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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꾸준함이라는 미덕

꾸준함이라는 미덕


마부위침(磨斧爲針)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고사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이태백은 어렸을 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산에 들어가 공부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공부에 싫증이 나서 스승 몰래 산에서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집을 향해 걷고 있던 그는 계곡 아래 흐르는 냇가에서 한 노파를 만났습니다. 그 노파는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지금 뭘하세요?”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단다.” “그렇게 큰 도끼를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 중도에 그만 두지만 않는다면.” 이태백은 ‘중도에 그만 두지만 않는다면’이라는 말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다시 학문에 정진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는 공부를 하다가 마음이 해이해지려고 하면 그 노파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더욱 분발했고 마침내 당대의 걸출한 시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그의 명성이 퇴색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마부위침은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이라도 노력과 끈기와 인내심만 있으면 마침내 성공하고야 만다는 교훈을 주는 참으로 의미 있는 고사성어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즘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정신입니다. 이 말은 주로 스포츠와 관련해 애용하는 말이 되었는데, 이번 카타르 도하 아시안 축구 게임에서 거의 승산이 없었던 한국 팀이 마지막 1분을 남겨놓고 조규성 선수의 동점 골로 회생하여 연장전을 치르고 승부차기까지 가서 감격적인 승리를 거두는 장면을 보면서 ‘중꺽마’ 정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투장 중에 '비' 광(光) 그림이 그려진 것이 있습니다. 이 화투장에 얽힌 내력은 이렇다고 합니다. 이 화투장에는 도복을 입고 우산을 받쳐 들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일본에서 ‘서예의 신’이라고 불리는 오노노도호입니다. 그는 자신이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여 서예를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극도의 슬럼프에 빠져있던 그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에라 모르겠다. 이제 더는 못하겠어. 집어치워야지. 그까짓 글씨를 잘 써서 뭣 한담?" 하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습니다. 무심코 길을 걷고 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갑자기 불어난 빗물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고 버드나무 가지를 잡기 위해 몇 번씩이나 뛰어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애처로운 광경을 보면서 그는 “참으로 멍청한 녀석이구먼. 아무리 발버둥을 쳐본들 저 미끄럽고 높은 버드나무 가지에 닿지 못할 건 뻔한데…” 하면서 혀를 끌끌 차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강한 바람이 휙 불어와 버드나무 가지가 휘어졌습니다. 개구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안간힘을 쓰면서 마침내 버드나무 가지에 뛰어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그는 “멍청한 건 나였어. 나는 개구리만큼도 열심히 서예에 매달리지 않았잖아” 하고 자신을 자책하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붓글씨에 정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꾸준함과 관련해 자주 인용하는 예가 바로 ‘1만 시간의 법칙’입니다. 사람이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으로서 1993년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의 심리학 교수인 엔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의 논문에 처음으로 등장한 개념입니다. 이 1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씩 투자하면 10년, 하루 10시간씩 투자하면 3년이 걸리는 긴 기간입니다. 한때 『미쳐야 미친다』(정민 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습니다. 앞의 ‘미치면’은 미칠 광(狂)의 ‘미치다’이고, 뒤의 ‘미친다’는 도달한다는 의미를 가진 미칠 급(及)의 ‘미치다’입니다. 한문에도 같은 의미를 가진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일가(一家)를 이룰 수 없으며 전문가의 경지에 이를 수 없음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건반 악기와는 달리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는 오로지 손가락의 포지셔닝에 의해 음을 내게 되어 있는데, 기교가 까다롭고 어려운 곡을 마치 ‘미친 듯이’ 연주하는 자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반복연습을 했으면 저토록 정확한 음정을 낼 수 있을까, 정말 저절로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프로그램 중에는 정말 혀를 내두르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인내와 꾸준함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자들도 만나게 되고, 수많은 반복을 통해 신기에 가까운 자신만의 독특한 기능을 통달한 자들도 대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스치는 영어 문장이 있습니다. “Practice makes perfect.” 연습만이 완벽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며 왕도가 따로 없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위대한 업적은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옛날 그 강대했던 로마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주로 기도와 관련해 꾸준함을 강조하시곤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Ask, seek, knock)”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은 꾸준히 기도할 것을 점층법을 사용해 아주 멋들어지게 표현한 교훈입니다. 오래 전에 한국에서 어느 교회의 찬양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집회를 인도하는 찬양대원들이 A.S.K.라는 알파벳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Ask, Seek, Knock의 첫 글자들을 모은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ASK’는 ‘구하라’는 뜻이 되니까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인디언들 사이에 기우제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도는 언제까지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비가 올 때까지”라는 게 정답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재판장과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비유를 베푸신 이유는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과부는 재판장이 성가시게 여길 정도로 계속해서 탄원하고 또 탄원했더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재판장이지만 과부의 끈질김에 지쳐서 드디어 과부의 탄원을 들어주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마치 떼를 쓰듯이 하나님께 무대뽀로 강청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귀찮아서라도 들어주신다고 오해하게 되는데, 생떼를 부리는 것과 꾸준히 기도하는 것은 전혀 결이 다릅니다. 과부의 탄원은 억지스럽게 떼를 쓴 게 아니라 재판장도 내심 인정하는 합당한 주장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구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낙심하지 말고, 중도 포기하지 않고, 응답받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끈덕지게 구하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영어 속담,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즉 “느리지만 꾸준히 해야 경주에 이긴다”는 속담에서 ‘Slow and Steady’는 비록 두 단어이지만 마치 한 단어처럼 한 묶음으로 취급해서 동사도 삼인칭 단수 ‘wins’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느리더라도 꾸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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