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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여호와 이레



성경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관련해 등장하는 관용구가 몇 개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웬만큼 한 분들이라면 여호와 닛시, 여호와 라파, 여호와 샬롬, 여호와 삼마와 같은 말들이 익숙하게 들릴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 중에서 가장 익숙한 말은 ‘여호와 이레’라고 생각합니다. “예비하시는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한인이 운영하는, 같은 이름의 동양 제과점이 있는데, 비즈니스의 성격에 걸맞은 상호라는 생각을 듭니다. 이 말의 배경은 창세기 22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이삭은 그저 평범한 외아들이 아니었습니다. 100세에 어렵사리 얻은 아들인데다가 하나님께서 장차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케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의 요구는 이치에도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였고, 따라서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이었지만 순종하기가 매우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모든 인간적인 생각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모리아산으로 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번제에 쓸 장작을 지고 가던 이삭이 불과 칼을 손에 들고 가시는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버님, 불도 있고 칼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꽁꽁 묶어 제단에 쌓은 나무 위에 올려놓고 칼로 내려치려는 순간 하늘에서 여호와의 사자의 소리가 들립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도 이상해서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두루 살펴보니 뒤쪽에 숫양 한 마리가 뿔이 수풀에 걸려 꼼짝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직감적으로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으로 주신 번제물이라 생각하고 그 숫양을 잡아다 번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번제물은 준비해 주신 것에 감사하여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가 필요한 것을 친히 준비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원어를 음역해서 Jehovah-Jireh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의미를 살려 첫 글자를 대문자로 해서 ‘The LORD Will Provide’라고 풀어서 번역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 이레’는 ‘공급해주시는 하나님(God the Provider)’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경험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선교사님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체험한 간증들을 자주 대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교사였던 사도 바울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의 꿈을 통해서 유럽 지역인 마게도냐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마게도냐로 불러주실 때만 해도 미처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냥 그를 부르시지 않고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부르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마게도냐의 관문 도시인 빌립보에 믿음이 돈독하고 헌신적이며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루디아라는 자주 장사를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여인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그 집에 머물면서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미리 예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축복입니다.

19세기에 중국 선교의 길을 개척했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영국에서 좋은 가문에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살았으나 어려서부터 선교사의 꿈을 키워오던 중 마침내 중국의 선교사로 파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몇 년간 선교를 하던 중 하루는 영국의 선교회 총무가 보낸 편지 한 통을 받게 됩니다. "선교비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서 당신의 생활비와 사역비를 매달 보낼 수가 없습니다. 백방으로 노력해보았으나 어쩔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아쉽지만 본국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소환장이었습니다. 테일러는 몹시 난감했습니다. 멀고 먼 곳에 전도하러 왔는데 선교 비용이 없어서 돌아오라고 하다니...돌아가자니 뭔가 아쉽고, 계속하자니 앞 일이 캄캄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다가 일단 하나님의 뜻을 구해보기로 했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하는데 구약성경에 나오는 두 단어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에벤에셀'과 '여호와 이레' 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 땅에 계속 남아 복음을 전파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과연 그가 확신한 대로 하나님은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놀라운 방법으로 제공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많은 동역자들까지 붙여주셔서 중국 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 CIM)라는 유명한 선교단체를 조직해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펼친 결과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품에 안긴 후에 그의 삶에 감동된 세계의 젊은이 1,500명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자비량 선교사로 지원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말씀드린다면, 제가 목회를 하는 동안 저희 서울장로교회는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에 교회 10개를 건축하고, 해마다 여름이면 이 교회들을 중심으로 단기선교를 하며, 선교회별로 할당해서 선교비를 모아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도 지난 주간에 담임목사님을 위시해 장년 12명이 단기선교를 다녀왔습니다. 단기선교를 가서 저녁에는 장년들을 대상으로 부흥회를 하고, 낮에는 어린이들과 중고등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여름성경학교(VBS, Vacation Bible School)를 하게 되는데, 늘 통역자와 운전 봉사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숙소를 마련하는 것도 큰 과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해마다 전혀 예상조차 못 했던 도우미들이 나타나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순종했을 때 여호와 이레의 기적이 일어났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도와주신다는 것을 때마다 일마다 경험하곤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섭리 가운데 보존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자연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먹이사슬(Food Chain)은 피조세계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높으신 지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삶에 있어서 일상의 필요들을 채워주시는 공급자이십니다. 섭리(providence)라는 단어와 공급자(provider)는 어원이 같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믿음으로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자에게 아브라함에게 베푸셨던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동일하게 베풀어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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