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세렌디피티 법칙(Serendipity Law)
‘세렌디피티의 법칙(Serendipity Law)’이라는 조금은 생경한 법칙이 있습니다. ‘Serendipity’라는 단어는 영국의 사전 출판가가 실시한 투표에 의하면,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열 단어 가운데 하나에 해당할 만큼 해석하기가 까다로운 단어입니다. ‘Serendipity 법칙’을 설명한 글들을 두루 읽어보아도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어서 딱 부러지게 정의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serendipity의 사전적 의미는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뜻밖에 찾아내는 재능이나 행운을 의미합니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 실험을 하는 중에 실수나 실패를 통해 의도와는 달리 얻어낸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됩니다. 굳이 영어로 풀어쓰자면, ‘fortuitous accident(운 좋은 우연)’ 또는 ‘pleasant surprise(유쾌한 깜짝선물)’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8세기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Horace Walpole)이 고대 페르샤의 동화 『세렌디프의 세 왕자(The Three Princes of Serendip)』에서 세 왕자가 미처 생각지 못한 ‘우연한 행운’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에서 착안해 이름붙인 법칙입니다. 한 마디로, 세렌디피티는 '운 좋은 발견' '재수 좋게 우연히 찾아낸 것' '우연히 찾아온 행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동원되는 예들이 많이 있지만,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포스트잇(post-it)의 발명은 강력한 접착제를 만들려다가 원료를 잘못 배합하는 바람에 쉽게 떨어지는 접착제를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는데, 지금은 3M 회사에서 제조하는 포스트잇이 악보 표시, 도서 표시, 서류 표시 등 책갈피 대용으로 매우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플레밍이 항생제를 발견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부스럼의 원인인 포도상구균을 배양하고 있었는데, 그만 실수로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은 배양기에 푸른곰팡이 포자가 날아와 붙었는데, 신기하게도 곰팡이가 핀 배양기에는 세균이 모두 죽어 있는 걸 발견하게 됐고, 이 푸른 곰팡이가 폐렴균, 탄저균 등의 세균을 죽인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벤젠의 분자구조 발견, 전자 레인지의 발명, X-ray 발견, 나이론 발명, 플라스틱 발명, 당근으로부터 디스플레이 기술에 필수적인 액정 발명, 충격을 받으면 금만 가고 와장창 깨어지지 않는 안전유리, 잉크젯 프린터, 파이저 회사에서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했다가 부작용 때문에 다른 용도로 사용된 비아그라, 전 세계인이 즐겨 마시는 코카콜라, 치즈, 감자칩과 초코칩쿠키와 대패삼겹살 등도 우연히 발명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외에도 중요한 물리학 법칙들도 우연의 산물로 볼 수 있습니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발견한 만유인력(중력)의 법칙,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목욕탕에서 맨몸으로 나와 감격에 넘쳐 “발견했노라(유레카)!”라고 외쳤다는 부력의 원리도 자주 언급되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예들과는 달리, 세렌디피티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우연한 행운이나 또는 전혀 추구하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넝쿨과도 같은 재수 좋은 행운이라기보다는 나름 열심히 추구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찾아오는 행운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렌디피티의 법칙은 ‘노력 끝에 찾아오는 행운’ 또는 ‘실패 끝에 찾아온 행운’이라는 의미로 읽히기도 합니다. 프랑스 화학자이자 세균학자로 유명한 루이스 파스퇴르가 남긴 유명한 명언,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짓는다”는 말은 바로 세렌디피티를 이러한 의미를 잘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천국의 비유 중에 비슷한 교훈을 준다고 해서 성서학자들이 ‘쌍둥이 비유(twin parables)라고 이름붙인 두 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13:44-46)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이 두 비유의 공통점은 귀하고 값진 것을 발견했을 때 전 재산을 팔아 자신의 소유로 삼았다는 점이며, 차이점은 전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우연히 보화를 발견하게 되었고, 후자는 스스로 노력하는 중에 보화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두 비유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렌디피티의 두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연히 얻은 행운이든 노력해서 얻은 행운이든 모두 행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서구 사람들이 특별히 그룹 스터디용으로 자주 애용하는 성경 중에 ‘Serendipity Bible’이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는 중에 영적인 진리, 특히 복음을 발견하는 행운을 통해 구원과 영생과 복락을 누리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성경 이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발견한 행운을 ‘Divine Serendipity(신성한 행운의 발견)’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곱은 기근이 들었을 때 양식을 구하러 아들들을 애굽으로 보냈는데 오랜 세월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을 찾게 됩니다. 사울은 아버지가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으러 사흘 동안 산악지대를 헤매는 중에 그에게 기름부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울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게 됩니다.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전해줄 물건을 가져다주려고 갔다가 블레셋 군대의 거인 골리앗과 대결을 벌이게 되었고, 물맷돌로 그를 때려눕히는 쾌거를 이룸으로써 일약 국민 영웅으로 우뚝 서게 되면서 장차 왕위의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뽕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예수님의 눈에 띄어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게 되는 일을 계기로 인생의 행로가 180도 달라집니다. 몇몇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러 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게 됩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해 체포영장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으로부터 이방 사도의 사명까지 부여받게 됩니다.
이 모든 사례들은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가운데 ‘우연히 일어난 일들(accidents)’입니다. 물론 본인 자신의 노력이나 바람이나 의도에 의한 것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인의 안목으로 보면,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은혜의 사건들 즉 ‘divine seredipity’입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우연’이자만, 하나님 편에서는 ‘필연’인 사건들입니다. 때로 하나님은 부모, 목회자, 교사, 친구 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 또 때로는 이러저러한 환경과 상황들을 통해 우리를 복음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좋든 나쁘든, 그리고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가 접하는 모든 삶의 정황들이 하나님의 섭리적 손길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빚어내는 퍼즐 조각들의 역할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때로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우회로가 우리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divine serendipity’에 감사하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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