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자족하는 마음
[caption id="attachment_70552" align="alignleft" width="1800"] VA 페어팩스스테이션에 위치한 '서울장로교회' 전경[/caption]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외웠던 영어 문장 중에 아직도 가끔 뇌리를 스치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외웠던 문장이지만 잊지 않고 기억 속에 오래오래 간직돼 있는 이유는 아마도 제 자신이 이 문장의 의미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Happiness consists[lies] in contentment.” “행복은 만족하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태도는 마음먹은 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꾸준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훈련과 연습은 내 삶의 주변에 있는 극히 사소한 일상에 대하여 만족하고 감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학행(小確幸)’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自足)의 마음가짐이기 때문입니다. 자족은 결코 현재의 삶에 안주하거나 현실도피 내지는 현실부정과는 다릅니다. 자족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스토아 철학의 본산지인 길리기아 다소(Tarsus)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토아 철학의 중심 사상인 ‘자족’에 대하여 남다른 이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전서 6:6-10)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요즘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대장동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이 성경구절이 새삼 가슴에 와 닿습니다.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쓴 서예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걸려 있는데, 이건희 회장도 자기 집무실에 이 작품을 걸어두고 늘 마음에 새겼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또는 “말 타면 종 두고 싶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꼬집는 속담입니다. 영어 표현 중에 “The more, the more.”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한다”는 뜻인데, 공교롭게도 발음이 ‘더 모아, 더 모아’여서 우리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바다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는 법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채울 길은 없으니까요. 자기 몫도 이미 부족함이 없는데 남의 떡이 더 보이는 법입니다. 이 속담의 영어 버전은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입니다. 자기 집 잔디도 그만하면 충분히 푸른데도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비교하는 데서 불만족이 생기고 불행이 싹트는 것입니다. 제 경험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렵사리 교회 부지를 마련하고, 온 성도님들이 정말 온갖 정성을 기울여 성전을 지어 봉헌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교단 모임이 있어 텍사스주의 달라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현지 목사님의 안내로 그 당시 소문이 자자하던 미국의 대형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Ed Young 목사님이 담임하는 Fellowship Church였습니다. 정말 소문대로 그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이 교회 건물을 돌아보면서 우리 교회당이 왠지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성전을 봉헌하면서 그토록 감격스러워했는데, 이 교회 건물을 보는 순간 그 감격이 그만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불만족과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됩니다. 위와 견주면 항상 모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까요. 나보다 재물은 적지만 학식이 더 많은 사람이 있고, 나보다 학식은 모자라지만 세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항상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나의 상태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 먹는 것을 족하게 여겨야 하고, 뱁새는 황새 걸음 따라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없는 것으로 불평할 게 아니라 있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소록도에는 교회 입구에 “잃어버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감사하자!”라는 글귀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자족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11-13)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에서 바울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가 일차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문맥상 이 말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doing이 아니라 being에 관한 말입니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배부르면 배부른 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태도(attitude of mind)가 중요합니다. 칠흑같은 밤에 희미한 불빛 한 줄기만 있어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탄탄대로에 웅덩이 하나만 있어도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만족하고 감사함으로써 진정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면서 외웠던 영어 문장 중에 아직도 가끔 뇌리를 스치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외웠던 문장이지만 잊지 않고 기억 속에 오래오래 간직돼 있는 이유는 아마도 제 자신이 이 문장의 의미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Happiness consists[lies] in contentment.” “행복은 만족하는 데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진정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태도는 마음먹은 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꾸준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훈련과 연습은 내 삶의 주변에 있는 극히 사소한 일상에 대하여 만족하고 감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때 유행했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즉 ‘소학행(小確幸)’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만족하는’ 자족(自足)의 마음가짐이기 때문입니다. 자족은 결코 현재의 삶에 안주하거나 현실도피 내지는 현실부정과는 다릅니다. 