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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네 가지 마음 밭



예수님은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마태복음 13:34)고 할 정도로 비유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복음서 중에서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예수님의 비유가 많이 나오는데, 간단한 비유까지 합하면 무려 40개 이상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특히 마태복음 13장은 ‘천국’에 대한 비유 몇 가지가 연속적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을 ‘비유의 달인’이라 일컫는 이유는, 많은 비유를 베푸셨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 하나하나가 촌철살인 급의 탁월한 비유이기 때문입니다.

“비유(parable)”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παραβολή(parabolē, 파라볼레)를 그대로 음역한 것인데, “옆에”(παρα)와 “던져인 것”(βολή)이란 두 단어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즉 비유란 “옆에 던져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갑(甲)을 설명하기 위해 을(乙)을 옆에다 나란히 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유를 깊이 연구한 독일 신학자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비유란 땅의 것을 가지고 하늘의 것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아주 절절하게 정의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은 특히 ‘천국’(Kingdom of God)을 설명하시기 위해 “천국은 이와 같으니”라는 구절을 마치 하나의 공식처럼 사용하셨는데,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하늘의 것들’ 즉 천상의 진리들을 ‘땅의 것들’로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라는 기법을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비유에 등장시키는 것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이나 비근한 일상사 등 매우 친근한 것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가히 압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 공관복음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다 나오며, 예수께서 매우 드물게 친히 비유의 내용을 소상하게 설명해주신 비유이기도 해서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비유이기도 합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유형을 네 가지 밭으로 비유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마치 위대한 심리학자처럼 인간의 심리상태를 아주 깔끔하게 분석해주셨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농촌에서 자라면서 틈틈이 농사일도 도운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유독 이 비유가 쉽게 이해가 되고 친근하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첫 번째 밭은 ‘길가’라는 밭입니다.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를 말합니다. 씨는 밭에다 뿌려야 하는데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반들반들하게 다져진 길바닥에 씨가 떨어지면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새들이 와서 먹어버립니다. 마음 밭이 마치 길가와 같이 강퍅한 자들, 이를테면, 말씀에 대하여 짐짓 귀를 막고 있는 자들, 말씀에 대하여 마음이 닫혀 있는 자들, 그리고 아예 관심조차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럴 때 악한 자 곧 마귀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버립니다.

두 번째 밭은 ‘돌밭’입니다. 흔히들 돌짝밭이라고 하는데, 자갈돌이 많이 섞여 있는 밭일 수도 있고 바위 위에 흙이 얇게 쌓인 밭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 유형의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은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해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는 금방 시들고 말라버립니다. 돌밭이라 햇볕에 금방 후끈후끈 열을 내기 때문에 빨리 싹이 틉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열이 강해지면 미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 견디지 못하고 금방 말라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빨리 반응하고 은혜도 쉽게 받지만, “말씀으로 인해”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환난이나 핍박이나 불편함이나 희생을 당하게 될 때 쉽게 신앙생활을 접어버리게 됩니다.

세 번째 밭은 ‘가시떨기’입니다. 이 유형은 말씀에 귀를 기울이긴 하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밭에다 곡식 낱알을 뿌려본 경험이 있는데, 낱알을 훌훌 뿌리다 보면 때로는 밭의 경계를 벗어나 밭두렁에 떨어지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더 많이 흩뿌려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뿌려진 곡식 낱알은 밭두렁에서 가시덤불이나 잡초들과 함께 햇빛 더 받기 경쟁을 하면서 키만 쑥쑥 자랍니다. 그렇지만 가시덤불이나 잡초들의 기운에 막혀 정작 튼실하게 자라지 못하고 그저 키만 훌쩍 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열매를 맺긴 하지만 민망할 정도로 겨우 쭉정이 면한 정도의 빈약한 열매밖에는 맺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온갖 세상살이 염려하랴 돈 벌랴 이런저런 염려로 말미암아 신앙이 성숙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경력은 오래되었는데 도무지 신앙이 자라지 않고 제자리걸음하는 경우가 이 부류에 해당합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네 번째 밭은 ‘좋은 땅’입니다. 문전옥답처럼 기름진 옥토를 말합니다. 예전에는 집 문만 열고 나서면 바로 논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전 논밭이 옥토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설거지한 구정물을 내다 붙다 보니 세월이 지나면서 시커먼 옥토로 변하는 것입니다. 저는 친척 집 미나리꽝에서 미나리가 엄청 잘 자라는 것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물속의 시커먼 흙이 보기만 해도 영양분이 철철 넘치는 것 같았습니다. 미나리를 자르느라 거머리에게 강제 헌혈도 많이 당해보았습니다. 농사는 토양이 반입니다. 사실상 반 이상입니다. 손바닥만 한 텃밭이라도 가꾸어 본 분들은 제 말에 동감할 겁니다. 옥토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유형의 마음 밭을 가진 자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백 배, 육십 배, 30배의 결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와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야 하며, 받아들인 후에는 그것을 실천하여 열매를 맺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도전과 시험이 있을 수 있지만, 인내하며 그 모든 어려움을 헤쳐 나갈 때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족이 될까 염려스럽긴 하지만, 이 네 가지 마음 밭은 어느 개인에게 운명적으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점이 언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떨기와 같은 자들도 신앙훈련을 통해 더 좋은 토양으로 개선될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 사실을 모르셨을 리가 없지만, 이 비유를 통해 주시려는 교훈이 아니었기에 굳이 언급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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