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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사순절을 보내면서 묵상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겸손’입니다. 빌립보서 2장은 예수님의 생애를 잘 요약하고 있는데, 이 구절의 중심 주제가 바로 예수님의 겸손입니다.

(빌립보서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도 바울은 주님의 겸손을 소개하면서, 바로 이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웠습니다. 원래 당신이 지니고 계셨던 하나님의 지위 그리고 그 지위에 따르는 권위와 위엄과 존귀와 영광을 다 버리셨습니다. 영어 NIV 성경은 “He made himself nothing.”이라고 실감 나게 번역했습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렸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데까지 낮아지신 것입니다. 성육신 자체가 예수님의 겸손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 성육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요 만왕의 왕이시지만 수도 예루살렘의 궁궐 대신 조금만 시골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공생애 중에 온갖 고초와 수모를 당하시고 마지막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도 백마 대신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0:45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친히 자신의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공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간에 “누가 큰 자냐‘라는 문제를 놓고 다툼이 일어나자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누가복음 22:27)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머쓱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섬김’이라는 한 단어로 정리하셨습니다.

겸손해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제자들에게 겸손을 가르치셨고, 삶을 통해 겸손의 본을 친히 보여주심으로써 현장교육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는 자리에서는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몹시 황송해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세족식은 일차적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불과 얼마 전 십자가 수난예고를 하신 후에도 서로 자리다툼을 하고 선두다툼을 하는 철없고 한심한 모습을 보인 제자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겸손의 교훈을 그들의 뇌리에 분명하게 각인시키시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짐작해봅니다. 우리 인간은 타고난 죄성으로 인한 이기심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면 겸손해지기보다는 교만해지기 쉬운 성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아시기에 겸손의 미덕을 거듭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교만은 사탄의 생리입니다. 사탄은 언감생심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교만을 떨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하늘에서 쫓겨난 타락한 천사입니다. 인간은 죄성을 지닌 존재여서 본의 아니게 사탄의 생리를 닮아가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교훈하는 잠언에는 유독 겸손에 관한 교훈이 참 많습니다. 잠언은 속담(Proverb)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데, 속담은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고 있기에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제에 대하여 속담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다는 뜻이며, 또한 사람들이 그 부분에 취약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입니다. 몇 가지만 소개해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8:12),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느니라”(잠 3:34) 등입니다.

교만 가운데서 가장 위험하고 또 고치기 어려운 교만은 영적인 교만, 신앙적인 자만입니다. 자신이 남보다 더 믿음이 좋고 신앙생활을 더 잘한다고 은근히 으스대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은 누가복음 18장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베푸시면서 영적인 교만을 경계할 것을 간접적으로 교훈하셨습니다. 스스로 경건하고 의롭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바리새인보다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세리가 사실은 더 의롭다고 말씀하시며,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반인들의 생각을 완전히 반전시키신 주님의 의도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디모데후서 3:5).

아래를 보고 위를 보지 못하는 탓에 교만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인간은 거기서 거기, 그저 도토리 키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우러를 때 우리가 상대방보다 혹 나은 점이 있다 할지라도 교만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영국의 에딘버러대학의 제임스 심슨(James Simpson) 교수는 진통제를 발명하여 의학계에서 대찬사를 받았습니다. 그가 어느 날 강의 시간에 "선생님 생애 중 가장 소중한 발견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자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나의 생애에 가장 소중한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께서 죄인인 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적인 겸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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