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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왜 백인들은 그토록 흑인들을 싫어하는 걸까?: 미국 인종차별의 배경


링컨기념관의 링컨 동상

# 링컨과 킹 목사의 연설
링컨의 노예해방이 끝이 아니었다. 백인과 흑인은 여전히 서로 딴 세상에서 살았다.
식당 정문에는 버젓이 이런 무도한 간판을 걸어놓고 영업을 했다.

“흑인과 개의 출입을 금지한다(No blacks and dogs are allowed).”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이 있었던 현장.
1960년대 들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민권운동에 불을 붙였다. 1963년 8월28일, 늦더위가 한참이던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에는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들었다.

링컨 기념관 앞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저항의 아이콘 밥 딜런은 ‘초라한 노병’을 노래했고 반전 평화운동가이기도 한 여가수 존 바에즈가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노래를 부르자 25만 명이 합창을 했다.

젊은 목사 킹은 즉흥연설을 시작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나라가 깨어나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명한 진리를 믿는 미국 신념의 참된 의미를 지키며 살아가는 꿈입니다.”

백악관에서 TV로 집회를 시청하던 케네디 대통령마저 짧은 감탄사를 날렸다.
“정말 끝내주게 잘 하는군.”

이듬해인 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은 민권법을 통과시켰다.
교육, 주택, 접객업소, 직장 등 모든 공공장소에서 차별을 금지시키는 법이다. 링컨의 노예해방 이후 100년 만에 인종차별에 법적인 종식이 가해졌다.

다음 해인 65년에는 흑인 투표권법이 발효됐다. 흑인들도 비로소 미국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링컨기념관 전경



# 인종차별의 네가지 이유
흑인들은 법적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 킹의 꿈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21세기 들어서도 사회적 불평등의 잔재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바라보는 인종차별의 뿌리는 그만큼 깊은 것이다.

그런데 왜 백인들은 흑인들을 그토록 싫어하는 걸까? 이 물음의 답은 영 궁색할 수밖에 없다.
사실을 말했다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 못한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백인들의 인종주의적 사고만을 비판할 뿐이다.
인종 문제를 제대로 짚으려면 백인과 흑인, 양 측면을 다 봐야 그 본질에 접근할 수가 있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

# 유색인종 싫어하는 인종주의
그 첫 번째는 인종주의(racism)다. 백인(이 글에서의 백인은 전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들은 유색인종들을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흔히 기독교문화에서는 검은 색을 상서롭지 않은 색으로 생각해왔다.

성경의 첫 장에는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하기 전에는 짙은 어둠만이 존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심지어 “검은 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또 백인들은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다. 흑인은 노예의 자손이고 본래 열등하며 자신들은 선택받은 인종이라는 것이다. 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y)다.

유색인종을 생리적으로 싫어하다보니 백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그 촌극을 잘 묘사했다.

2012년 노스다코다의 한 농촌마을에 나타난 사내는 인근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불과 20여호 남짓한 작은 마을이었다. 이 새 이웃은 백인만의 공화국을 만들려 의도했다.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하나둘씩 부동산을 매입해 들어갔다. 알고 보니 그는 캐나다에서 인종차별 문제로 도망 온 범죄자였다. 시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예의주시했다.

“자기 나라에서 밀려나고 있는 우리 백인들에게 자신감을 되찾아 주길 바란다. 우리는 이 중대한 사회학적 변화에 대해 매우, 매우 인내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플랜에 대해 백인 국가주의자들만의 공동 커뮤니티를 설립하자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들은 동네 술집 주인 네티 키터링은 “우린 정말 그것을 싫어한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동네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알았을 때부터 그의 시도는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백인들도 노골적인 그의 계획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여러 인종의 보이스카웃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 "흑인들은 못배우고 게으르고 폭력적"
두 번째는 흑인들(이 글에서의 백인은 전체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이 “못 배우고 게으르고 폭력적”이란 선입견이다. 백인들만이 아니다. 한국인이나 다른 인종들도 그런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 선입관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 선입견은 편견일까, 아니면 일부 맞는 대목이 있는 걸까. 먼저 흑인들의 교육실태를 들여다보자.
흔히 흑인 학생들은 백인이나 아시안 등 다른 인종보다 교육열이 낮고 대학 진학률도 낮다.

연방 교육부 등이 2019년 미국 청소년들의 교육수준에 관한 통계를 낸 적이 있다. 만 18세에서 22세 사이의 미국 청년들 중에 44%가 2년제를 포함해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종별로 교육수준을 보면 백인은 18.5%가 중학교 이하 졸업자이며 아시안은 4.4%에 불과했다. 그런데 흑인은 23.1%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2014년 미 연방교육부는 전국의 공립학교와 유치원 9만7천여 곳에서 학생 징계 결과를 보고한 내용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한 번 이상 정학을 당한 학생들 가운데 흑인 학생의 비율은 42%나 됐다. 이들 학교에서 차지하는 흑인학생들의 비율은 18%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여기에 더해 흑인 학생들은 백인 학생들에 비해 정학이나 퇴학 등 징계를 3배 이상 많이 받았다.

2012-2013 교육연도의 학생들의 평균 고등학교 졸업률은 81.4%였다. 그중에서 아시안 학생이 가장 높은 88.7%였으며 백인 86.6%, 히스패닉 75.2%, 그리고 흑인 학생은 70.7%로 가장 낮았다.

흑인 학생들의 졸업률이 낮은 건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교육부는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흑인이든 다른 인종이든 저소득층 가정의 학생들의 졸업률이 공통적으로 낮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강남 8학군이라는 페어팩스 카운티의 교육위원장을 지낸 문일룡 변호사의 말이다.

