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일 프로필
뉴욕 K 라디오 방송위원, 재외동포저널 이사, 하이유에스코리아 칼럼니스트
빌게이츠 부부의 이혼소식과 부부관계의 정도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사람의 조상은 원래 남녀가 합해진 양성체라고 한다. 몸은 둥글고, 손발이 합하여 네쌍, 얼굴이 둘이었으며, 등은 함께 붙어 있었다. 반듯하게 걸을 수도 있고, 8개의 손발을 이용해 땅을 짚고 굴러다닐 수도 있고, 아주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었다. 머리가 둘이라 지능도 뛰어난 인간은 자존심이 강해 신들에게 함부로 대들기도 했다. 신들은 인간의 무례함에 화를 내기도 하고,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신들의 불만이 커지자 신의 총수인 제우스는 결국 사람을 둘로 나누기로 결정했다. 둘로 나누어질 경우 신체나 지적 기능이 훨씬 더 약해질 것이고, 신들이 상대하기 훨씬 쉬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남녀로 구분됐으며, 원래 한몸이었던 남녀는 예전처럼 하나가 되려 서로 다른 반쪽을 찾게 됐다고 전해진다.
우리식 촌수로 보면 부모와 자녀 사이는 일촌, 형제자매는 이촌, 아버지 형제자매와는 삼촌이다. 그런데 부부 사이는 촌수가 없어 무촌이다. 혈연이 아니라 사랑과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가 부부인 것이다. 가장 친밀한 관계지만 또한 언제든 이혼으로 촌수가 없는 남이 된다는 의미다.
게이츠·멀린다 게이츠 부부의 이혼 발표는 세계의 충격이었다. 뜻이 가장 잘 맞는 동반자, 동지의 모습으로 자선과 사회공헌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활동을 적극 펼쳐온 터라 이혼 소식은 놀랍다. 이들은 재단을 통해 세계의 빈곤·질병 퇴치와 어린이 교육 등에 앞장섰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맞서 백신개발에 1조원 넘게 지원했고, 지금까지 각 분야에 60조원이 넘는 금액을 내놓았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자선활동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두 사람의 이혼이 향후 재단 활동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호사가들 사이에선 대뜸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과 확인되지 않은 빌 게이츠의 예전 여자관계에 관심사 이지만 부부관계라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지켜가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바른 자세다.
두 사람은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 사내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멀린다는 빌 게이츠가 1975년 세운 이 회사의 마케팅 담당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멀린다는 2019년 회고록에서 멀린다는 “당시 사내 직원들끼리 저녁 자리가 있었는데 좀 늦었더니 모든 테이블이 채워져 있었고 딱 한 테이블에 두 자리가 나란히 비어 있었다”며 “내가 그중 하나에 앉았고, 몇 분 뒤에 빌이 와서 옆자리를 차지했다”고 썼다. 몇 개월 뒤 빌 게이츠는 데이트 신청을 했고 둘은 연인 사이가 됐다.

멀린다는 빌이 수학게임에서 자신이 빌을 이긴게 결정적이 계기였다고 했다. 사귄 지 1년 정도 지나 빌 게이츠는 결혼할지, 헤어질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멀린다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빌의 침실로 들어가 보니 그가 방 화이트보드에 결혼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 리스트를 만들어 적어 놓았었다”고 회고했다. 빌은 자신이 결혼을 결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해줬다고 했다.
알려진 대로 두사람은 94년 하와이에서 세기의 결혼식을 했고 그동안 최고의 모범부부로 인식되면서 27년을 잘 지내왔던 것으로 여겨 졌지만 실상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둘의 관계에 본격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수년 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지인들을 인용해 둘의 부부 관계가 붕괴될 뻔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계속 함께 지내기로 하고 이혼을 참아왔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빌 게이츠가 MS와 버크셔해서웨이 이사회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그동안의 회고와 인터뷰 등을 종합하면 갈등의 원인은 평범한 부부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멀린다는 결혼 25주년이던 2019년 인터뷰에서 “빌이 하루 16시간씩 일하느라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어떤 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우리 결혼 생활이 힘들어 ‘내가 정말 이 생활을 할 수 있나’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멀린다는 결혼 생활 초기 첫아이를 낳은 뒤에도 남편이 일에만 열중해 외로움 때문에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고도 했다.
재단 운영 과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멀린다가 빌 게이츠에게 재단의 연례 서한을 앞으로는 공동 집필하자고 제안했는데 거부당했고 이 때문에 싸우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혼 전까지 멀린다가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한 긴 여정이 있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이혼을 발표하며 “더 이상 부부로서는 성장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성장’이란 단어가 낯설면서도 유독 다가온다. ‘부부는 무촌’인 데서 보듯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다. 남녀가 만나 서로를 인정·배려·사랑하며 존중하는 관계를 통해 부부는 저마다의 삶을 만들어간다.
‘따로 또 같이’ 서로가 성장하는 것이다. 부부의 연은 끊더라도 지금처럼 자웅 합체까지는 못되더라도 손을 모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빌과 멀린다가 되길 기대하는 것이 전세계 사람들의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