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갔다 총 맞는다: 미국의 사생활보호와 ‘캐슬 독트린’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의 타운 홈 동네.
# 남의 집이 무서운 나라
“혹시 집 찾는다고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 문을 두드리거나 하지 마세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동료들이 햇병아리가 걱정이 되었는지 들려준 충고다. 이 조언이 한동안 낯설게 느껴진 것은 한국에서는 길을 가다 잘 모르면 근처의 집에 들러 길을 묻곤 했기 때문이다.
“일본 유학생이 할로윈 데이 때 사탕 받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어떤 집 주인에게 총을 맞아 죽은 일이 있었어요. 집주인이 다가오지 말라고 ‘freeze’라고 했는데 그 학생은 ‘please’라고 잘못 알아들었고 결국 집주인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답니다. 나중에 집주인은 무죄로 판결이 났어요.”
그 말을 듣고 미국은 무서운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비극적 사고에는 영어 능력과 함께 미국 법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깔려 있다.
# 사생활 침해 방지 장치
미국의 대다수의 주에서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이란 형법상의 원칙이 있다. 직역하면 ‘성(城)의 원칙’인데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성, 즉 사생활 보호구역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남의 집에 주인의 허락 없이 들어와 위협하는 사람에게는 무기를 사용해 대응해도 괜찮다는 법 논리가 적용된다.

성 같은 부자들의 별장
심지어 미국의 헌법은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한 장치도 만들어놓았다. 수정헌법 4조인데 정부에 의한 부당한 수색, 체포, 압수에 대하여 신체, 가택, 서류 및 동산의 안전을 보장받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영장 청구 없이는 개인의 집을 수색할 수 없으며 만일 영장이 없다면 반드시 주인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한마디로 국민의 프라이버시 기본권을 보장한 것이다.

버지니아의 조용한 동네 모습

# 왜 낯선 이를 두려워할까?
‘캐슬 독트린’이란 독특한 원칙이 있는 것은 이 같은 사생활 보호 측면과 함께 총기 소지의 자유가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와도 밀접하다. 미국의 대부분의 집들은 담이 없다. 설령 담장이 있어도 나무로 만든 낮은 장식용일 뿐이다.
잔디가 있는 넓은 마당과 함께 집이 오픈되어 있는 상태인 만큼 낯선 사람이 집 문을 두드리는 것도 집 주인에게는 경계와 긴장감을 갖게 해준다. 미국에서 30년을 산 P씨의 이야기다.
“낯선 사람이 집 근처에 어슬렁거리면 우선 경계심을 갖고 보게 되요. 그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라도 위협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까 아무래도 조심하게 되죠.”

대부분의 미국 주택가는 같은 동네 사람들 외에는 거의 왕래가 없다. 우체부나 아마존 등 배달 회사 직원들 말고는 외부 인사들이 오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총 맞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캐슬 독트린’은 바로 이러한 미국사회의 특성이 반영된 정당방위(Self Defense)의 원칙으로 워싱턴 인근의 메릴랜드와 버지니아 등 미국의 23개 주에서 채택하고 있다.