“흑인과 백인 학생들 사이의 학력 차이 문제는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뿐만 아니라 미 전역에 걸쳐 오래 전부터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로 부각되어 왔다~

학생들의 가정이나 주위환경에 현저한 차이가 존재하는 한, 학력 차이가 교육당국의 노력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음을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거론하는데 있어서는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흑인촌의 가게

# "흑인들은 게으르다"
워싱턴은 물론 인근에서 장사를 해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흑인 종업원을 쓰면 골치가 아프다."
그 말은 성실하지 않고 통제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 젊은 여자 흑인을 고용했는데 일도 제대로 않고 말도 잘 듣지 않아 고생했어요. 잘못하다간 인종차별로 고발당할까봐 참고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전에도 그런 경험이 많았는데 직원 구하기가 워낙 힘들다보니 걔를 쓴 건데..."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K는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전체 흑인들이 그런 건 아니다. 정상적인 교육 받고 기업이나 관공서에 다니는 흑인들을 보면 그런 편견이 틀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엄연히 게으른 흑인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많은 고용주들이 그들이 사회경제적 룰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 "흑인은 폭력적" 이란 생각
네 번째는 흑인은 폭력적이란 인식이다. 아시안은 물론 백인들에게 흑인들은 흔히 범죄와 연관 지어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범법자라는 인식이다.

거리를 배회하는 일부 흑인 청년들을 보면 건들건들하는 게 마치 불량배처럼 보이고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모양새다.
"흑인 성인 남성이라면 한번쯤 쇼핑 몰에서 경비원에게 이유 없이 붙잡힌 적이 있다."

오죽했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안타까운 말을 했을까. 그들의 태도, 행동에는 범법자라는 선입관을 주는 요인이 없지 않다.

그러다보니 경찰관들이 흑인들에게 더 공격적으로 비쳐진다.
진짜로 경찰은 흑인을 차별적으로 대하는가? 이 질문에 많은 통계는 '그렇다'는 답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보수 뉴스채널 폭스뉴스의 간판 진행자인 터커 카슨이 워싱턴 포스트 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경찰관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용의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9년 경찰에 의한 총격사망 1,004건 가운데, 802건의 케이스가 경찰관과 용의자의 인종이 파악됐다. 그 중 사망한 371명이 백인이었고, 흑인은 236명이었다~ 그리고 흑인 용의자들이 백인 용의자들보다 무장을 한 케이스가 훨씬 더 많았다.”

즉 경찰에 의해 사살된 숫자가 백인이 흑인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흑인들은 총에 맞을 당시 무장상태가 더 많았다.
'War on Cops'(경찰에 대한 전쟁)의 저자인 헤더 맥도널드는 흑인들이 경찰의 총격에 노출되는 이유는 그만큼 흑인들의 강력범죄율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흑인들은 미국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지만 2018년 미국에서 벌어진 53%의 살인, 60%의 강도 사건의 용의자를 흑인들이 차지했다.”
인구 13%인 흑인들의 범죄율이 높기 때문에 경찰에 맞아죽을 확률도 높다는 것이다.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란 단체가 있다. 미국에서도 유명한 흑인권익단체다. 그 웹 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마약 때문에 체포된 사람 중 29%가 흑인이었고 수감된 사람 중에선 33%나 됐다.

잘 아는 한인 경찰관과 술 한 잔 하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경찰은 흑인들에게 유달리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다. 인종차별을 한다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다. 경찰관 중에도 흑인들이 많이 있다. 만약에 흑인만 차별적으로 법 집행을 한다면 그들이 동조할까? 경찰도 범죄자들이나 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체포할 때 자신이 다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흑인들은 경찰의 요구에 잘 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 주머니에서 칼이나 총을 꺼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더 강력하게 진압하거나 체포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경찰의 문제만 아니라 흑인들도 자신들의 태도를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 흑인들의 힘에 대한 두려움
백인들의 저변에 깔려 있는 흑인 공포심도 들 수 있다. 흑인들은 노예로 잡혀올 때부터 건장한 흑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들을 목화농장에서 부려먹은 백인 농장주들은 흑인 노예들의 힘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시작했다.

그 정신의 유습이 아직도 백인들의 심리 깊숙한 곳에서 남아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자기가 부리던 머슴의 힘을 아는 상전이 잠재적으로 갖고 있는 불안감이다. 그 불안감이 흑인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차별’의 원인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흑인들의 대다수는 선량하고 낙천적이다.

# 오바마 시대 거치며 백인들 불만 증폭

백인들의 흑인들에 대한 반감은 오바마 대통령 시대를 거치며 증폭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흑인 최초의 대통령을 맞은 흑인들은 신이 났지만 백인들은 잠자코 지켜만 보았다. 흑인이 미국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콜버트 킹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를 향한 증오와 추악함, 나쁜 그 어떤 것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주체는 백인들이었다. 특히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개혁에 대해 백인 중산층들은 반발했다. 자신들의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를 털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생각인데 바로 그들이 흑인들이다.

백인들은 오바마 시대에 흑인들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또 사석에서 만나는 백인들은 오바마가 공공연하게 흑인 편을 든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불만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자칫 인종문제로 비화할까 입을 닫았을 뿐이다. 인종주의자로 몰릴까봐서다.

트럼프의 당선에는 말 못하고 참았던 백인들의 불만이 투영된 측면도 있다. 물론 흑인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다 옳은 건 아니다.

인종문제를 막는 사회, 법적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
인종 차별 문제는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약자에 대한 차별은 인간의 본능 중의 하나다. 그렇기에 그 성향을 어떤 사회적, 교육적, 심리적, 법적 장치로 제어하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편견을 배제하고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이 존중 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고 서로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흑인들 중에도 인간성 좋고 훌륭한 사람들은 많다. 괜찮은 사람들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