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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있는 그대로 둬라', 미국인들의 자연보호 정신

'있는 그대로 둬라', 미국인들의 자연보호 정신


셰넌도어 공원의 하늘길인 스카이 라인.

워싱턴 지역 사람들에게 뗄 수 없는 곳이 셰넌도어 국립공원(Shenandoah National Park)이다. 워싱턴 D.C.에서 120km 떨어진 곳으로 1시간30분이면 당도한다.

특히 700미터-1,000미터의 산 능선을 따라 길을 낸 스카이라인 드라이브(Skyline Drive)가 있어 서울의 북한산처럼 누구나 차를 타고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명소다. 그래서 미국인은 물론 한인들도 피크닉이나 산행을 위해 많이들 찾는다.

# 캠핑장에서 생긴 일

이 공원에는 4개의 큰 캠핑장이 있다. 오래 전의 일이다. 9월 초순의 노동절 연휴에 이 캠핑장을 찾은 적이 있다. 해발 8백 미터 높이의 산정의 숲에는 수백 개의 캠핑 사이트가 있었다.

텐트를 치고 저녁이 되자 우리 일행은 캠프파이어를 하려고 인근의 숲을 뒤졌다. 나뭇가지를 구해 오려는 것이었다. 근처를 지나던 한 미국인이 그걸 보더니 한마디를 던졌다.
“여기서 나무 하면 안 되는 걸로 아는데요.”

모두들 금시초문이라 당황스러웠다. 나뭇가지를 잘라 불을 때면 안 된다니…. 결국 공원 사무소를 찾아가 물어보았다.

“이 근처의 나무로 캠프파이어 하면 안 되나요?”
“떨어진 나뭇가지 말고는 여기 있는 나무는 손대면 안 돼요. 캠프파이어용 우드(Wood)는 공원에서 따로 파는 데가 있습니다. 꼭 파는 나무만 사용해야 해요. 그리고 밖에서 가져오는 나무도 안 됩니다.”

사무소를 나서자 한 일행이 툴툴거렸다.
“이 사람들, 나무 장사하려고 자기들이 파는 것만 쓰라고 하는 것 아니야.”

그런데 알고 보니 자연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외부에서 가져오는 나무에 기생충이나 벌레가 있어 자칫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정된 장소에서 파는 나무만 사용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 편리함보다는 자연 그대로

외부 나무의 반입조차 금지하는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걸 보고 놀랐지만 미국에서 등산을 하다보면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높은 산이든 동네의 공원이든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길을 낸다. 아무리 등산객이 많아도 산길을 넓히거나 거치적거리는 바위를 부수거나 인위적으로 왜곡하지 않는다.

조그만 개울이 있으면 인근의 쓰러진 나무로 다리를 만들어 다니게 한다. 조금 큰 개울이 나오면 나무로 만든 천연 다리를 놓는다. 사람들의 편리함보다 자연을 그대로 놔두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공원의 나무 다리.

예전에 서울의 북한산을 올랐을 때다. 바위로 된 정상인 백운대에 사람들이 오르기 쉽게 바위를 쪼개 길을 내고 쇠사슬로 철책을 둘러놓은 걸 보았다. 물론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이지만 꼭 자연의 원형을 훼손하면서까지 정상에 모두가 올라야 하나, 하는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공원 직원이 여러 동물의 모피를 전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 자원봉사자들의 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호하려는 세심한 정책은 비단 공무원들만이 아니다. 민간인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자원봉사단체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생태계를 원형 그대로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6월쯤 워싱턴 근교로 산행을 갔다. 북쪽의 캐나다 접경의 메인 주에서부터 남부의 조지아 주까지 연결되는 애팔래치안 트레일 코스였다. 숲이 우걱해지며 산새가 노래하는 초하의 산길은 비경이었다.

그런데 산길에 풀들이 흩어져 있는 게 보였다. 칼 같은 도구로 잘라놓은 듯 보여 이상하게 여겼다. 한참을 가다보니 두 사람의 미국인이 보였다. 그들이 길옆에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어놓은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길을 막고 있는 쓰러진 나무도 도끼와 전기톱으로 잘라내었다. 처음에는 산림청이나 공원 직원인 줄 알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좋은 날씨네요.” “예.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지요” “그런데 공무원이신가요?” “아 그게 아니라 우리는 포토맥 클럽 회원들입니다. 잠시 나와서 봉사하는 거지요.”

그들은 애팔래치안 산맥 민간 자연보호 단체인 포토맥 클럽의 회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가 사는 근처 트레일 코스를 구간별로 나뉘어 맡아 비가 오면 패인 산길도 정비하고, 물길도 내주고, 풀도 베고, 나무도 정리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 등산로는 30여개의 등산 클럽에 의해 보호, 유지 되고 있다.
아무도 그들을 지켜보지 않지만 묵묵히 자연사랑을 실천하는 진짜 자연인들이었다.





