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신의 한 수
'신의 한 수'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매우 난감한 상황을 역전시킬만한 의외의 탁월한 선택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신적인 지혜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신의 한 수’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천재적인 재능과 지혜가 요구되기 때문에 굳이 영어로 번역하자면 ‘a stroke of a genius’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한 수’라는 말에서 얼른 연상되는 사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한 아이의 운명이 달려있는 재판에서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자칫 미궁에 빠질 수 있는 딜레마적인 상황에서 오고 오는 시대에 반복해서 회자되는 명판결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당 대표의 소위 ‘방탄 정국’을 지켜보면서 혹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검사를 법무부 장관에 발탁한 것을 두고 ‘신의 한 수’라고 평하기도 합니다. 바둑 세계에서는 다양한 수가 언급되는데, 승패를 가를 착지점에 두는 결정하는 한 점을 흔히들 묘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엄밀히 말하면 ‘인간의 한 수’는 될지언정 ‘신의 한 수’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신의 한 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해주신 데서 보여주신 묘수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 즉 영원한 지옥 형벌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결단코 죄를 간과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갈대아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을 괴롭히고 유린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하박국 1:13)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냥 용서하신다면 이것은 하나님 스스로 모순된 분임을 입증하는 셈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시거나 죄를 결코 간과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의 값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갚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인 인간을 모조리 지옥 형벌에 처하신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사랑에 배치되는 셈이 되고 맙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공의를 세우자니 사랑이 문제가 되고, 사랑을 베풀자니 공의가 문제가 되는 딜레마에 빠지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딜레마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절묘한 ‘한 수’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둘 다를 함께 충족시킬 수 있는 묘수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그 ‘신의 한 수’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골고다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구현된 좌소(座所)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이루시기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에게 인간의 모든 죄를 씌워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대속(代贖)을 통해 죄를 심판하심으로써 공의도 이루시고 죄인을 구원하심으로써 사랑도 이루셨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잘 설명해주고 있는데, 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므로 쉽게 번역한 성경에서 인용해보겠습니다.
(로마서 3:23-26)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으으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보혈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오래 참으심으로 심판을 유보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의로우심을 보이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시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여기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희생시키심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도 의롭다고 인정받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공의를 이루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목제물(a peace offering; a fellowship offering)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드렸던 제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있는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룰 수 있도록 희생제물로 드려졌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인간 편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가지고 선도(先導)하신 사랑의 발로였습니다.
(요한일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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