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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새해를 맞이하며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인생은 태어남(Birth)과 죽음(Death ) 사이의 선택(Choice)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요 작가인 싸르트르(Jean-Paul Sartre)가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자존심이 강해서 모국어 외에는 짐짓 입에 올리기를 꺼리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의 정서를 감안할 때 과연 그가 영어로 이 말을 했을까 살짝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누가 말했든 그 말 자체는 참으로 인생의 정곡을 찌른 멋진 말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한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 없이 선택을 하며 살기 마련입니다. 아침식사를 할까 거를까, 먹는다면 무엇을 먹을까, 외출할 때 무슨 옷을 입을까, 물건을 살 때도 무엇을 살까,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눌까, TV 시청은 무슨 프로그램을 볼까 등등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일상의 선택 외에 학교 선택, 전공 선택, 직업 선택, 배우자 선택과 같은 인생의 중대사,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철학적 사상, 정치 노선, 종교의 선택과 같은 거대담론에 속하는 선택 등 인생의 고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게 됩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대부분의 경우 본인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려있지만, 그 선택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며 또 삶의 내용과 질도 달라집니다.

이 선택은 자신에게 또 하나의 ‘C’인 기회(chance)가 됩니다. 기회는 다가왔을 때 확 낚아채지 않고 우물쭈물하다 보면 어느새 훌쩍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기회포착이라는 타이밍이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의 관건이 될 수 있습니다. 기회는 또 다른 ‘C’인 변화(change)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현상유지에 만족하지 않고 새롭게 변화하려는 용기가 필수적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한국을 먹여살리는 데 있어서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삼성전자는 오래 전 이건회 회장의 결단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들 합니다.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회의에서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야 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단호한 결의를 천명한 것은 꽤나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에서 벗어나 발전하고 성장하려면 용기(courage)를 갖고 도전(challenge)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그러한 결심을 꾸준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해가 되면 다들 나름대로 새해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 결심이 구체적인 경우도 있고 때로는 모호한 경우도 있지만 전혀 아무런 결심도 없이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을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흔히들 작심삼일이라고 해서 그 결심이 오래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결심한 내용을 적어 책상 앞에 붙인 후 그 위에다 ‘3일에 한 번 들춰보자’라는 메모지를 덧붙여놓았다는 이야기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올해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癸卯年)입니다.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는 우리가 다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토끼에게 아쉬운 부분은 꾸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우화에서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라는 서양 격언도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안드레 애거시라는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납니다. “탑레블의 프로선수가 되면 사실 실력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시합 때 일관성(consistency)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골프 스윙에서도 늘 강조되는 것이 일정한 템포와 리듬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꾸준함이 큰 덕목이 됩니다. 한번은 저희 교회에 새로운 교인이 등록을 한 후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신앙생활을 화끈하게 하는 것보다는 꾸준하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저를 다그치지 말고 얼마간 그냥 조용히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그의 말에 공감을 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분들 중 많은 분들이 가마솥형보다는 냄비형 교인입니다. 한순간 화끈 달아올랐다가 사소한 일로 시험을 받아 그만 열정이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교인들도 헷갈리게 되고, 누구보다도 목회자가 가장 헷갈리게 됩니다. 목회자마다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신앙의 열도가 좀 낮더라도 꾸준하게 변함없이 섬기는 자들에게 신뢰가 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이 한 구절 속에 주님이 우리를 택하여 세우신 목적은 신앙의 열매를 맺되 그 열매가 지속적으로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요, 그러한 삶을 살 때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특히 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은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fruit that will last)”라는 구절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는 신앙의 열매가 꾸준하게 지속되는 것입니다. 들쭉날쭉 널뛰기식으로 변덕을 부리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열정과 템포와 리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과 교회를 섬기는 것이 바람직한 덕목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choice(선택), chance(기회), change(변화), challenge(도전), courage(용기), consistency(일관성)와 같은 단어들을 마음에 새기며 새 출발을 한다면, 한 해의 마지막에는 실망스러운 death(죽음)가 아니라 성취감이 넘치는 dream(꿈)의 소담한 열매들을 거둘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I wish all readers a Happy New Year!


***** 칼럼의 내용은 본 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