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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일 칼럼

강남중 기자

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미 국무부의 답답한 행보와 한반도 문제



미합중국 국무부( 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는 미국 정부의 외교 정책을 주관하는 중앙 행정 기관이다. 현 국무장관은 제71대인 토니 블링컨 이다.

국무장관은 대통령, 부통령, 하원의장에 이은 권력 서열 4위 직책이다. 대통령 승계 순위도 그렇게 돼 있다. 외교 수장을 이 정도로 높이 대우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이라는 패권국에서 차지하는 외교정책의 비중을 알 수 있다.

토니 블링컨 현 장관이 올해 1월 취임했을 때 미국 안팎의 기대는 그야말로 높았다. 그는 부친과 숙부가 모두 대사를 지낸 외교관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유창한 프랑스어, 온화한 태도와 언행도 겸비했다. 무엇보다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나의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 불릴 정도로 신뢰가 두터워 ‘준비된 국무장관’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10개월이 흐른 지금 ‘개인’ 블링컨의 처신에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장관’ 블링컨의 업무 능력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뉴스위크 등이 ‘취임 첫해 레임덕’까지 거론할 정도로 지지율이 떨어진 바이든 행정부의 난맥상이 주로 대외 문제에서 비롯된 탓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 오커스(AUKUS·미국 영국 호주 안보협의체) 창설 및 이에 따른 잠수함 계약 파기에 대한 프랑스의 반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중 대면 정상회담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보도, 중국과 러시아만 도와주는 꼴이라며 동맹이 반발하는데도 굳이 추진하고 있는 ‘핵무기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 등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다.

블링컨의 현주소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의 동맹에도 상당한 고민을 안긴다. 기업인에다 워싱턴 정치 경력이 전무한 대통령, 4선 하원의원 출신의 정치인 국무장관이 있었던 트럼프 행정부 시절과 달리 상원의원 36년과 부통령 8년을 외교 전문가로 지냈다고 자처하는 대통령, 외교관 중 외교관으로 불렸던 장관이 등장했어도 미국의 외교정책, 우리로서는 한반도 정책이 특히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고 그 난맥상을 노정한다.

오늘만 해도 하원의원 23명이 대통령과 국무장관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종전선언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에 적극 나서라는 촉구를 했다는 보도가 크게 보도됐다. 또 이수혁 주미대사는 9일 “종전선언 문제와 관련해 한·미 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선언 문안까지 의견을 교환하고 있을 정도로 종전선언과 관련해 적극적이고 창의적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긍정적인 발언을 했지만 아직 국무부의 실제 반응은 원론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링컨은 상원 인준 당시 전체 100표 중 78표를 얻었다. 전임자 폼페이오보다 21표나 더 얻은 것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무너진 미국 외교를 재건하라는 미국 사회의 기대가 그만큼 높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벌써부터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블링컨의 사퇴를 거론한다. 폭스뉴스의 칼럼니스트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할 수 없다면 사임하라. 중국의 도전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국무장관의 약하고 무기력한 지도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가 장관직을 얼마나 더 수행할지는 알 수 없으나 인준 때의 기대에 부응하려면 환골탈태 수준의 전략 변경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국무부 수뇌부는 장관과 2명의 부장관, 6명의 차관으로 구성된다. 차관 아래 차관보는 한국 외교부로 치면 국장급이다. 그런데 차관 업무 범위가 넓어 개별국가에 대한 현안들은 차관보들이 직접 챙긴다. 그러다보니 미·중·일 관계를 비롯해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정권의 정통성이 취약하던 1960~80년대 한국 정부에 대한 동아·태차관보의 위상은 대단했다. 발언 한마디 한마디가 큰 뉴스거리였다. 국무장관 이름은 몰라도 동아·태차관보 이름은 귀에 익었다.

역대 차관보 중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리처드 홀브룩이다. 1979년 10·26 박정희 암살에 이어 신군부의 12·12쿠데타와 맞닥뜨린 게 그다. 그는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정치일정에 관여했으며, 12·12쿠데타 직후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에게 신군부를 견제하는 입장을 취하도록 했다. 최근 인물로는 주한 미 대사를 지내기도 했던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있다. 그는 2000년대 초·중반 베이징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로 상당한 역할을 했다. 대북 강경 노선을 유지했던 부시 행정부하에서도 협상파답게 2005년 북핵 해결 포괄적 원칙을 담은 9·19성명 채택을 주도했다.

이란 가운데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현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10일 방한해 이재명·윤석열 후보와 차례로 만난다고 한다. 미 국무부 차관보들이 여야 후보들을 만나는 일은 전에도 있었다. 주한 미 대사들이 대선 후보들을 수시로 만났으니 그보다 상급자인 차관보가 만나는 것에 이상할 게 없었으리라. 그런데 이번 크리튼브링크 차관보의 대선 후보 만남을 불편하게 보는 해석들이 나온다.

국장급 인사가 대선 후보를 공개 면담하는 것이 격에 맞느냐거나 문재인 정부를 홀대한다는 시각이다. 미국은 물론 대선 후보들도 미국으로부터 존중을 받고자 하는 한국민의 뜻을 좀 더 살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국무부의 분전, 달라진 모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