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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순종은 기적을 낳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구약이든 신약이든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특히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기적에 관한 기록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그 가운에서도 마가복음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기적 이야기를 제하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온통 기적 사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기적을 가리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적이나 이적 또는 기사(奇事)라는 단어들(miracle, wonder) 대신 ‘표적’(sign, 헬라 원어:σημεῖον)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한 사도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채용한 단어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 가운데 완전수인 일곱 가지 기적만을 선별해 소개하면서, 그가 예수님의 기적을 소개하는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기적들은 예수님이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단지 보통 인간이 아니라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야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표적’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그분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기적들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의도를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분류해 본다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치유기적과 자연기적입니다. 치유기적에는 죽은 자를 살리는 것, 각종 병을 고치는 것,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exorcism)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기적에는 태양을 멈추게 한 것, 홍해를 가른 것, 구름 기둥과 불 기둥 사건,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 반석에서 물을 낸 사건, 우레를 발한 사건,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사건, 물 위로 걸으신 사건, 오병이어 사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신 사건, 물고기를 많이 낚은 사건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 ‘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나요. 일반적으로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서 기대조차 하기 힘들거나 아예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종교적인 의미로는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기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적 가운데 가장 큰 기적은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가장 큰 기적 아닐까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죽은 자가 살아난 사례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도 부활한 자들이 있었고, 예수님 자신이 부활시키신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다른 사람들의 부활은 성격상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들은 비록 죽음에서 소생했지만 다시 죽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영생의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인류 역사상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기적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나요?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다시 살아날 수 있나요?” 한 학생이 대답했습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엉뚱하지만 명답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죽지 아니하셨다면 부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순종이 기적을 낳은 것입니다.

성경에는 순종으로 기적이 일어난 예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몇 가지만 간략하게 소개해보겠습니다. 우선 여리고성 함락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였던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순종의 결과였습니다. 아람 군대장관 나아만이 불치병인 문둥병을 고침받은 것도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순종으로 거둔 축복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새껏 고기잡이에 허탕을 치다가 풍어(豐漁)의 기적을 낚아 올린 것도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린 순종의 열매였습니다. 이성과 경험과 상식을 익사시키고 그 대신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건져 올린 것입니다.

“신앙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파스칼이 한 말입니다. 그는 프랑스의 수학자요 과학자요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이성이 허용하지 않는 것은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중병을 앓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 이후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우리의 이성을 넘어서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사변적인 논리를 뛰어넘어 자신의 삶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자주 인용되곤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수학자나 과학자나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한국 지성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이어령 교수님도 따님을 통해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또 다른 영역이 있음을 믿게 되면서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었고, 『지성에서 영성으로』 극적인 선회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할 때 기적을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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