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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헤리티지 대학교(Washington Heritage University)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사사시대의 아노미(anomie) 현상


사사시대(士師時代)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부터 왕정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약 3 세기에 걸친 이스라엘의 역사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이 시기의 시대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성경 구절은 사사기의 맨 마지막 구절입니다.

(사사기 21:25)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시대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정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면상의 원인은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2지파를 하나로 결집할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하는 중앙정부가 없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카리스마가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길러놓았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정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는 했으나 후계자를 기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 12 지파가 하나로 뭉치지 못한 채 각기 독립적으로 지리멸렬하게 행동했습니다. 간혹 지파동맹을 통해 외적을 물리치기도 했지만, 지파간에 심각한 내전을 겪은 일도 있었습니다. 일종의 동족상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이나 삼손과 같은 걸출한 지도자를 사사로 세워 위기상황을 극복하도록 도우시기는 했지만, 그들의 지도력은 제한적이었으며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가나안 원주민들과의 혼합으로 인해 바알과 아세라 등 각종 우상을 섬기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이러한 우상숭배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는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타락이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져 사회적 혼란과 범죄가 증가했습니다. 이 시대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로 평가됩니다

사사기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면 하나님은 주변국가들의 침략을 징계의 도구로 삼아 그들을 징치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워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면 또 다시 타락에 빠지는 악순환의 패턴이 반복됩니다.

사사시대는 왕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과도기를 거쳐 하나님은 마지막 사사요 선지자인 사무엘을 통해 사울 왕과 다윗 왕을 세우시고, 이어서 솔로몬 왕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왕정시대를 활짝 여셨습니다.

사사 시대의 무정부 상태는 지도자의 부재, 신앙적 타락, 분열과 혼란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무정부 상태는 규범(norm)이 작동하지 않는 아노미(anomie) 현상을 빚게 됩니다. 아노미는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전통적인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과 무질서의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어느 사회든 사회 구성원들이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준칙(準則)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회규범이라고 합니다. 이런 준칙이 무너진 상태가 아노미입니다. 아노미는 그리스어 아노미아(anomia)에서 온 말인데, 중세 이후 사용되지 않다가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이 그의 저서에서 사용하면서 근대 사회학의 용어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뒤르켐은 이 말을 일정한 사회에 있어서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아노미 상태에 빠지면 삶의 가치관과 목적의식을 잃고 심한 무력감과 자포자기에 빠지며 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됩니다.

사회의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없을 때 자칫 아노미 현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세의 탁월한 영도 아래 출애굽의 여정을 거쳤고, 여호수아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가나안 정복이라는 난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들이 없어지자 중구난방(衆口難防)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중구난방이란 “많은 사람이 제멋대로 떠드는 말은 막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법입니다. 사회에 어른이 없으면 중구난방 사회로 전락합니다. 이른바 “아버지가 없는 사회 (fatherless society)”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 언론인은 이러한 시대를 일컬어 ‘파파 알리바이(papa alibi) 시대”라고 표현한 적도 있습니다. 한때 한국사회에서는 원로로 추앙받는 분들이 계셔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지시해주는 계도자(啓導者)의 역할을 감당했는데, 이제는 그러한 어른들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 된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미국 사회도 혼란스럽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대학교 바바라 월터 교수가 지적한 대로,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흔들리는 미국은 민주국가와 독재국가 중간의 무질서를 의미하는 아노크라시(Anocracy)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 증오범죄, 총기소지권 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총기 사건은 이제 일상사가 되었으며, 코비드 백신의 부작용과 부정 투표를 위시해 각종 음모론이 확산되면서 국민들 간에 심각한 분열 양상을 낳게 되었고, 급기야 2021년 1월 6일에는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이 일어남으로써 미국의 민낯이 만천하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이제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맞아 정신 없이 쏟아내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추방과 해고의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미국 사회가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법치주의(rule of law, nomocracy)가 점차 훼손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국가들 간에도 이제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가 아니라 ‘미국 유일주의(America Only)’를 표방하면서 외교질서도 혼동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사사기의 아노미 현상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시기를 통해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고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역이 되시며, 이 세상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운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사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날 때마다 외세의 압제에 시달리며, 회개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사사를 보내어 위기를 벗어나도록 도우시는 과정이 마치 노래의 도돌이표처럼 반복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하나님을 떠나 신앙적으로 타락할 때 인간은 반드시 곤궁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또 한 가지 교훈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없을 때 백성들은 구심점을 잃은 채 방황하게 되며,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함으로써 중구난방으로 여론이 갈라지면서 사회 규범과 질서가 무너지고, 결과적으로 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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