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아디아포라(adiaphora) 논쟁
‘아디아포라’(adiaphora, 헬라어 ἀδιάφορα)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 또는 '해도 좋고 안 해도 괜찮은 것들'을 의미하는 헬라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 즉 그 자체로서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가치중립적인(value-free) 행위를 말합니다. 이 개념을 기독교 윤리에 적용한다면, 성경이 명시적으로 명하지도 금하지도 않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원리들이 다 나와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세세한 지침들이 낱낱이 명시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론은 나와 있지만 각론까지 다 명시돼 있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판단하고 결정하기가 매우 애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한국교회에서 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주초 문제’ 즉 술과 담배와 관련된 이슈도 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에 대해서는 독주를 마시지 말라거나 술 취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담배와 관련해서는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담배라는 기호품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것은 당연하며, 그래서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시절에도 이처럼 애매한 문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아디아포라 논쟁’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아디아포라 사안에 대해서는 각자의 책임 있는 판단과 신앙 양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칫 독선이나 독단 내지는 방종과 무절제에 치우치는 사례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방사도로서 바울은 선교현장에서 이런 성격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고, 얼핏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이 예상보다 선교에 큰 장애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몸소 겪으면서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을 제시해줄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당시 이방인들 교회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었던 제사음식 먹는 문제를 예로 들어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초기 단계에 그리스·로마(Greco-Roman) 문화권에 속해 있던 교회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을 섬기는 제사의식의 하나로 성전에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후 성전 제사는 중단했지만 제사음식 먹는 문제가 새로운 논란거리로 대두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로마서에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이 문제를 다루면서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몇 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23-24) “모든 것이 가하나(permissible) 모든 것이 유익한(beneficial)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constructive)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사실 우상이란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가공의 신이기 때문에 그것에 바쳤던 음식을 먹는다고 해서 신앙상 하등 문제가 될 일은 없지만, 아직도 믿음이 연약해서 뭔가 꺼림직하게 여기는 자들도 있을 수 있으니 그런 경우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스스로 절제하고 삼가는 것이 좋겠다는 권면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다 유익한 것이 아니며 다 덕을 세우는 것도 아니므로 때로는 건덕상 자신의 자유를 유보하거나 포기하는 것도 신앙인의 바람직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이것이 두 번째 지침입니다. 교회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라는 권면입니다. 물론 사람들에게도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 20:27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바칠 만큼 올인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정말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아내를 사랑하면 처갓집 말뚝 보고 절한다”는 말이 있고, 서양에서도 “Love me, love my pet.”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요 하나님의 소유인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며, 그것이 곧 하나님께 고임을 받고 복을 받는 비결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31)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것이 신앙생활의 세 번째 원칙입니다. 종교개혁 5대 목표 중 하나가 ‘Soli Deo Gloria!’(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입니다. 이것은 필자가 다녔던 (광나루)장로회신학대학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깔뱅은 이것을 그의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죽은 후에도 이름을 남기려 하느냐면서 자기 무덤에는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도 그의 무덤의 위치를 모릅니다. 우리가 식사기도를 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문구가 ‘먹든지 마시든지’라는 말인데, 바로 이 성경구절에서 따온 말입니다. 우리가 우상에게 바쳤던 육류를 먹든지 안 먹든지, 또 포도주를 마시든지 안 마시든지 항상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단 음식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판단의 기준과 잣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 신앙생활의 세 가지 원리를 상고해보았습니다. 아디아포라의 사안들에 대해서, 남의 유익을 앞세우고, 교회를 최우선시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면 하나님의 뜻에서 과히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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