사회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우려해 회의를 하는 도중에 푸틴의 공격명령이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NATO도 자국의 국익을 우선시하며 직접적인 개입과는 거리를 두면서 정세를 관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며,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따라서 정의와 힘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빠스깔의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힘이 있어야 전쟁 억지력이 생기고, 그 힘이 평화를 유지해주는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이번 우크라 사태를 통해 새삼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모두 애국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 모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간 애국자요 애민자(愛民者)였습니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도 한결같이 애국애민자들이었습니다. 에스더는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서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일사각오의 마음으로 동족을 몰살의 위기에서 구해낸 위대한 구국(救國) 여성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동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자신은 버림을 받아도 좋다는 선민후사(先民後私)의 마음을 가졌던 분입니다. 예수님도 비록 온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지만 장차 멸망할 혈육의 조국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진정한 애국자셨습니다.
그런데 애국하는 마음만 있다고 조국이 무사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또 국력이 강하다고 나라가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든든한 뒷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든든한 뒷배가 되시는 분이 바로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대한민국의 8.15 광복도 배후에서 강대국들을 움직이신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분단의 아픔 속에서 서로 적대국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는 국태민안을 위해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46:3-5)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움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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