자족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적응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스토아 철학의 본산지인 길리기아 다소(Tarsus)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스토아 철학의 중심 사상인 ‘자족’에 대하여 남다른 이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전서 6:6-10)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요즘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대장동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이 성경구절이 새삼 가슴에 와 닿습니다.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쓴 서예작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걸려 있는데, 이건희 회장도 자기 집무실에 이 작품을 걸어두고 늘 마음에 새겼다고 합니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 또는 “말 타면 종 두고 싶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꼬집는 속담입니다. 영어 표현 중에 “The more, the more.”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질수록 더 많이 갖고 싶어한다”는 뜻인데, 공교롭게도 발음이 ‘더 모아, 더 모아’여서 우리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바다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는 법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채울 길은 없으니까요. 자기 몫도 이미 부족함이 없는데 남의 떡이 더 보이는 법입니다. 이 속담의 영어 버전은 “The grass is alway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입니다. 자기 집 잔디도 그만하면 충분히 푸른데도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비교하는 데서 불만족이 생기고 불행이 싹트는 것입니다. 제 경험을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렵사리 교회 부지를 마련하고, 온 성도님들이 정말 온갖 정성을 기울여 성전을 지어 봉헌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교단 모임이 있어 텍사스주의 달라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현지 목사님의 안내로 그 당시 소문이 자자하던 미국의 대형교회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Ed Young 목사님이 담임하는 Fellowship Church였습니다. 정말 소문대로 그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이 교회 건물을 돌아보면서 우리 교회당이 왠지 초라하게 보였습니다. 불과 얼마 전에 성전을 봉헌하면서 그토록 감격스러워했는데, 이 교회 건물을 보는 순간 그 감격이 그만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불만족과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됩니다. 위와 견주면 항상 모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은 항상 있게 마련이니까요. 나보다 재물은 적지만 학식이 더 많은 사람이 있고, 나보다 학식은 모자라지만 세상 지위가 더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항상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나의 상태에 만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 먹는 것을 족하게 여겨야 하고, 뱁새는 황새 걸음 따라 하다가 가랑이가 찢어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없는 것으로 불평할 게 아니라 있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이 있는 소록도에는 교회 입구에 “잃어버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감사하자!”라는 글귀가 붙어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자족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4:11-13)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여기에서 바울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가 일차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문맥상 이 말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doing이 아니라 being에 관한 말입니다.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배부르면 배부른 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터득했노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태도(attitude of mind)가 중요합니다. 칠흑같은 밤에 희미한 불빛 한 줄기만 있어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탄탄대로에 웅덩이 하나만 있어도 불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만족하고 감사함으로써 진정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Number | Title | Date |
208 |
하나님의 일식(日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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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3 |
207 |
하나님의 타이밍(timing)
|
2024.04.26 |
206 |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
2024.04.20 |
205 |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
2024.04.12 |
204 |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네 가지 마음 밭
|
2024.04.05 |
203 |
순종은 기적을 낳습니다
|
2024.03.29 |
202 |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읍시다
|
2024.03.23 |
201 |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읍시다
|
2024.03.15 |
200 |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
2024.03.08 |
199 |
삼중국적자 크리스천의 애국
|
2024.03.01 |
198 |
회개와 용서
|
2024.02.24 |
197 |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신 예수님
|
2024.02.16 |
196 |
성실함이라는 덕목
|
2024.02.09 |
195 |
꾸준함이라는 미덕
|
2024.02.03 |
194 |
소박한 부교역자론(副敎役者論)
|
2024.01.27 |
193 |
하나님의 섭리와 용서
|
2024.01.20 |
192 |
용서와 징벌
|
2024.01.13 |
191 |
받은 은혜를 누리는 삶
|
2024.01.06 |
190 |
시작과 끝
|
2023.12.30 |
189 |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
|
2023.12.30 |
188 |
아프레 쓸라(apres cela, 그 다음에는)
|
2023.09.15 |
187 |
하나님의 사인(sign)이 있는 자
|
2023.02.25 |
186 |
신의 한 수
|
2023.02.17 |
185 |
일이냐 사람이냐
|
2023.02.11 |
184 |
잠언의 보편성과 특수성
|
2023.02.03 |
183 |
선한 영향력
|
2023.01.28 |
182 |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잘못
|
2023.01.21 |
181 |
아디아포라(adiaphora) 논쟁
|
2023.01.14 |
180 |
인생의 자산 활용하기
|
2023.01.07 |
179 |
새해를 맞이하며
|
2023.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