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잠언의 보편성과 특수성
잠언은 성문서(聖文書)로 분류되는 5권의 책, 즉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중 하나입니다. 성문서 중에서도 잠언은 욥기, 전도서와 함께 지혜문서로 분류됩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지혜를 교훈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잠언은 영어로는 ‘Proverbs’라고 하는데, 쉬운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Vulgata) 성경의 '프로베르비아'(proverbia)에서 따온 것으로 ‘속담모음집’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말 책 이름은 중국어 성경 ‘箴言’에서 유래했는데, 잠(箴)은 ‘바늘 침(鍼)’과 같은 뜻으로 병을 고치는 침과 같이 따끔하게 톡 쏘면서도 치유와 생명을 주는 촌철살인의 교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책의 히브리어 이름인 '미쉴레(מִשְלֵ)'는 일반적인 속담이나 격언이나 금언보다는 더 폭넓고 깊은 진리나 의미가 응축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잠언의 요절(要節)인 9:10(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이 보여주듯이, 잠언은 단순히 세속적인 처세술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경건한 삶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세속적인 지혜서나 자기개발서와는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잠언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두루 통하는 보편적인 지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잠언에는 얼핏 여호와 신앙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교훈들이 들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잠언의 보편성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 속담과 영어 속담을 비교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두 가지 속담을 비교해보면 우리가 예상하는 이상으로 비슷한 내용이 많이 있으며, 어떤 속담들은 문자적으로 거의 꼭 같은 것들도 없지 않습니다. 의미상으로 비슷한 예를 몇 개만 들어 본다면,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To teach a fish how to swim), 아내가 사랑스러우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한다(Love me, love my dog), 백문이 불여일견(One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 엎친 데 덮친 격이다(Adding insult to injury), 쥐 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Every dog has his day), 헌 짚신도 짝이 있다(Every Jack has his Jill) 등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쩌면 한 마디도 다르지 않고 이렇게 꼭 같을까 싶은 속담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중누각(Castle in the air), 부전자전(Like father, like son), 일석이조(Kill two birds with one stone), 무소식이 희소식(No news is good news), 이열치열(Fight fire with fire),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Mend the barn after the horse is stolen), 피는 물보다 진하다(Blood is thicker than water) 등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지혜의 보편성을 고려할 때 외견상 세속적으로 보이는 잠언의 여러 구절들에 대하여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겉으로 여호와 경외 사상이 언명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 저변에는 여호와 경외 사상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달리 말하면 세속적으로 보이는 교훈일지라도 여호와께 대한 신앙이 적용될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찰할 수 있는 소위 ‘숨겨진 지혜’까지도 갖출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잠언은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지만, 솔로몬 외에도 아굴이나 르무엘 왕, 그리고 익명의 저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주제는 크게 두 부류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것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잠언의 핵심 단어인 지혜(호크마)는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내적으로 외적으로 갖추어야 할 명철과 분별력에 대한 포괄적인 교훈입니다. 그러나 잠언의 지혜는 단순한 세상적 지식이나 사변적 학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경건에 기초한 신앙적·실천적 통찰력을 가리킵니다.
잠언에는 ‘마음’이라는 단어가 무려 99회나 등장할 정도로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음과 관련된 구절 중 가장 핵심적인 구절은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입니다. 마음은 생명의 근원이 되므로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중 으뜸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잠언에서는 100회 이상에 걸쳐 인간관계에서 언어생활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특히 언어생활과 분노의 관계를 날카롭게 지적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6:28)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26:20)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쟁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이 외에도 잠언은 생활 전반에 대하여 매우 다양한 주제들을 총망라하고 있는데, 정말로 우리의 폐부와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의 교훈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잠언은 모두 31장으로 되어 있어 매일 한 장씩 읽어나간다면 매달 우리의 삶에 길잡이가 될 가르침들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신앙상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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