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직설법(indicative)과 명령법(imperative)
지난 칼럼에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성경은 크게 복음 그리고 복음의 적용 즉 실천(생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난 칼럼에서는 신약성경을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오늘은 같은 주제를 구약성경을 중심으로 다른 시각에서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직설법(indicative)은 현실의 사실을 그대로 서술할 때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화법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와 같이 사실을 진술하는 화법을 말합니다. 그리고 명령법(imperative)은 화자(話者)가 청자(聽者)에게 무엇을 시킬 때 그 원하는 행동을 표현하는 화법입니다. 예를 들면,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와 같이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명령하는 화법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직설법과 명령법을 쉽게 이해하려면, “...했으니 (그러므로) ...하라”라는 공식을 염두에 두면 됩니다. 십계명이 기록된 출애굽기 20장을 예로 든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고 지키라고 명령하시기 전에 먼저 그들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시키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십니다.
(출애굽기 20:1-3)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신명기 5:6-7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광야로 인도해내셨습니다. 이 사건은 영적으로 풀이하자면, 사탄으로 상징되는 바로 왕이 지배하던 애굽이라는 어둠의 세계에서 예수님의 예표인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죽음을 면하고 자유의 몸이 된 사건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사탄에게 종놀이하며 죄의 삵으로 죽음을 면할 수 없었던 인간이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의 공효로 죄사함 받고 영생의 구원을 받는 것 즉 ‘복음’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입은 자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일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일이 바로 십계명을 준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이어지는 ‘실천적인 삶’입니다. 복음이 직설법이라면, 실천적인 삶은 명령법입니다.
모세오경을 보면, 십계명에 나타난 “직설법-명령법” 도식을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신명기 24장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사례들을 언급해보겠습니다.
신명기 24장에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소외층에 속했던 과부, 고아, 나그네 또는 거류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몇 가지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갓 결혼한 부부의 경우 남편의 군 복무를 면제해줄 뿐만 아니라 아무 직무도 맡기지 말고 일 년 동안 집에서 한가하게 지니면서 아내를 즐겁게 하라. 둘째, 식생활에 필수도구인 맷돌 전체나 그 위짝을 전당 잡는 것은 생명을 전당 잡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이것들을 전당 잡지 말라. 셋째,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주며 전당물을 취할 경우 너는 밖에 서 있고 주인이 전당물을 가져오도록 할 것이며, 주인이 가난한 자이면 그 전당물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 밤에 이불 대신으로 덮고 잘 수 있도록 배려하라. 넷째,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을 학대하지 말며, 그들의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다섯째, 연좌제를 금하라. 여섯째,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라. 일곱째, 곡식이나 과일을 추수할 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위해 짐짓 얼마간 남겨두라.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명령들을 하는 중에도 출애굽의 은혜를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24:18, 2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요즘에만 통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힘 없고 빽 없는 자들은 재판에서 늘 불리하고 억울한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특히 공정한 재판에 대하여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상거래를 할 때도 정직하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런 경우에도, 하나님은 출애굽의 은혜를 상기시키시곤 했습니다.
(레위기 19:35-36) “너희는 재판을 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이 외에도 하나님의 윤리적인 명령의 배후에는 암묵적으로 출애굽의 은혜 즉 복음이 그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디커티브-임페러티브“의 도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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