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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미국 공무원은 왜 부정부패가 적을까?

공무원들의 부패를 막는 시스템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청사 내부

미국에 살면서 경이로운 것 중의 하나가 일선 공무원들이다. 박봉에 시달리기는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인데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되는 이들이 별로 없다.

한 때 한국에서는 자동차를 운전하다 교통위반으로 적발되면 교통경관에게 뇌물을 주고 무마하는 게 다반사였다. 돈을 주는 사람도, 받는 경관도 당연하다는 풍조였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이 없겠지만 말이다.

미국에서는 교통위반에 적발되어도 아무도 경찰관에게 뇌물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경관도 돈을 받으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다.

경찰관은 차를 세운 후 운전석으로 다가와 운전면허증을 받아 순찰차로 가서 신원과 기록 조회를 하는 것으로 끝이다. 그리고 티켓을 발부한다. 그 종이에는 언제 무슨 이유로 적발했으며 언제 법정으로 나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 건축허가, 소방과 위생단속

또 공무원 비리 중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각종 건축 등 인허가 과정이나 단속과정에서 저질러지는 비리다.

하지만 미국에서 건축 허가는 절차에 따라 진행하면 되는 일이다. 급행료를 내지 않아도, 술대접을 하지 않아도, 금품을 건네지 않아도 규정만 지키면 만사 오케이다.

비즈니스 업소에 대한 소방 점검도 마찬가지다. 식당의 위생 검사도, 뒷거래 없는 사회가 미국이다. 귀찮기는 하지만 법이 정해놓은 규정만 지키면 손해 볼 일 없다.

소방차 내부를 견학하는 아이들

C 선배는 서울에서 건설과 환경 관련 비즈니스를 운영하다 자녀들 때문에 워싱턴을 오가며 사시는 분이다. 여러 사업을 경험한 분이라 한번은 서울의 실정을 물어본 적이 있다.

“요즘 비즈니스 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이 뭡니까?”
“아직도 공무원들이야.”

“예? 공무원들이 왜요?”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돈이 안 들어가면 일이 진척이 안 돼. 또 연줄이나 빽이 없으면 힘들어. 자기만 비즈니스를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C 선배는 고개를 흔들었다. 서울에서 명문고등학교와 명문대를 나와 재벌기업에서 근무했던 그에게도 한국은 여전히 녹록치 않은 곳이다. 그는 서울에서의 사업을 접고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이 사업하기 훨씬 좋아. 하라는 대로만 하면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고, 접대 안 해도 되고, 시비 거는 사람도 없고 머리 아플 일이 없어. 그저 나만 열심히 하면 돼. 이처럼 비즈니스 하기 좋은 데가 어디 있겠어.”

일레인 차오 전 노동부장관



# 공무원 부패방지 시스템

물론 미국의 공무원들에게도 편의제공이나 특혜 제공 같은 ‘비리’는 있다. 가령 임산부나 휠체어에 의존한 고령의 민원인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다만 아무런 대가 없이 선의의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 공무원들이 특별히 착하거나 청렴해서 부정부패가 적은 것일까. 물론 정직이란 가치관이 머릿속 깊이 배어 있다는 점도 작용하겠지만 공무원들의 비리를 막으려는 다양한 제도적 규제 시스템이 더 크게 작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국사위인 래리 호건 메릴랜드 주지사 부부

대표적인 게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 방지법'(Bribery, Graft and Conflict of Interest Act)이다. 1962년 제정된 이 법은 공직자들의 뇌물 수수 등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만약 공직자가 공무 수행과 관련해 금품을 수령하면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거나, 25만 달러의 벌금형과 징역형을 모두 받게 된다. 만에 하나 유혹에 넘어간다면 강력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연방 행정부는 1970년대 말 설립한 정부윤리청(OGE, US Office of Government Ethics)이란 독립된 부패 감시기구를 두어 운영하고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수퍼바이저들

이 정부윤리청에서는 약 2만2천여 명의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등록 관련 업무도 맡고 있다. 만약 어떤 공직자가 자신의 업무와 이해가 상충될 수 있는 보직을 맡게 된다면 임명 후 3개월 이내에 재산을 처분하게 하거나 신탁 등의 조치를 하도록 한다.

또 공직자가 로비스트를 만난다면 만난 일시와 사유를 기록하고 내용을 반드시 공개하게끔 해놓았다. 공무원이 퇴직할 경우에는 자신의 업무와 연관돼 이익을 취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또 행정부 공무원들에 연간 1시간씩 윤리교육 과정을 통해 공직자가 지녀야 할 윤리규정을 숙지시키고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 보건국 직원



# 평생직장과 은퇴연금

깨끗한 공직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이 같은 제도적 노력 외에도 만에 하나 비리를 저질렀을 경우 그 공무원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손실도 만만찮다.

미국의 공무원들은 박봉이지만 다양한 베네핏(혜택)을 받고 있다. 미국인들이 가장 골머리 아파하는 의료보험, 치과보험, 생명보험 등을 제공하며 정년퇴직이 없다.

특별히 사고를 치지 않으면 자기가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정년인 것이다. 나이가 70살이 되어도 좇아내지 않을 만큼 평생직장인 것이다.

특히 ‘은퇴 연금’을 빼놓을 수 없다. 정부기관이나 직종마다 다르지만 보통 20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 후 자신이 받던 급여의 60%가량이 매달 연금으로 나온다. 그러니 퇴직해도 편안히 여생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새론 불로바 페어팩스 카운티 수퍼바이저회 의장의 은퇴식

만약 공무원이 비리로 적발되면 사법처리는 물론이고 퇴직 연금까지 포기해야 한다. 평생 쌓아온 노후 보장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 돈 몇 푼에 눈감아주고 하겠는가.

연방 특허청에서 25년을 일한 50대의 S 씨는 “공무원이 비록 월급은 적지만 커뮤니티에 봉사한다는 자긍심도 있고 또 베네핏이 좋다”며 “그런 생각들이 의식의 저변에 깔려 있기에 웬만해서는 부정부패에 발을 담그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