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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고난을 낭비하지 않는 지혜



저는 지난 주간 한국일보 ‘커뮤니티 소식‘에 실린 기사에 눈이 갔습니다. 제가 아는 그레이스 권(권수민) 양의 ‘남다른 여정’에 관한 기사였습니다. 권 양은 2살 때 부모님 그리고 오빠와 함께 버지니아 주로 이민한 후 검정고시(GED)를 거쳐 이 지역의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를 거쳐 뉴욕에 있는 Ivy League 명문인 코넬(Cornell) 대학교의 School of Industrial and Labor Relations에 편입학해서 2년 동안 장애인 정책을 연구하는 동안 풀브라이트 장학금, 뉴욕대학 총장 장학금 등 유수한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마치고 영예롭게 졸업했다는 내용입니다. 권 양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오빠의 영향으로 장애인들을 위한 정책 수립과 일자리 관련 등을 통해 장애인들을 사회에 통합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정책에 관하여 공부했습니다. 학업의 일환으로 베트남과 인도에 건너가 현지 청소년들과 함께 제3국의 노동 현실을 체험했으며, 올 10월에는 한국을 방문해 장애인 고용 실태와 정책 등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코넬 대학 학보에 실린 내용도 함께 읽으면서 권 양이 정말 자랑스러운 한인 학생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권 양의 이야기를 좀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제가 시무하던 서울장로교회의 부목사로 몇 년간 함께 동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권 목사님 부부가 아들 때문에 겪었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권 양이 겪었던 남모르는 고충, 특히 사춘기 시절의 방황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 시절의 방황으로 인해 정규 과정 대신 검정고시를 치르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장애인 사역을 시작하게 된 동기도 바로 수민 양의 오빠 하민 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고난을 낭비하지 않는 지혜”라는 말이 머리를 스쳐갔습니다. 자칫 곁길로 빠져 탈선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 고난을 밑거름 삼아 의미 있는 삶을 개척해나가는 그 장한 모습에 힘껏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우리 인생 길에는 고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고난의 색깔과 크기와 길이와 깊이는 다를지언정 고난이 전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지혜롭게만 사용한다면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고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고난의 유익’이란 말을 하곤 합니다. 이 말은 ‘찬란한 슬픔’ ‘군종 속의 고독’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형용모순적 표현(oxymoro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난과 유익은 서로 상치되는 모순입니다. 고난과 유익은 물리적인 융합이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는 믿음이라는 촉매제로 인해 묘한 화학적 케미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가리켜 ‘변장된 축복’이라 말하고, “모든 좋은 것은 고난의 보자기에 싸여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시편 119:67, 71)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이 시편 기자는 고난당한 것이 도리어 자신에게 유익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율례들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고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바른 삶을 살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2년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쓴 죤 번연은 40세에 시각장애인이 되었고 아내마저 잃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오, 주님! 이런 고통들을 통해 내 영혼이 수그러짐은 나의 창조주를 섬기기 위함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인격을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연단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은혜의 한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당할 때 그 고난 자체보다는 그 고난을 통해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항상 평탄한 길로만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넘어야 산도 많고 건너야 할 강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장애물들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는 지혜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통해서도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서정주 시인이 노래했듯이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목청껏 울어야 했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우르릉 쾅쾅대야 했으며, 간밤에 무서리도 내려야 했고, 시인 자신도 잠을 설쳐야만 했습니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이토록 요란을 떨어야 할진대 한 인생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할까요. “인내와 손을 잡으면 고난도 연인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고 가는 배낭이 너무 무거워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참고 정상까지 올라가 배낭을 열어 보니 먹을 것이 가득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에는 짐짓 무거운 돌덩이를 등에 짊어집니다. 헛바퀴가 돌지 않도록 자동차에 일부러 짐을 싣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짐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닌 듯싶습니다.

대추나무에 대추가 많이 열리도록 염소를 매어 놓는다고 합니다. 염소는 잠시도 그냥 있지 못하는 성마른 짐승이어서 묶임에서 벗어나려고 사력을 다해 고삐를 당기며 나무를 마구 흔들어댑니다. 그러면 대추나무가 잔뜩 긴장하면서 본능적으로 대추를 많이 열게 해서 열매를 번식시키려는 필사적 노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추 얘기가 나온 김에 대추를 주제로 한 시 한 편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입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태풍 몇 개 / 저 안에 천둥 몇 개 / 저 안에 벼락 몇 개 /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우리는 넘어졌을 때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실패는 넘어지는 게 아니라 넘어진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설 때도 그냥 일어서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무엇인가를 줍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고난을 낭비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고 도종환 시인이 노래했듯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일종의 성장통(growing pain)이라 생각하면서 이 고난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재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그럴 때 고난은 쓰레기(trash)가 아니라 보화(treasure)로 변신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암 부스(William Booth)의 말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나의 성공의 비결은 고난이 올 때마다 한 걸음씩 전진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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