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서양 격언 중에 “Honesty is the best policy”(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라는 익히 알려진 격언이 있습니다. 이 격언은 이런저런 꾀를 내어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는 것보다 정직한 것이 최상의 전략이라는 뜻입니다. 이 격언은 벤저민 프랭클린이 처음 언급했다고 전해지지만 다른 주장들도 있습니다. 누가 처음 말했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정직은 전통적으로 귀중한 가치로 여겨져 왔습니다. ‘바를 정’(正)과 ‘곧을 직’(直)이 합쳐진 정직(正直)은 말 그대로 ‘바르고 곧음’이라는 뜻입니다. ‘honesty’의 뿌리는 ‘존경할 만한’ ‘고귀한’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honestus’이며, ‘honestus’의 원형은 ‘명예’ ‘명성’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honor’의 원형 ‘honos’입니다. 굳이 ‘정직’과 딱 맞아떨어지는 영어 단어를 찾자면 ‘integrity’를 꼽을 수 있습니다. ‘integrity’의 뿌리는 ‘흠결 없는’ ‘속이지 않은’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integritas’입니다. ‘integrity’를 우리 말로 번역할 때 딱 맞아떨어지는 한국어가 없어 매번 고민이 되는데, 저는 문맥을 따라 대체로 ‘정직+성실함’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맥에 따라 때로는 ‘정직’으로, 때로는 ‘성실함’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요컨대, 정직이란 성실성, 진실성, 솔직함 등의 덕목을 포괄하고 있으며, 때로는 공정과 충실함을 의미하기도 하는, 한 마디로 ‘고귀한 성품’을 이르는 단어입니다.
성경 중에서도 지혜서에 속하는 잠언은 여러 군데서 정직을 지혜로운 처세의 덕목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11:3),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12:19),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12:22).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말의 진실성에 대하여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태복음 5:37)고 교훈하셨습니다.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다고 하면 그만이지 더 이상 군더더기 말을 붙이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이것은 거짓을 호도하기 위한 얄팍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참기름이면 됐지, 굳이 “진짜 순 100% 참기름”이라고 악센트를 넣어서 말하는 것은 가짜 참기름이 판을 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곤란한 질문을 받을 경우, 검은 것은 검다고 하면 되고, 흰 것은 희다고 하면 되는데, 적당히 회색적인 대답을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사자성어는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얼토당토않은 것을 우겨서 남을 속이려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선거철이 되면 거짓이 횡행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일도 아닙니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도 거짓의 경력이 화려하며, 거짓을 믿도록 사주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가 점차 악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게다가 거짓말을 하고도 태연하고 뻔뻔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을 열렬히 추종하는 극렬분자들의 팬덤현상도 놀랍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바로 이번 주간에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성추행 입막음 돈과 관련해 사업 기록 위조 혐의 34건 전체에 대해 배심원 12명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는 만장일치가 안 되면 불일치 배심(hung jury)이 되거나 판사가 미결정 심리(mistrial)를 선포하기도 합니다. 1995년에 있었던 OJ 심슨의 살인사건은 정황상 살인이 확실한데도 배심원들의 평결이 만장일치가 되지 않아 결국 무죄로 확정된 적이 있습니다. 이걸 보면 이번에 무려 34건에 대하여 만장일치 평결이 나왔다는 것은 거짓말임이 분명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이것을 도무지 인정하려 들지 않으니 정말 후안무치도 이 정도가 되면 정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허언증(虛言症)이란 증상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이것은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일종의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뜻하는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이나, 실제로 앓는 병이 없음에도 아프다고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해를 하여 타인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정신질환을 의미하는 뮌하우젠 증후군(Münchausen Syndrome)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남을 속일 목적으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못된 습성, “숨 쉬는 것 외에는 모두 거짓말”인 경우를 말합니다. 특히 정치인들 중에서 허언증에 빠진 자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쯤은 식은 죽 먹기로 아무런 심리적 부담 없이 자행하는 자들입니다. 허언증의 특징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피해를 입히지 않는 거짓말, 대수롭지 않은 거짓말을 하는 데서 시작하여 점차 강도가 심해지고 대담해집니다. 이런 습성이 배면 자칫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지경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을 낳고, 하나의 거짓말이 계속 다른 거짓말들을 새끼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살다보면 악의 없는 거짓말, 이른바 ‘하얀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고 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서시>에서 고백했던 내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할 정도로 순백한 삶을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교인들을 대할 때 때로는 본의 아니게 살짝 거짓말과 거짓 행동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하얀 거짓말일지라도 정당화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100% 진실만을 말하며 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가령 교인 중에 고의적으로 피하거나 백안시하는 자가 있을 경우 목사가 꼭 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소위 ‘위대한 위선’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는 계속적으로, 의도적으로, 악의적으로 거짓을 일삼는 것이 문제입니다.
‘거짓’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거짓은 사단의 변하지 않는 본성이며 주특기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속성을 거짓말하는 것으로 규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속여 인류를 타락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사탄은 진실에 거짓말 한 방울을 섞어서 교묘하게 유혹합니다. 완전한 거짓은 쉽게 들통이 나지만 반(半)진리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듭니다. 하와가 그 술책에 넘어감으로써 인류에게 대대로 불행을 전수해주는 장본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경우, 특히 돈과 연루돼 있을 때 쉽게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밥을 이기는 충견(忠犬)이 드물고, 돈을 이기는 충신 (忠臣)도 드물다” 또는 “돈이 말을 하면 진실은 침묵한다(When money speaks, truth keeps silent.)”와 같은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Thomas Jefferson은 “정직은 지혜의 책의 첫 번째 장이다(Honesty is the first chapter in the book of wisdom)”라고 했습니다. 참 지혜는 정직에서 출발한다는 뜻입니다. 정직은 신용사회의 밑천입니다. 신용은 자본입니다. 그런데 신용은 하루 아침에 얻을 수 없습니다. 정직함이 축적되고 인정받을 때 비로소 신용이 쌓이게 되며, 바로 이 신용이 인생에서 성공의 밑거름이 되는 것입니다.
Number | Title | D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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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
프레임 씌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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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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