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미국 학교 선생님들의 촌지

# 선생님에 보낸 돌아온 선물
이민 온 지 1년 된 40대 초반의 B 씨.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붉어진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을 둔 B 씨는 미국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들 선생님에 보낼 선물을 정성스럽게 쌌다. 그리곤 카드와 함께 ‘선물’을 넣어 아이들에 들려 선생님들께 보냈다.
한 작은 선물용 백 안에는 100달러짜리 기프트 카드가, 또 다른 백에는 샤넬 향수가 들어 있었다.

물론 땡큐 카드에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덧붙여 자식들이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돼 영어도 제대로 못하고 학교 수업도 따라가지 못하니 아이들에 신경을 좀 써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다음 날이었어요. 두 선생님한테 연락이 와서 무슨 일인가 해서 부랴부랴 학교로 갔지요. 선생님이 제가 준 선물을 돌려주면서 이건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아니, 그리 큰 선물도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선생님은 정색을 하고 돌려주는 겁니다.
그때서야 미안하다고, 미국 문화를 잘 몰라서 그랬다고 사과를 했어요. 집에 돌아오는데 낯이 화끈거리데요. 인사를 잘 한다고 한 게 오히려 무안하게 된 거죠.”

# 인기 선물 1위는
한국에서 갓 온 이민자들이 흔히 겪는 실수담이다.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 부모라면 크리스마스나 5월 첫째 주 화요일인 스승의 날, 추수감사절 같은 특별한 날에 선생님들에게 드릴 선물 때문에 고민한다.
물론 뭘 선물할까 하며 고민은 하지만 크게 부담스럽기보다 쇼핑하면서 고르는 재미도 쏠쏠 하다.
퍼레이드 매거진이란 잡지에서 Teacher's Day에 선생님들이 좋아하는 베스트와 워스트 선물을 선정한 적이 있다. 베스트 선물의 1위는 직접 손으로 쓴 땡큐 카드였다.
두 번째는 스타벅스 같은 커피숍 카드다. 세 번째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교육용 잡지 구독권이었다. 모두 20달러 안팎의 가격대에 소박한 물품이다.

가장 나쁜 선물로는 머그컵, 자잘한 장식품, 집에서 만든 쿠키 등 음식이 꼽혔다.
보통 학부모들이 학교 선생님들에게 주는 선물은 20달러 안팎이 대부분이다. 물론 10달러에서 많게는 50달러짜리 선물을 주는 학부모들도 없진 않다.

선물은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시하는 성의이지 촌지나 뇌물 성격은 아니다. 선물을 주지 않았다고 아이를 차별하는 선생님도 없고 비싼 선물을 했다고 아이를 더 귀여워하거나 특혜를 주는 선생님도 없다.
그저 고마움에 대한 성의 표시인 것이다.

# 한국 아줌마들의 치맛바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물 풍조에 변화가 생겨났다. 한국에서 조기교육 열풍이 불며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에 몰려오던 2000년대 들어서다.

기러기 가족이란 이름으로 불린 이들은 대체로 엄마는 ESL 코스에 등록하고 자녀들은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미국생활에 적응해나갔다. 남편은 한국에서 일하며 적지 않은 생활비를 보내야 했다.
한 때는 워싱턴 인근에만 ‘기러기 가족’이 5천명을 헤아렸다. 물론 학생만 미국에 보내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한인 주부들 중에는 이들 조기 유학생들을 겨냥해 하숙을 겸한 돌봄 서비스업을 해 짭짤하게 부수입을 올리는 이도 적지 않았다.
먹고 살만 하고 한국식 교육문화에 익숙한 일부 엄마들의 치맛바람은 여기서도 예외가 없었다. 명절이나 기회가 되면 현금 100달러, 50달러짜리 상품권, 고가의 스카프와 보석 등의 선물을 뿌려댔다.

사립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이 더 심한 편이었다. 수백 달러 상당의 상품권 카드나 태블릿 PC인 아이패드를 선물하는 이들도 있었다.
# 뉴욕타임스의 촌지 보도
한국 아줌마들의 선물공세가 얼마나 지나쳤는지 2003년 5월 뉴욕타임스는 일부 한국계 부모들이 교사들에게 현금, 상품권, 보석 등을 선물해 선생님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후한 선물일수록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더 많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미국에서는 사과 한 개가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을 상징할 정도로 문화적 차이가 크다~ 한인 부모들의 `후한' 선물이 미국인 선생님들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선물이 도가 지나치고 학교에서도 소문이 나면서 미국에 오래 산 한인 학부모들도 발끈했다. 소박한 학교 선생님들의 물을 흐려놓는다는 것이었다.
“제발 미국 학교 분위기 좀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의만 표시하면 되지 자기 아이들 잘 봐달라고 촌지처럼 고액의 선물을 하는 학부모는 한국 엄마들뿐이에요. 그러니 한국 학부모들을 이상하게 봐요. 괴물처럼요. 착한 선생님들 스포일(Spoil: 망치는 행위)시키는 거나 마찬가지요.”


# 선물 상한제 도입
한국 엄마들이 교사에게 고가의 선물을 하는 일이 급증하면서 문제가 되자 2013년 워싱턴 교외의 알링턴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교사에게 주는 선물의 금액 한도를 100달러로 제한하는 선물 상한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한 가정에서 1년간 학교 관계자에게 할 수 있는 선물 총액이 100달러를 넘겨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이 카운티뿐만 아니라 워싱턴 인근의 페어팩스카운티, 몽고메리 카운티 등에서는 선물의 한도를 1년에 50달러나 학생들의 손 편지로 제한하고 있다. 이들 카운티는 미국의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곳으로 한인들이 사는 동네이기도 하다.

또 대부분의 주에서는 50달러가 넘는 선물이나 기프트카드를 받으면 반드시 교장에게 보고하게끔 해놓았다.
선생님들의 연봉이래야 초봉이 4만 달러정도다. 세금 떼고 나면 한 달에 손에 쥐는 건 2천500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전체 교사들의 평균 연봉도 5만 달러가 조금 넘는다.
그러니 박봉에 생활이 넉넉지 않음은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도 촌지나 비싼 선물 같은데 한눈을 파는 선생님들은 거의 없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갖는 이들이 교사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월급이나 선물보다 더 큰 가치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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