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예수님의 비하(humiliation)와 승귀(exaltation)
우리는 지금 교회 절기상 강림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강림절은 라틴어로 Advent라고 하는데, ‘오심’(coming)이라는 뜻입니다. 강림절은 대림절 또는 대강절이라고도 하는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강림절은 성탄절에서 그 절정을 이룹니다. 성탄절은 말 그대로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리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초림만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파루시아)을 대망하며 우리의 재림신앙을 다지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만 초점이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성품과 인격을 묵상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인격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겸손 즉 낮아지심입니다.
이제 바야흐로 금년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아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분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의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찾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작은 시골 마을인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며, 그것도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한평생 불편하고 힘들게 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한 주간 전에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도 갈기를 휘날리는 멋들어진 백마가 아니라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마치 한 편의 코미디같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온갖 수모와 고통을 당하신 후에 수치스러운 십자가에서 흉악범의 모습으로 처형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삶은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신 겸손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성탄하시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성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스스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안으로 들어오신 사건입니다. 광대무변한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이즈로 한없이 작아지셨습니다. 높디 높은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는 보통 십자가의 고난만 말하지만, 사실 성탄 사건이야말로 또 다른 고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TV에서 몸이 유연한 인도의 요기가 자기 몸을 잔뜩 구겨서 작은 통 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이즈로 자신을 축소시킨 사건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신이신 하나님께는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마음에서 자원해서 그 어려움을 자청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겸손은 기독교의 최상위 덕목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제자들에게 “기독교의 가장 큰 덕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겸손이다”라고 대답했고, 연이는 질문에 두 번째, 세 번째도 겸손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요한 깔뱅은 불후의 명저인 『기독교 강요』에서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겸손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이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상선여수(上善如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겸손의 교훈과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인데,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상의 선(善)을 물의 성질에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물은 항시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만물에 이루움을 끼치며, 서로 선두다툼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감으로써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조화를 이루며, 다양한 그릇의 형태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성과 융통성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게다가 꾸준함과 인내를 통해 마침내 대해에 이른다는 점에서도 우리 인간에게 유익한 교훈을 줍니다.
겸손한 자세는 외견상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에는 승리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흔히들 갈대는 바람에 흔들릴망정 부러지지 않지만, 뻣뻣하게 서서 버티는 나무는 바람에 부러지고 만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다양한 때와 장소에서 비유를 동원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을 통해 겸손을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친히 씻어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2-17)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그 당시 손님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되시고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이 종의 자세로 낮아지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너희들에게 본을 보였으니 너희들도 나처럼 하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결론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복 받기를 원한다면 겸손히 행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2장 5-11절은 “그리스도의 찬가”라고 일컬어집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을 대조적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었지만, 자신을 낮추고 비워 인간이 되셨고, 급기야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이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예수님의 비하(humiliation)와 승귀(exaltation)를 노래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의 비하(卑下)와 승귀(昇貴)를 영어 알파벳으로 형상화하면 “V” 즉 Victory가 됩니다. 패배처럼 보였던 예수님의 생애는 궁극적으로는 승리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골짜기가 깊어야 물이 많이 고입니다. 우리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하게 임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6, 7, 10)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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