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받은 은혜를 누리는 삶
받은 은혜를 누리는 삶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받는 은혜요 다른 하나는 누리는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와 천국 백성이 되고, 성령으로 성화되는 것, 그리고 기도의 응답은 받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받은 은혜를 누리는 은혜입니다. 받은 은혜 못지않게 중요한 누리는 은혜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맘껏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신명기 6: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전도서 기자는 누리는 삶에 대하여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6:1-2)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기껏 고생고생해서 재산을 모아놓고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죽으면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그래서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시쳇말로 남 좋은 일만 한 셈이 됩니다. 하나님이 원 없이 주신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어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합니다. 영어에도 “The more, the more”라는 말이 있습니다. “The more we have, the more we want.”를 줄인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한국 발음도 “더 모아, 더 모아”입니다. “이러한 욕심 때문에 만족함이 없고, 만족함이 없으니 당연히 행복해질 수도 없는 법입니다. “행복은 만족하는 데 있다(Happiness consists in contentment.)”라는 문장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제가 무척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는 문장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사하는 마음까지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6-10)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바다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는 법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채울 길은 없으니까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괜히 불만족스럽고 불평이 생기고 급기야 우울해지고 불행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구두가 없다고 신세타령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발목이 없는 사람을 보는 순간 불평을 멈추었다는 얘기는 곱씹어 볼 만합니다. 위와 견주면 항상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까요. 나보다 재물은 적지만 학식이 더 많은 사람이 있고, 나보다 학식은 모자라지만 세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항상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나의 상태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 먹는 것을 족하게 여겨야 하고, 뱁새는 황새걸음 따라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없는 것으로 불평할 게 아니라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소록도에는 교회 입구에 “잃어버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감사하자!”라는 글귀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떨어져 나간 손가락을 보지 말고 아직 남아있는 손가락을 보면서 감사하자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자족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빌립보서 4:11-13)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까마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백조를 만나면서 회의감이 생겼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자태가 너무나 곱게 보였습니다.
“나는 온통 새카맣게 생겼는데 당신은 그리 곱게 생겼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군요.”
그러자 백조가 대답했습니다.
“나보다는 여러 색깔의 깃털을 가진 앵무새가 더 행복하겠지요.”
까마귀는 앵무새를 찾아가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앵무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내쉬면서 “정말 행복했지요, 공작을 만날 때까지는요. 나는 기껏 두세 가지 색깔밖에 없는데 형형색색의 공작의 날개를 보고 나니 실망이 되고 갑자기 우울해지더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까마귀는 동물원에 있는 공작을 만나러 갔다가 수많은 사람이 공작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에워싸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물원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렵사리 공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현란한 공작의 모습에 넋이 나간 까마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보러 오겠네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는 곧바로 쫓아버리려고 하는데 당신에게는 그러지 않네요. 당신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번에는 공작이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름다우면 뭐해요? 그놈의 아름다움 때문에 나는 이렇게 동물원에 꼼짝없이 갇혀있답니다. 까마귀를 새장 안에 가둬두진 않잖아요? 그래서 난 늘 내가 까마귀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답니다.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새해를 맞아 올 한해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맘껏 ‘누리며’ 자족하는 마음으로 마냥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받는 은혜요 다른 하나는 누리는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와 천국 백성이 되고, 성령으로 성화되는 것, 그리고 기도의 응답은 받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받은 은혜를 누리는 은혜입니다. 받은 은혜 못지않게 중요한 누리는 은혜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맘껏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신명기 6:24)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전도서 기자는 누리는 삶에 대하여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6:1-2) “내가 해 아래서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의 영혼이 바라는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하나님께서 그가 그것을 누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기껏 고생고생해서 재산을 모아놓고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죽으면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그래서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시쳇말로 남 좋은 일만 한 셈이 됩니다. 하나님이 원 없이 주신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한 가지 원인이 될 수 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어서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합니다. 영어에도 “The more, the more”라는 말이 있습니다. “The more we have, the more we want.”를 줄인 말입니다. 공교롭게도 한국 발음도 “더 모아, 더 모아”입니다. “이러한 욕심 때문에 만족함이 없고, 만족함이 없으니 당연히 행복해질 수도 없는 법입니다. “행복은 만족하는 데 있다(Happiness consists in contentment.)”라는 문장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제가 무척 좋아해서 자주 인용하는 문장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사하는 마음까지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6-10)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바다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는 법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채울 길은 없으니까요.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입니다. 그래서 괜히 불만족스럽고 불평이 생기고 급기야 우울해지고 불행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구두가 없다고 신세타령을 하던 사람이 어느 날 발목이 없는 사람을 보는 순간 불평을 멈추었다는 얘기는 곱씹어 볼 만합니다. 위와 견주면 항상 모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까요. 나보다 재물은 적지만 학식이 더 많은 사람이 있고, 나보다 학식은 모자라지만 세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항상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나의 상태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 먹는 것을 족하게 여겨야 하고, 뱁새는 황새걸음 따라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없는 것으로 불평할 게 아니라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소록도에는 교회 입구에 “잃어버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감사하자!”라는 글귀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떨어져 나간 손가락을 보지 말고 아직 남아있는 손가락을 보면서 감사하자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자족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빌립보서 4:11-13)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까마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백조를 만나면서 회의감이 생겼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자태가 너무나 곱게 보였습니다.
