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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한 사람의 영향력

하나님께서 정통성을 인정하신 남왕국 유다는 지도자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온 국민이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하여 이른바 부패 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당시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들어 유다를 징치하시기로 작정하시고, 예레미야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안하다.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라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 오히려 예레미야를 핍박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국운이 풍전등화에 처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눈물로 간곡하게 회개를 촉구하기도 했지만, 불길하고 기분 나쁜 예언을 언짢게 여긴 백성들이 그를 핍박하고 괴롭혔기 때문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만 했고, 그래서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까지 붙게 된 것입니다. 타락의 정도가 도를 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죽하면 ‘한 사람’을 언급하셨을까요.

(예레미야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달리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이 말씀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잘 대변해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5:19은 “한 사람이 (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1858년 미국 보스톤의 어느 교회 주일학교 교사가 구둣방에서 일하고 있던 자기 반 아이 하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주일학교 교사가 되고, 19세기 말 미국과 유럽의 영혼을 뒤흔드는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학생의 이름이 디엘 무디였습니다. 한번은 무디가 영국 런던에서 집회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그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회심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은 메이어였습니다. 메이어는 후에 무디와 함께 설교자로 미국에서 활동하는데, 그의 설교를 듣고 채프먼이 회심을 하게 됩니다. 채프먼은 메이저리그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하던 빌리 선데이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데, 그가 나중에 보스턴에서 150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빌리 선데이는 힘이라는 강사를 초청해서 노스 캐롤라이나 샬롯에서 3주 동안 집회를 열었는데, 그 집회에서 회심한 사람은 12살 먹은 소년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빌리 선데이는 매우 실망하고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이 자라서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고 회심시킨 빌리 그래함 목사였습니다. 이 일련의 실례들은 한 사람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단 1표 차이로 독일 나치당을 장악하게 되고, 1934년에는 총통에 오르게 됩니다. 그 후 그는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을 위시해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악마로 변신하고 맙니다. 단 한 사람의 표 때문에 독일 총통이 된 단 그 한 사람이 인류 역사에 끼친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하여 산상수훈에서 소금과 빛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해 매우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교훈을 주신 적이 있는데, 심지어 비신자들까지 즐겨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께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표현은 쓰시지 않았지만, 이 말씀은 선한 영향력에 관한 말씀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우리의 정체성을 밝혀주셨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을 위한’ 소금이요 빛으로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become)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소금이요 빛이라(are)는 우리의 정체성(Sein)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 즉 당위(當爲, Sollen)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금은 주로 부패를 방지하고 음식에 맛을 내는 조미료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빛은 주로 어두운 폐부를 밝히 드러내고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지시하는 선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소금이 빛보다 앞서 언급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염광중학교, 염광교회와 같은 이름들을 사용하게 됩니다. 물론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다고 딱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굳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빛의 역할에 앞서 먼저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시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선행을 드러내는 일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광내고 폼나는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일에는 자칫 소홀하기가 쉽습니다. 사실 소금의 직분만 잘 감당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단체의 이름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하겠지만, 한 사람 개인으로서도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전라남도 신안군에 중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 주민의 90%가 기독교 신자라고 합니다. 보통 섬은 미신이 성한 법인데도, 희한하게도 이 섬에는 우상 제단도 없고 미신도 사라지고 제사드리는 집도 없고 담배 판매점도 없고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도 없습니다. 문준경 여전도사님 한 분이 끼친 선한 영향력 덕분이라고 합니다. 문 전도사님은 신안군 일대의 섬마다 전도를 하여 100개가 넘는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 한 사람으로 인해 목사, 장로, 사모가 된 분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분들이 CCC 김준곤 목사, 고재식 한신대 총장, 이만신 목사, 고훈 목사, 정태기 교수 같은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전도하다가 6.25 전쟁 중에 공산당 무리들에게 순교를 당하셨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영향력이 이렇게 대단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모범적으로 보여주신 분으로서 모두의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우리는 수시로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사람’인가 아니면 본의 아니게 악한 영향력을 끼치는 ‘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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