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극명하게 드러난 세대교체와 변화를 바라는 한국 민심

세계적으로 보수 정당이 각성했을때 각 나라는 긍정적으로 발전 했다. 월남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만신창이 가 된 미국을 다시 세운것은 레이건 보수 정권이었다. 독일의 통일은 진보계열 사민당에서 불을 지폈지만 정작 이를 달성것은 보수 기민당 정권이었다. 혼란스럽던 프랑스도 시라크 우익정권 때 안정을 찾았다. 영국도 만성 영국병을 치유 했던 시기가 보수 대처 수상 시대였다.
모국 한국의 보수 제1야당 국민의 힘 ‘첫 30대 당대표’라는 파란을 써낸 이준석 돌풍은 한국 국민들의 세대 교체 열망을 확인하면서 모국에서의 보수정당의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30대 이준석 신임 대표가 선거 초반부터 여론조사 1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만들었던 이유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으로 집약 될 수 있다. 특히 보수 야당의 경우 지난해 총선 실패, 서울과 부산시장 당선 등의 사례가 국민의힘 당원들에게 변해야 산다는 학습 효과를 제공했다. 이렇게 야당의 당심도 민심에 가세하면서 ‘이준석 돌풍’은 태풍이 됐고 오늘의 결과를 만들었던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심이 세대 교체를 원하는 민심을 좇아 중도·청년을 겨냥한 전략적 투표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출마선언을 할 때부터 세대교체 상징으로 부각됐다. 경선 선거 초반만해도 검사출신 초선인 김웅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으며 세대 교체의 대표 선수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이 대표가 당대표 출마 의사를 밝히자 여론은 이 대표로 쏠렸다. 예비 경선에서 그에게 표가 집중되면서 반강제적인 신진 단일화 효과도 나타났다.
표 쏠림 현상은 50·60대 중심의 당을 탈바꿈한다는 목표에서 이 대표가 적임자라고 국민과 당원들이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대표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서 뉴미디어본부장으로 활동하며 청년을 유세차에 세우는 청년층 공략을 효과적으로 해냈던 것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선 승리를 위한 중도, 청년 공략을 위해 가장 젊고,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후보를 당심과 민심이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국민의힘 대표경선에 몰아친 바람을 ‘이준석 열풍’이라 불러 그 개인이 유독 강조되는 건 정확하지 않고. 이준석은 바람을 시각적으로 드러나게 한 바람개비일 뿐이라는 지적 일리가 있다.

이번 국민의힘 당대표 선출 득표상화을 분석해보면 이 같은 흐름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이준석 돌풍’을 당대표로 현실화한 결정적 요소는 ‘민심’이었다. 이 후보의 당원·일반 여론조사 득표율을 보면, 당원 투표에서 37.4%를 얻어 나 후보(40.9%)보다 3.5%포인트 뒤쳐졌다. 하지만 여론조사에선 이 대표가 58.8%를 얻어 28.3%를 얻은 나 후보의 2배를 훌쩍 넘겼다. 당원 투표 70%, 일반 여론조사 30% 반영되는데 상황에서 당원 지지는 떨어졌지만 국민들에게서 지지를 더 많이 받아 당선된 것이다.
민심은 당심까지도 이끌었다. 이 대표가 당원 투표에서 나 후보에 비해 2등을 했지만 나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주호영, 조경태, 홍문표 후보에 비해선 당원 투표에서도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이는 당원들도 정권교체를 위해 세대교체라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세대교체라는 시대적 변화 요구를 따라야 내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1야당의 사령탑을 맡게 된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경험이 없는 이른바 ‘0선’이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 경력은 올해로 10년째를 맞는다.
이 신임 대표가 정치권에 처음 발을 들인 건 2011년 12월이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비대위 외부 영입위원으로 지명하면서다. 청년 창업 벤처기업 ‘클라세 스튜디오’ 대표였던 그는 당시 26세였다. 미국 하버드대 졸업 후 저소득층 학생 대상 무료 과외 봉사단체인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활동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이 대표는 출신 학교로도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과학고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 대표는 ‘박근혜 비대위’를 통해 정치권에 잠시 발을 담그는 데 그치지 않고 비대위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해왔다. ‘박근혜 비대위’에 발탁됐지만 그는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자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이 대표는 이번 전당대회 기간 대구·경북(TK)를 찾아 “ 정치권에 영입해 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감사한 마음이지만, 탄핵은 정당했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회의원 선거에는 3번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이 신임 대표는 국민의힘으로선 ‘험지’로 분류되는 서울 노원병에서만 출마했다. 그는 노원구 상계동에서 출생했다.
이 대표의 정치적 지향점은 합리적 보수에 놓을 수 있다. 2019년 출간한 자신의 에세이집 제목을 ‘공정한 경쟁’이라고 지었을 정도로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미국 독일 프란스등 각 선진국에서 보수가 각성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을때 나라가 크게 발전 했다는 예를 곱씹어 보면서 이준석 대표로 상징되는 보수의 변화 관심을 지니고 지켜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