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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하나님의 섭리와 용서


용서는 기독교 신앙에서 너무나 중요한 덕목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죄의 삯으로 사망 즉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할 가련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 분이시기에 용서라는 방편을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쁜 소식(good news) 즉 복음(Gospel)입니다.

(시편 103:8-14)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는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 (인간은 죄짓고 하나님은 용서하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타고난 죄성으로 인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며,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용서라는 은혜로운 방편을 마련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효로 죄 사함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남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 근거는 바로 주님의 용서입니다. 용서받았으니 용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3-14)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히 내는 띠니라.”


이번 칼럼에서 특별히 생각해보려는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용서하기’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지혜와 계획에 따라 일어난다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용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가운데 하나로 여겨집니다. 하나님은 무궁한 지혜를 가지신 분입니다. 전지하신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이것을 ‘신비’(mystery)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신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원래는 유대인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는 게 순서이나, 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써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 중에 믿는 자들의 수가 차면 그제야 유대인들이 자신의 밥상을 차지한 이방인들에 대하여 시기심을 느껴 스스로 자신의 밥상을 걷어찬 것을 뉘우치고 돌아와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깊은 영적 진리입니다. 이 깊은 신비를 깨달은 바울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로마서 11:33)라고 고백하며 감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장래 일까지도 훤히 내다보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게 합력하여 궁극적으로 좋은 결말을 가져오도록 역사하시며, 심지어 악까지 선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 자신에게 악한 마음을 품고 해코지한 자들까지라도 용서할 수 있는 관용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다고 믿는 것은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는 용서의 과정에서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머리에 떠오르는 성경 인물은 아마도 요셉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주일학교의 단골 주제여서 웬만큼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두 차례의 꿈 때문에 형들에게 시샘을 받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나 형들 중 한 사람의 중재로 이집트의 경호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감으로써 구사일생으로 생명은 건지게 됩니다. 그는 종살이를 하던 중 주인의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물리치려다 오히려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살이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만난 바로의 신하들의 꿈을 해몽해준 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의 꿈을 해몽해주게 되고, 그의 부름을 받아 젊은 나이에 일약 대제국의 총리대신으로 발탁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총리가 된 그는 7년 흉년을 잘 넘기는 일에 일등공신이 되었고, 덕분에 가나안 땅에 있는 가족들을 집단이주시켜 가뭄으로 인해 자칫 아사할 수도 있는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도웁니다. 요셉은 짐짓 자신의 정체를 숨기지만 결국 형들은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되고, 과거의 못된 짓 때문에 앙갚음을 당할까봐 전전긍긍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지금까지 자신의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깨닫고 형들의 잘못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보게 된다는 감동적인 스토리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요셉의 신앙고백을 그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들어봅시다.

(창세기 45:4-8)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창세기 50:18-20)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무고하게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애매한 고난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억울한 일에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요셉의 인생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는 가운데 용서를 베푸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득이 된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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