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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동 목사의 신앙칼럼

강남중 기자

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식물(食物)을 물 위에 던지라

식물(食物)을 물 위에 던지라
대전 출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 하다 보면 성심당(聖心堂)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심당 이야기만 나오면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약 70년 전, 대전역 앞 작은 찐빵집에서 시작된 성심당은 대전 시민의 자부심과 사랑으로 꾸준히 성장하여 대전의 대표 향토기업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최근에는 수수료 인상 문제와 관련해 언론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으며, 코레일과의 유착으로 특혜를 누렸다는 어느 국회의원의 지적으로 인해 국토교통부가 관심을 가지면서 더욱 화젯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이 빵집의 창업 스토리도 덩달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고향이 함경남도인 창업자 임길순 씨는 독실한 천주교인입니다. 그는 흥남 철수 때 월남해 경남 거제시와 진해시를 거쳐 1956년 생계를 위해 가족을 데리고 가족과 함께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가, 열차 고장으로 대전에서 내리게 되었습니다. 얼떨결에 대전에서 정착하게 된 그는 살길이 막막해 대흥동 성당을 찾았는데, 주임 신부님이 구호물자로 준 밀가루 2포대를 밑천으로 대전역 앞에서 천막을 치고 찐빵 장사를 시작한 것이 성심당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초대 창업주 시절부터 "당일 생산한 빵은 당일 모두 소진한다"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신뢰를 쌓았고, 팔다가 남은 빵이 있으면 전쟁고아나 노숙인들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에게까지 나누어 줌으로써 윤리적인 경영을 한다는 좋은 평판도 얻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만든 빵 중에서 100개는 이웃에게 나누어 주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어떤 날은 빵이 워낙 잘 팔리는 바람에 기부할 빵이 없어 따로 빵을 더 만들어야 했던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성심당의 성공의 비결은 상호에서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정성껏 베푸는 삶’이었습니다. 이북에서 간신히 남한으로 피난해오면서 “남은 인생은 남에게 베풀며 살겠다”는 다짐을 성실하게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한때 화재를 당해 장사를 접으려고도 했지만, 직원들이 “잿더미 회사, 우리가 지켜 세우자!”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합심해서 재건에 나선 결과 오늘날까지 비즈니스를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직원들의 애사심에 보답하기 위해 직원 인사고과에 ‘사랑’이란 항목을 만들어 100점 만점에 40점을 배정하고, 퇴사 직원들에게는 재입사 권리도 보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도서 11:1-2을 보면, 성심당 주인의 삶이 이 성경 말씀을 그대로 입증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예전 성경에는 ‘떡’ 대신 “식물‘(食物)이라고 돼 있습니다. 음식물이란 뜻입니다. 개역성경에는 ‘떡’이라고 번역했는데, 원래 ‘빵”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요”라는 신명기 8:3에서도 ‘떡’은 ‘bread’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주식인 ‘밥’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가 늘 먹는 음식을 가리킵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음식을 물 위에 던지면 언젠가는 다시 도로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주라”는 말씀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나눠 주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장차 이 세상 일이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내가 빈궁해지면 이번에는 도리어 내가 베품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을 때 자칫 ‘give and take’ 식으로 오해할 소지도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베풀면 상대방도 나에게 베풀 것이라는 타산적인 생각, 즉 반대급부를 염두에 두고 선행을 베풀라는 뜻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맥락을 고려할 때, 그저 선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선행을 베풀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그 선행을 되돌려 받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바른 해석이며, 예수님이 주신 교훈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4:12-14)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순수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선을 베풀면, 비록 그 이웃은 우리에게 되갚을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궁극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보상(reward)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또 주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reward)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사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고 했고, 잠언 19:17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갚아주시리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룻기는 룻의 효성이나 보아스의 로맨스를 주제로 한 책이 아닙니다. 룻기의 주제는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족보에 나타나 있습니다. 보아스는 이방 여인인 룻이 시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는 것에 감복해 적극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폅니다. 그러는 중에 둘이 부부로 맺어지고, 다윗의 할아버지가 될 아들 오벳을 낳습니다.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사사기 21:25) 사사시대의 무정부 상태(anarchy)와 무질서(anomie), 그리고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뭉쳤던 불안정한 지파동맹을 끝내고 하나의 통일국가를 이룸에 있어 산파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제정일치(祭政一致)를 완성시켜야 할 이상적인 왕 다윗 계보의 정통성을 보여주려는 것이 룻기가 성경 중에서 차지하는 역할입니다. 보아스는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룻을 도왔을 뿐인데, 하나님은 그를 다윗의 계통, 나아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이을 영광스러운 인물로 높여주셨습니다. 물 위에 던진 식물이 자기 품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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