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차별과 질시는 실력과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는 한국인, 한국에서는 일본인으로 취급받습니다."
나고 자란 일본 땅에서 조국 대한민국에 메달을 바친 재일교포 3세 안창림(27)의 첫 마디였다.
안창림은 26일 일본 유도의 성지 도쿄 부도깐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73㎏급에서 투혼의 동메달을 딴 뒤 취재진과 자리에서 이처럼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경계인(境界人)으로서의 애환을 겪는 재일교포 들의 이야기부터 꺼냈다.
부도깐 무도관은 1964년 첫 번째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지어진 종합 무예 경기장이다. 도쿄에서 태어난 안창민은 2013년 이곳에서 전일본학생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정상에 올랐다. 이 우승이 차별과 질시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안창림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일본에서 나왔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귀화하지 않았다. 가라테 사범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가라테를 배우기 시작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유도로 종목을 바꾸었다. 그는 일본에서 살면서 단 한 번도 일본인이었던 적이 없었전 그가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은 대가는 작지 않았다.일 일본에서 '국기(國技)'격의 위상을 갖는 유도에 입문한 뒤에는 더 그랬다.

쓰쿠바대학에 합격하여 2013년에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게 된다. 같은 해 11월에 열린 단체전에서도 우승하여 2관왕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국적이 한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정작 중요한 대회는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2014년 11월 대한민국에 들어와 용인대학교 3학년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수원시청 소속이다. 안창림의 말대로 한국에서의 적응 또한 쉽지 않았지만 이를 실력으로 이겨내고 2014년부터 7년간 태극마크를 유지하며 한국 유도의 간판이 됐다. 하지만 올림픽 메달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지만 16강전에서 패했다.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결승전에 올랐지만 유독 그를 일본 유도계의 배신자로 점찍은 일본선수에게 패해 금메달은 놓쳤다.
이번 올림픽에서 그는 애증이 서려있는 부도깡에서의 메딜 획득을 다짐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준결승까지 밀어붙였다. 하지만 간단치 않았다. 모두 피말리는 연장 승부였다. 32강전에서 금메달리스트 파비오 바실(이탈리아)과 연장 끝에 안다리후리기 절반승을 거뒀다. 16강전에서는 키크마틸로크 투라에프(우즈베키스탄)와 접전을 벌이다 부딪혀 코피까지 나는 그야말로 혈투를 펼쳤다. 역시 골든 스코어 끝에 승리한 안창림은 8강전에서도 토하르 부트불(이스라엘)과 연장 승부에서 이겼다. 이처럼 거듭된 연장전은 준결승에서 그의 발목을 잡았다. 상대적으로 체력을 비축한 라샤 샤브다투시빌리(조지아)와 접전을 펼쳤다. 그는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샤브다투시빌리를 쉽게 놓아주지 았다. 정규시간 4분에 골든스코어에서 4분 37초를 더 뛰었지만 골든스코어 47초에 소극적인 공격을 했다며 지도 한 개를 받았고, 4분 37초에 마지막 지도를 받아 패했다.
안창림은 8강전부터 입을 벌린 채 거친 숨을 몰아쳤다. 16강전에서 코를 다친 탓이다. 상대가 조르기 공격을 시도하면서 안창림의 안면을 팔꿈치로 가격했다. 안창림은 코피가 터졌다. 경기 후 응급처치로 출혈은 멈췄다. 하지만 코 속에 피딱지가 생기면서 호흡이 불편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선 전 경기를 골든 스코어(연장전) 승부를 벌이느라 체력을 전부 소진했다.
안창림은 정규시간 4분인 경기를 32강전을 8분 33초. 16강전은 6분 26초, 8강전도 8분 13초로 혈투였다.
정훈 전 유도 전문가들은 "유도는 순간적으로 힘을 쏟아야 하는 종목이라서 코와 입으로 동시에 호흡해야 한다. 제때 숨을 내쉬거나 들이쉬지 못할 경우 가슴에 통증이 오고 호흡이 가빠져 제 기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쉴 새 없이 업어치기를 시도하는 안창림이 신기할 정도다. 정신력으로 버틴 투혼의 동메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병역 의무도 지고 있는데,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면서 대체 복무를 하게 됐다. 이 경우에는 기꺼이 박수를 치고 싶다.
동메달을 획득한 후 송대남 코치와 눈물의 포옹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의 애환이 얼마간은 녹았지만 차별과 질시는 실력과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는 교훈을 이국땅에서 살고있는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