# 산삼캐다 봉변당하다

미국의 대다수의 주에서는 공원 내의 나무와 식물 등 산림자원을 채취하거나 훼손하는 일도 불법으로 막고 있다. 또 다람쥐, 토끼, 뱀 등 야생 동물을 해치는 것 역시 불법으로 못하게 한다.
공원에서 어떠한 것도 외부로 반출할 수 없으며 자연 상태에서 돌 하나, 풀 한 포기도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공원의 경찰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인저(park ranger)들은 초가을이면 비상이 걸린다. 8월 중순부터 9월말까지 산삼 채취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이면 셰넌도어 공원의 한적한 숲에서는 많은 야생 산삼이 빨간 열매를 피운다. 평소와 달리 식별이 용이해지기에 불법 산삼 채취도 이 시기에 집중된다.


야생산삼의 열매와 잎

레인저들도 한인들이 산삼 애호가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시기면 수시로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붙들어 가방 검사를 하기도 한다. 물론 주 타깃은 한인들이다. 이 무렵이면 누구누구가 산삼을 캐서 가방에 넣어 오다 적발돼 몇 천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심지어는 구속될 수도 있다고 한다.

천연자원국(NRD)의 한 관계자는 단속을 강화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산삼은 연방정부가 보호식물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는데도 불법 산삼 채취가 많아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십 수 년 후에는 씨가 마를 것이다.”

산삼 불법채취가 얼마나 극성을 부리는가 하면 2000년대 중반에는 당국이 함정수사를 벌여 100여명의 한인들을 체포해 당시 워싱턴 지역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당시 버지니아 주 공원관리국 경찰과 연방수사국(FBI) 등은 셰넌도어 국립공원 근처에 위장업소를 내고 한인 신문 등에 산삼과 웅담을 구할 수 있다는 광고를 냈다. 무려 3년의 함정수사를 벌였다.



이 광고를 보고 이 위장업소에 들러 산삼과 웅담을 구매한 한인들은 모두 체포됐다. 억울한 측면도 있다. 당국에서 유인 광고를 내고 찾아온 사람들을 적발한 것이다.

일부 기소는 증거 불충분 등으로 기각됐으나 104명의 한인은 수 개월간 재판을 받은 뒤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검찰과의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 법정 밖 합의)’을 통해 죄를 인정하는 대신 건당 1,500달러의 벌금형을 택했다.

2014년에는 산삼을 불법 채취하던 미국인 심마니 수십 명이 적발된 일도 있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단속반이 11명의 심마니를 불법 채취혐의로 체포하고, 암시장에서 밀거래되는 산삼 190파운드를 압수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은 산삼 불법 채취가 급증한 건 중국에서의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미국의 대 중국 인삼 수출물량이 공식적으로는 2,690만 달러이지만, 암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물량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야생 깻잎이 군집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 공원에서 쑥캐던 할머니는

산삼은 물론이고 얼마나 지독한가 하면 공원의 풀 한포기도 마음대로 뜯지 못하게 한다. 대표적인 게 봄철 입맛을 돋우는 쑥이나 고사리, 여름철의 야생 깻잎 같은 것들이다.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나 있지만 눈 호강만 하고 그냥 지나쳐야 한다.


“공원에서 쑥 뜯지 마세요.”
몽고메리 카운티의 공원에 가면 이런 팻말을 발견하곤 한다. 그런데 영어와 함께 한국말로도 적어 놓았다.

이 한국어 금지팻말이 꽤 오래 전부터 붙어 있는 데는 사연이 있다. 2005년의 일이다. 워싱턴 포스트 지는 6월3일 한인들의 쑥 채취 문화를 보도했다. 몽고메리 카운티에 사는 한인 할머니인 L씨가 공원에서 무성히 자라고 있는 쑥을 캐들고 기뻐하는 사진과 함께 보도한 것이다.

이 신문은 한인들은 쑥을 떡 또는 국에 넣어 먹거나 통증 완화를 위한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해 채취하며 이 같은 식물 채취는 문화충돌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즉 미국인들에게는 잡초에 불과한 쑥이 한인들에게는 친숙한 먹을거리로 고향에 대한 정겨운 추억을 되살려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공원관리국 관계자들은 한인들에게 쑥 같은 식물 채취가 얼마나 심각한 공원 재산 훼손인가를 어떻게 알려주어야 하는 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즉 대다수 한인들이 왜 공원에서 식물을 채취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 모르며 특히 나이가 많은 노년층일수록 전혀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다.



공원에서 쑥 등을 불법 채취하는 한인들로 골머리를 앓아 오던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 공원국은 수도권지역 공원 계획 관리국 관계자들과 ‘쑥에 관련된 회의’를 갖고 “공원 이용 규정(Regulation) 교육 및 계몽”에 대해 토론했다. 이 자리에서는 해당 아시안 언어로 규정을 써서 부착하는 방법과 자원봉사자 활용 방법 등이 논의됐다.

그리고 공원내 식물 불법 채취 금지령을 내리고 앞으로는 벌금형 등 법적인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아무 것도 건들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산이나 들에서 봄이면 나물을 뜯곤 하던 문화에 익숙한 한인들이 미국의 법 규정을 몰라 낭패를 겪는 일은 다반사다.


어느 공원 근처에 있는 양귀비의 붉은 꽃.

공원의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자연 그대로 보호하려는 미국인들의 노력을 보면 경탄스럽다. ‘있는 그대로 두어라.’는 미국인들의 자연보호 정신을 한마디로 압축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