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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복음의 발견 -종교개혁 504주년에 부쳐-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신학교 연구실에서 로마서를 연구하던 중 이 구절을 접하면서 복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복음의 진리는 종교개혁자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전통과 잘못된 욕망으로 인해 덕지덕지 때가 묻고 교회의 제도 속에 깊숙이 묻혀있던 복음의 보화를 발굴하고 재발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기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면죄부(免罪符) 판매였습니다. 로마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성당 수축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 판매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성당 수축을 명분 삼아 살아있는 자를 위한 면죄부는 물론이요 죽은 자를 위한 면죄부까지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영어로는 indulgence라고 하는데, 이 말은 형벌의 면제나 특별사면을 의미하는 로마의 법적 용어인 indulgentia라는 라틴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면죄부란 말 그대로 죄를 사해주는 증서(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돈을 내면 면죄부를 살 수 있는데, 돈 액수에 따라 면죄부의 효력 즉 사죄의 효력도 달랐습니다. 루터는 성경에 비추어볼 때 면죄부 판매는 잘못된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인간의 공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며, 이것만이 성경의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에 근거하여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종교개혁의 3대 모토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나니 면죄부 판매를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루터는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대학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의 논제’를 내 걸고 과연 무엇이 성경적인 진리인지 한번 토론을 해보자고 도전했는데, 이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리라는 것은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루터가 내세운 95개 조항 가운데 세 조항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6항)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죄든지 사할 능력이 없다.”

(37항)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

(87항) “온전한 회개를 통해 이미 충분한 속죄의 혜택을 누리는 자들에게 무슨 영적 은혜가 더 필요한가.”

이 세 조항만 보아도 면죄부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달리 말하면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는 운동이며, 시쳇말로 ‘때 빼고 광 내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인간의 어그러진 욕심과 교회의 잘못된 관행이라는 ‘때’ 때문에 빛이 가려진 복음의 광채를 다시 환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성경의 진리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시대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변용(變容)이 허용되며, 다소 융통성 있게 적용될 수 있겠지만, 성경의 근본적인 진리는 결코 변개(變改)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절대로 변할 수 없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복음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변할 수 없는 절대성을 지닌 진리입니다. 그런데 교회사를 보면 복음의 절대성을 상대성으로 희석하거나 왜곡시키는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하던 시대에 이미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일례로, 갈라디아 교회는 순도 100%의 복음에 물타기를 하여 ‘다른 복음’ 변질시킴으로써 사도 바울에게 호된 질책을 당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6-12)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형제들아,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갈라디아 교인들이 왜 이토록 엄한 질책을 받았을까요?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고 희석하고 변질시켰기 때문입니다. 순수 복음을 지키지 못하고 복음을 희석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아직도 구약시대의 율법을 고수하려는 유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몰래 잠입해 들어온 이 거짓 교사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오도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바울의 가르침은 잘못된 것이며,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고 할례와 같은 구약의 율법도 함께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른바 혼합주의(syncretism) 교리를 주입시켰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의 길 즉 복음은 오직 하나뿐임을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 이 길 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확고부동한 만고불변의 진리를 굳게 붙들어야 한다고 힘주어 역설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6) “예수께서 이르시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 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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