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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여호와 닛시



‘여호와 닛시’의 문자적 의미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Jehovah is my banner)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여호와는 나의 승리’라는 뜻으로 새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깃발’과 ‘승리’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군대 가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군인들이 행군할 때 기를 들고 맨 선두에 서서 행진하는 사람을 기수라고 합니다. 기수는 대오의 선두에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향도병(嚮導兵)이라고도 합니다. 기수는 평상시에는 행진 방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지만, 전시에는 진군 방향을 가리키는 역할을 합니다. 전사들은 기수가 이끄는 방향을 따라 진군하며 공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수는 항상 최일선에 서기 마련입니다.

‘여호와 닛시’라는 말은 여호와가 바로 우리 앞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시는 우리의 기수가 되신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 생활을 할 때 아말렉 군대와 일전을 치르게 되는데, 그 전쟁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기수가 되셔서 전력상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중과부적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주셨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세가 세운 기념비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 닛시’입니다. 문맥을 따라 해석한다면,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의 싸움을 진두지휘해주셨기에 우리가 이길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를 보장해주시라는 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어쩔 수 없이 영적인 싸움을 싸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육체로 싸우는 물리적 싸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어려운 싸움이 됩니다.

(에베소서 6:10-13)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상으로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물론 원해서 한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광야 지역에 살고 있는 나라들이 자기네 영토를 지나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거나 선제적으로 싸움을 걸어오니 어쩔 수 없이 치른 전쟁들이었습니다. 르비딤 광야에서 치른 전투는 출애굽 후 첫 번째 치른 전쟁으로서, 에서의 후예인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였습니다. 이 르비딤 전투에서 전혀 전쟁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사실상 승산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모세는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를 하는 대신 여호수아로 하여금 사람들을 선발해서 전투를 지휘하도록 하고 자신은 후방에서 기도로 돕기로 작전을 세웠습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을 대동하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렇게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중 모세의 피곤한 손이 자꾸만 아래로 처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당연히 이스라엘의 전세가 불리해졌고, 그래서 아론과 훌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앉게 하고 자기들은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올렸습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모세의 누나의 남편 즉 자형이었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해가 지도록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았고, 마침내 여호수아 군대가 장쾌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이 전투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일찌감치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치 한 편의 코미디 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입니다.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 산에 오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은 모세가 한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이 지팡이는 모세에게는 그 당시 목자들이 짐승을 몰거나 맹수를 쫓는 데 사용했던 평범한 막대기가 아니었습니다. 모세도 애굽 궁정에서 도피해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돌볼 때 이 지팡이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지팡이는 사실 모세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하나님의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압제 하에서 신음하는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키라고 모세를 부르셨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선뜻 응하질 않았습니다. 한때 40년 동안 애굽 궁정에서 자란 모세는 바로의 대단한 위엄과 권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Let my people go)는 말 한 마디에 호락호락 응할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며 망설였던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들려있던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 하셨고, 그렇게 했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뱀을 피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하셨고, 그렇더니 뱀은 다시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이러한 기적을 통해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바로 그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지팡이는 그 후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일으킬 때 사용되었으며, 홍해를 가를 때도 바로 이 지팡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지팡이는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심을 보여주는 지팡이요,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상징하는 지팡이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가시적인 임재의 심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몸소 체험했기에 전투를 직접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대신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기도하러 산에 올라간 것입니다. 결국 르비딤 전투의 승리는 믿음의 승리요, 기도의 승리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승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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