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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집단이기주의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 성선설과 성악설이 있는데, 기독교의 입장은 성악설입니다. 그런데 성악설의 근거는 인간의 원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지니고 있으며, 모든 죄악은 바로 이 죄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해입니다.

요즘 자주 언급되고 있는 집단이기주의도 이기주의의 한 형태입니다. 집단이기주의는 특정 집단이 공동체 혹은 국가 전체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사회현상을 이르는 말입니다. 특정 집단은 노동조합·기업·농민·의사 등과 같은 이익집단을 포함하며, 정부에 소속된 고위 관료·검찰·경찰, 더 나아가 군인, 가장 크게는 지역주민으로까지 확대되어 지역이기주의를 낳게 됩니다. 이 용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언론이나 학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공공선(公共善, common good, public good)을 위해 행사되었던 집단행동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전술로 왜곡되는 사례가 날이 갈수록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지역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과 핌피(PIMFY: Please In My Backyard) 현상입니다. 님비현상은 혐오시설을 자기 지역 내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입니다. 이를테면, 화장장, 쓰레기 소각장, 장애인 시설, 심지어 임대아파트 등이 들어오는 것을 극력 반대하는 현상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핌피현상은 지역 내에 선호시설 설치를 무조건 요구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공기업과 신공항 등을 유치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이전에는 님비현상이 지역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논의되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중앙정부 주도의 대규모 토목사업 등과 맞물려 핌피현상이 주된 관심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하나같이 현실적이지만, 다른 사람들에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이상주의자가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이타주의의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23-24, 33) “모든 것이 가(可)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beneficial)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constructive)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사도 바울은 초대 교회 시절 특히 이방인 교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우상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지침들을 정리해서 교훈하는 중에 이 말씀을 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로마(Greco-Roman) 권역에 있는 교회 교인들은 이방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던 고기(육류)와 포도주를 먹어도 되느냐 먹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것이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이에 대한 입장 차로 인해 교인들 간에 묘한 갈등의 기류마저 흘렀습니다. 신앙이 성숙한 자들은 우상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공적인 신에 불과하며, 따라서 우상제물을 먹은 것은 하등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믿음이 약한 자들은 우상제물을 먹으면 자칫 귀신이 음식과 함께 몸 안으로 들어온다는 나이브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우상제물 먹는 것을 께름칙하게 여겼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사도 바울은 “뭣이 중하디?”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까짓 우상 제물을 먹고 안 먹고가 뭐 그리 중요한가. 정작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이라도 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는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의 입장을 배려하여 차라리 고기를 먹지 않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1-3)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사도 바울은 만일 내가 거리낌 없이 고기를 먹어 믿음이 연약한 자를 실족하게 한다면, 차라리 나는 평생 고기를 입에 대지도 않겠다고까지 다짐합니다. 주님께서 위해서 돌아가신 그 형제를 위해서라면 그깟 고기가 뭐 그리 대수인가. 한 영혼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데!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입장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자기 위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입장에 서는 게 신앙인의 바른 자세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태도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길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교리문답에서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뇨?”하고 물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대답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가 식사 감사기도를 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문구, 즉 “먹든지 마시든지”가 바로 이 성경 구절에서 연유한 말입니다. 우상제물로 바쳤던 고기를 먹든지 안 먹든지, 그리고 곁들여 바친 포도주를 마시든지 안 마시든지, 그 판단기준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안 되느냐’로 가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국은 유교의 영향으로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편입니다. '멸사봉공'과 '선공후사'라는 집단주의적 사자성어도 유교에서 유래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우면서 자랐지만, 농경사회의 촌락공동체는 두레나 품앗이처럼 집단문화의 요소가 좋은 전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전통이 오염되어 요즘에는 패거리 문화로 전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미국에서도 삼심 여 성상을 보낸 자로서, 요즘 한국과 미국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으며, 그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Enough is enough!(해도 해도 너무 한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이제는 올바른 가치나 원칙이나 철학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로지 편 가르기, 줄 세우기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타협이나 양보의 미덕은 실종되고 오직 이익 카르텔을 고수하려는 후안무치의 생떼 부리기만 판치고 있는 민망스러운 현실입니다. 교수들이 선정한 2023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습니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한 번쯤 깊이 새겨 봄직한 사자성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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