“나는 온통 새카맣게 생겼는데 당신은 그리 곱게 생겼으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군요.”
그러자 백조가 대답했습니다.
“나보다는 여러 색깔의 깃털을 가진 앵무새가 더 행복하겠지요.”
까마귀는 앵무새를 찾아가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앵무새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한숨을 내쉬면서 “정말 행복했지요, 공작을 만날 때까지는요. 나는 기껏 두세 가지 색깔밖에 없는데 형형색색의 공작의 날개를 보고 나니 실망이 되고 갑자기 우울해지더군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까마귀는 동물원에 있는 공작을 만나러 갔다가 수많은 사람이 공작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에워싸고 있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물원 문이 닫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어렵사리 공작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현란한 공작의 모습에 넋이 나간 까마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보러 오겠네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는 곧바로 쫓아버리려고 하는데 당신에게는 그러지 않네요. 당신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새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번에는 공작이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아름다우면 뭐해요? 그놈의 아름다움 때문에 나는 이렇게 동물원에 꼼짝없이 갇혀있답니다. 까마귀를 새장 안에 가둬두진 않잖아요? 그래서 난 늘 내가 까마귀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답니다.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 수 있을 테니까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새해를 맞아 올 한해는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맘껏 ‘누리며’ 자족하는 마음으로 마냥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Number | Title | Date |
208 |
하나님의 일식(日蝕)
|
2024.05.03 |
207 |
하나님의 타이밍(timing)
|
2024.04.26 |
206 |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
2024.04.20 |
205 |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
2024.04.12 |
204 |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네 가지 마음 밭
|
2024.04.05 |
203 |
순종은 기적을 낳습니다
|
2024.03.29 |
202 |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읍시다
|
2024.03.23 |
201 |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
2024.03.15 |
200 |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
2024.03.08 |
199 |
삼중국적자 크리스천의 애국
|
2024.03.01 |
198 |
회개와 용서
|
2024.02.24 |
197 |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신 예수님
|
2024.02.16 |
196 |
성실함이라는 덕목
|
2024.02.09 |
195 |
꾸준함이라는 미덕
|
2024.02.03 |
194 |
소박한 부교역자론(副敎役者論)
|
2024.01.27 |
193 |
하나님의 섭리와 용서
|
2024.01.20 |
192 |
용서와 징벌
|
2024.01.13 |
191 |
받은 은혜를 누리는 삶
|
2024.01.06 |
190 |
시작과 끝
|
2023.12.30 |
189 |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
2023.12.30 |
188 |
아프레 쓸라(apres cela, 그 다음에는)
|
2023.09.15 |
187 |
하나님의 사인(sign)이 있는 자
|
2023.02.25 |
186 |
신의 한 수
|
2023.02.17 |
185 |
일이냐 사람이냐
|
2023.02.11 |
184 |
잠언의 보편성과 특수성
|
2023.02.03 |
183 |
선한 영향력
|
2023.01.28 |
182 |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잘못
|
2023.01.21 |
181 |
아디아포라(adiaphora) 논쟁
|
2023.01.14 |
180 |
인생의 자산 활용하기
|
2023.01.07 |
179 |
새해를 맞이하며
|
2023.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