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 원로목사 / 프로필
서울대학교 영문과, 전 청소년재단 이사장, 해외한인장로회(KPCA) 총회장 역임, 현 서울장로교회 원로목사, 전 워싱턴교역자회 회장, 전 워싱턴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목회학박사과정 수료, 워싱턴신학교(WTS) 기독교교육 박사과정 이수 중, 신학교 교수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잘못
한국의 전국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과반에 해당하는 50.9%가 2022년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뽑았습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논어>에 처음 등장하는 말로서,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라고 한 공자님의 말씀에서 유래했습니다. 당리당략에 빠져 나라의 미래보다는 정쟁만 앞세우며 도무지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뻔뻔하기 그지없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를 이 말의 선정 이유로 내세웠습니다.
기독교는 회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수님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라”라는 일성(一聲)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사도 베드로가 맨 처음 전한 메시지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사도행전 2:38)는 회개의 메시지였습니다.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도 회개해야 하지만, 예수를 믿은 후에도 원죄 외에 계속 자범죄를 짓게 되므로 날마다 매순간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하나님께 자백하여 용서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원활한 영적 소통이 이루어져 기도 응답을 받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잠언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우리가 살다 보면 가끔 황당할 정도로 뻔뻔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후안무치의 끝판왕이라고 해야 할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뻔뻔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뻔한 거짓말로 밝혀졌는데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마치 얼굴에 철판을 입힌 듯 천연덕스럽게 구는 자들을 대할 때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하여 참으로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제 있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기도 합니다. 일례로, 앞 운전자가 불법 유턴을 하면 뒤에 오는 다른 차들도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따라합니다. 뻔뻔스러운 행동은 전염성이 매우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뻔뻔한 자들을 무조건 두둔하고 나서는 자들의 팬덤이 순식간에 형성되는가 하면, 이런 자들이 유투브 방송을 하기라도 하면 상식을 뛰어넘는 수퍼챗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언젠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우리 나라 정치력은 4류’라고 쓴소리를 한 것이 가끔 소환되곤 하는데, 이 비판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때로는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민망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사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과오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어느 에세이에서 언급한 “To err is human, to forgive divine.”이라는 시구(詩句)가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짓고 하나님은 용서하신다”는 뜻입니다. 죄성을 타고난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이런 연약한 체질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용서라는 은혜로운 방편을 마련해두신 것입니다.
(시편 103:8-14)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그런데 이처럼 관대하고 철저한 하나님의 용서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진실한 회개입니다. 회개(悔改)란 죄를 ‘뉘우치고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자칫 우리의 회개가 회(悔)에서 그치고 개(改)까지 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개는 인간의 세 가지 심적 요소인 지정의(知情意) 전반을 포괄할 때 진정한 회개가 됩니다. 즉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애통해하며, 고치려는 의지적 결단과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촉구했습니다((마태복음 3:8). 새벽기도회에 나와 가슴을 치면서 눈물 콧물 흘려가며 회개를 한 후 집에 돌아갈 때는 남의 집 텃밭에서 고추나 호박을 몰래 슬쩍하는 것을 목격한 어느 미국 선교사가 “한국의 성도들은 ‘회’는 있는데 ‘개’는 없다”고 신랄하게 일갈한 적이 있는데, 우리 모두 한번 스스로 냉철하게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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