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프로이드 일주기 변하지 않은 상황

“나는 지금 18살. 1년 전과는 다른 사람이죠. 어린시절의 일부를 빼앗겼고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만 그일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주었고 진실을 밝힐 수 있었던 내 자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플로이드는 늘 내 마음 속에 있을 거예요.”
2020년 5월 25일, 바로 일년전 어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길거리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에게 목이 짓눌려 사망하는 장면을 촬영해 세상에 알린 고교생 다넬라 프레이저가 25일 플로이드 사망 1주기를 맞아 자신의 페이스북올린 추도사의 한부분이다.
“1년 전 오늘 저는 살인을 목격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에서 프레이저는 플로이드의 죽음을 목격한 순간을 서술했다. 그는 “그때 나는 겨우 17살이었고 9살 사촌동생을 데리고 가게로 걸어가던 평범한 날이었습니다. 내가 보게 될 것에 대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심지어 그순간을 통해 제 인생이 바뀌게 될 지도 몰랐습니다”라고 썼다. 프레이저는 “눈앞에서 바로 몇 피트 떨어진 곳이었고 그 남자가 누구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그의 목숨이 위중하고 그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방어할 힘이 없이 위험에 처한 흑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썼다.
프레이저의 영상은 세계적인 흑인인권시위 BLM 운동을 촉발시켰고, 데릭 쇼빈 경찰관이 살인혐의로 기소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지난 3월 열린 쇼빈의 재판에서 트레이저는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하며 “플로이드가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그를 살리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꼈고, 매일 밤 울면서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고 말했다. 쇼빈은 지난 4월 재판에서 2급 살인 혐의 등에 배심원 만장일치로 유죄평결을 받았다.
하지만 “숨쉴 수 없다”고 수없아 외쳤던 플로이드의 1주기를 맞았지만 경찰도 법도 바뀐 게 없다는 지적이 크게 터져 나오고 있다.
사건 후에도 미국에선 한 달에 약 100명이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특히 흑인 등 유색인종 사망자 비율은 인구 비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전국지 USA투데이는 23일 “수많은 미국인들이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그의 이름을 외쳐 불렀지만, 정작 그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경찰에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 실태를 보도했다.
경찰의 과잉 폭력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통계를 추적하는 단체인 ‘경찰폭력 지도만들기’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동안 경찰의 총이나 차량 등에 의해 숨진 사람은 모두 1127명에 달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발생했다. 살해당한 1127명 가운데 흑인은 27%였다. 미국 전체 인구 중 흑인이 차지하는 비중인 13%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미국 인구의 17%를 차지하는 히스패닉계 사망자도 21%를 차지했다. 반면 전체 인구의 63%를 차지하는 백인 사망자 비율은 50%에 미치지 않았다. 유색인종 사망자 특히 흑인 사망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알 수 있다. 플로이드의 유족들이 며 시민 사회단체가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을 끊고 더 이상 제2, 제3의 플로이드를 만들지 않으려면 의회가 경찰개혁 법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하는 이유다.
물론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일부 주에서는 경찰의 인종차별적 공권력 집행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기는 했다. 콜로라도주는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경찰이 업무상 과실을 저질러도 기소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면책권의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으로 콜로라도 경찰은 최대 2만5000달러의 민사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에서 경찰 개혁법안은 그때그때의 요구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논의되고 있다고 미 주요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일부 주에서 긴급수색영장 발부 제한을 검토하기 시작하거나, 무릎으로 목을 누르는 행위만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식이다.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주나 오하이오주 등에서는 이러한 수준의 논의조차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다. 플로리다주는 오히려 지난 4월 시위자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만 통과시켰다.
연방의회 차원에서 일관성 있는 경찰개혁 법안을 마련하려는 노력도 지지부진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가 합의안을 도출해 줄 것을 압박해왔지만 의회는 특히 공화당측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플로이드의 유족들은 1주기를 맞은 어제도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경찰 면책 특권 폐지를 재차 요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플로이드 유족에게 사망 1주기까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민주당 소속 상·하원 지도부가 지난해 6월 내놓은 법안은 아직도 상원 통과가 요원한 상태다. 공화당은 공권력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법안 내용에 반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어제 트위터에 “플로이드의 유족은 대단한 용기를 보여줬다”며 “ 데릭 쇼빈의 유죄 판결은 정의로 가는 단계지만, 여기서 우리가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변곡점에 도달했고 행동해야만 한다”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사법 단죄에 이어 법안 통과를 통한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의회는 언제까지 논의 중이라는 말만 하고 있을 것이냐”면서 “연구와 논의는 그만하고 당장 법을 시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BLM 에 이어 STAH 스탑 아시안 헤이트를 외치고 있는 우리들의 요구도 같다. 결연히 행동에 나서야 한다. 역시 정치 참여가 그 해답이자 첩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