총격사건이 일어나자 경찰서장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정당방위 확대시킨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
그런데 이 독트린보다 더 정당방위의 범위를 확대시킨 법이 있다. ‘Stand Your Ground’ 법이다. 의역하면 “물러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경우 총기 등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해놓았다. 집은 물론 바깥의 공공장소 어디에서든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면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준 것이다.
이는 2005년 플로리다 주에서 처음으로 정당방위의 개념을 집 바깥으로 확대해석하면서 앨라배마 등 30개 주 이상에서 도입했다. 정당방위의 범위를 집으로 제한한 ‘캐슬 독트린’보다 그 범위를 넓힌 것이다.
그동안 이 법은 ‘생명의 위협’에 대한 해석 차이를 두고 논란이 있어 왔다.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될 수 있는 자의적 조항에 가까워 애매하고 악용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총격사건이 일어난 현장을 폴리스 라인이 막고 있다.
# 몬태나 주 유학생 사건
2014년 몬태나 주의 소방관인 마커스 카마 씨는 자신의 집 차고에서 17살짜리 독일인 교환학생을 산탄총으로 쏴 죽인 혐의로 기소됐다.
그의 미용사와 동거녀의 진술에 따르면 카마는 도둑을 잡기 위해 사흘 동안 유인책을 쓰며 기다렸다. 일부러 지갑을 차고 안에 떨어트려 두고 차고 문을 열어놓았다. 게다가 비디오카메라까지 설치해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 독일 학생이 들어오자 산탄총을 갖고 나와 네 차례나 쏘아 사살한 것이다.
그런데 집주인이 자택 침입을 유도한 뒤에 사살한 것이 정당한가를 놓고 시끄러웠다. 그는 수사관들에게 지난주에 두 차례나 도둑을 맞았다고 항변했다. 자신과 집을 지키기 위한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의 변호사는 ‘캐슬 독트린(Castle Doctrine’을 들며 카마의 무죄를 주장했다. 2009년 통과된 몬태나 주의 법은 외부 침입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으면 총기사용이 정당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그의 정당방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듬해 법원에서 7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공교롭게도 갓 서른의 카마 씨는 어머니가 한국인이었다.

피살자를 추모하는 꽃

# 미국 달군 지머먼 사건
이 사건에 앞서 2012년에는 플로리다에서 이른바 지머먼 사건이 일어나 미국을 뜨겁게 했다. 자율 방범대원이던 지머먼이 동네를 순찰하던 중 낯선 흑인 청소년을 발견하고 수상하게 여긴 끝에 몸싸움을 벌이다 사살한 것이다.
17살의 그 청소년은 아버지의 약혼자가 있던 주택가를 배회하고 있던 중이었다. 지머먼은 그 흑인소년이 자신을 먼저 공격했다고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그의 변호인들도 ‘Stand Your Ground’ 법을 들어 자기 방어를 위해 불가피했다고 변론을 폈다.
논란의 초점은 지머먼이 정당방위 주장이 합당한 것이었느냐는 점이다. 그러려면 흑인 청소년이 그만큼 위협적인 행동을 했어야 했다.

가정집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현장을 막는 경찰
하지만 법원은 지머먼에 무죄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미 전국에서 흑인들의 규탄 시위가 이어졌다. 또한 ‘Stand Your Ground’ 법의 적용범위가 너무 넓고 인종차별로 악용될 소지가 많아 축소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플로리다 주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직 루이지애나 주에서만 그 시도가 성공했을 뿐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26개 주에서 ‘Stand Your Ground’ 법이 통용되고 있다.
# 정당방위와 ‘duty to retreat’
물론 스탠드 유어 그라운드 법이 있다고 해서 모든 방어 살인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생명이 위협 받지 않는 상황에서 과도한 방어를 하면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물론 각 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고 그 해석에도 논란이 있지만 말이다.

사격장에서 권총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법의 과도한 적용을 막기 위해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또 다른 안전장치를 마련해놓았다. 바로 ‘duty to retreat’ 조항이다. 의역하면 ‘몸을 피할 의무’ 같은 의미다.
가령 누군가 자기에게 가해를 하려 한다면 우선 충돌을 피하고 물러나라는 개념이다. 물론 총을 들고 쏘려고 하는 즉각적인 위협 상황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정당방위 차원에서 누군가를 죽였다면 먼저 자신이 그와의 충돌이나 위협으로부터 피하려는 노력을 했는가를 증명해야 한다.
이 ‘duty to retreat’는 메릴랜드와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 15개 주에서 적용하고 있다.

버지니아 주의 오래된 시골 동네 모습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선량하다. 설령 외부인이 자신의 마당에 허락 없이 들어오거나 현관문을 두드린다고 해서 함부로 총을 쏘지는 않는다.
다만 백인 인종주의자들이나 아니면 강절도 등의 피해로 두려움에 빠져 있는 집의 영역에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재수 없으면 황천 행을 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살다보면 인명은 때론 재천(在天)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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