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유에스코리아뉴스

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초심을 잃지 맙시다



목회자에게는 세 가지 마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초심, 열심, 뒷심입니다. 목회자들이 실패하는 경우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많은 경우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탈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수시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정상 궤도를 달리고 있는가 (Am I on the right track?)” 우리는 자칫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로를 이탈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있습니다. 처음 신학교에 입학할 때의 결의, 목사 안수를 받을 때의 결심, 그리고 목회 임지에 부임했을 때의 다짐이 어느새 희미해지고 선로를 벗어난 것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착각하며 지낼 때가 있습니다. 요즘 자주 듣는 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죠.

다윗은 많은 사람에게 믿는 자의 사표로서 우러름의 대상이 되어 왔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의 존재는 가히 절대적이지만, 그도 인생에 오점을 남기게 되었는데 그 원인이 바로 초심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개 시골뜨기 목동으로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발탁되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을 당시에는 너무나 분에 넘쳐 두려움마저 느꼈을 것입니다. 사극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사처럼 “황공무지로소이다!”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만난을 극복하고 드디어 왕위에 오르고, 수차례의 전쟁을 통해 주변의 여러 나라들을 평정한 후 모든 것이 안정되었을 때 충직한 장군 우리아 장군의 아내를 범하게 됩니다. 그것도 우리아 장군이 목숨을 무릅쓰고 전장에서 전투 지휘를 하고 있는 중에 말입니다. 사람이 긴장하고 있을 때는 탈선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해이해지면 자칫 탈선의 덫에 걸리기 쉽습니다. 이 탈선의 결과로 다윗 가문은 왕자의 난으로 형제와 자매들 간에 비극적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고, 자신도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허겁지겁 피란을 가고 아내들이 대낮에 공개적으로 욕을 당하는 불명예를 겪게 됩니다.

다윗 이전에 통일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는 영광을 누렸던 사울 왕도 처음에는 매우 겸손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막내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 속한 그는 스스로 왕이 될 자격에 미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져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거짓 변명까지 하다가 하나님에 의해 폐위되는 불행을 겪게 되었습니다. 초심을 지키지 못한 탓에 이런 결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다윗 왕의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겠습니다. 그의 통치 말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는 어느 날 은근히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인구조사를 실시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왕이 인구조사를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며, 오히려 세금을 걷거나 군대 조직을 위해서 인구조사는 통치자가 해야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일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인구조사를 한 동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평생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왔고,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 덕분에 거대한 통일왕국의 통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통치 말년에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백성의 수효와 군사력을 내세워 은근히 으스대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하나님 대신 자신이 영광을 취하려 했으며, 하나님 대신 군사력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의도를 간파한 요압 장군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라고 명하자 이를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다윗의 교만한 마음을 간파한 사탄이 그의 장기인 틈새전략으로 그를 충동질하여 결국 인구조사를 강행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잠언이 교훈하듯이,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위대한 심리학자(?)인 사탄은 인간의 이러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은 다윗 왕을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그를 징계하시기 위해 그의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왕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온 백성이 어려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골퍼들 입에 오르내리는 죠크 중에 “천고마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마치 사자성어처럼 들립니다. 그 의미인즉 “고개는 천천히 들고 마음은 비우라”는 뜻입니다. 골프에서 샸(shot)을 할 때 고개를 들면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골프 교습가들은 머리를 들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잔소리를 해댑니다. 그리고 비거리를 내보겠다는 욕심이 앞서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면 오히려 몸이 굳어져 비거리를 내기는커녕 때로는 헛스윙을 하는 바람에 웃음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욕심이 들어가는 것은 허파에 헛바람이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리라”(야고보서 1:14-15)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초심을 버릴 때 자칫 유혹의 덫에 빠질 위험이 크다는 것을 늘 마음에 깊이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모범이 되는 분입니다. 그는 초심을 끝까지 지킴으로써 교회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친 분입니다. 그는 신학자요 선교사요 목회자로서 어느 한 분야에도 소홀함이 없었던 철두철미한 분으로서 아낌 없이 존경받아야 할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토록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초심을 끝까지 유지한 데 있다고 봅니다. 어느 신학자는 사도 바울의 다메섹 도상의 경험을 중심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바로 이 점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즉 바울은 일평생 다메섹 도상의 경험을 잊지 않았으며, 그가 사역하는 내내 마음이 흔들리고 해이해질 때마다 늘 다메섹으로 돌아가 마음을 다잡곤 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사도행전에서 그가 반복적으로 이 경험을 진술한 데에서도 입증이 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요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는 그의 고백은 그저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자를 불러 이방 사도로 삼으신 주님의 은혜를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은혜는 “무자격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라고 정의됩니다. 저는 앞에서 목회자가 가져야 할 세 가지 마음이 초심, 열심, 뒷심이라고 했는데, 이 세 가지 마음을 한 단어로 묶어서 표현한다면 ‘항심’(恒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하지 않는 꾸준한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질 때 초심도 지키고, 계속 열심도 내고, 뒷심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실함의 으뜸가는 특징은 꾸준함입니다. 성실한 사람 치고 꾸준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운동 선수들이 어느 궤도에 오르면 실력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는 일관성입니다. 오래 전에 애거시라는 미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한 것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일류 선수(top player)가 되면 실력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관성(consistency)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나중에 잘 되고 나서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술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함께 고생한 아내를 이제 좀 살판났다고 헌신짝처럼 내버린다면 정말 못난 자라고 지탄받아 마땅합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있을 때 잘해. 자칫하면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어.”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우리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는 성경의 교훈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초심을 잃지 맙시다!




***** 칼럼의 내용은 본 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