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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의 흑인촌은 어떻게 생겼을까


미 의회 건물, 이 앞쪽과 왼쪽에 워싱턴의 흑인촌이 있다.

# 의회 바로 뒤가 흑인촌
한때 내가 다니던 회사 사무실은 워싱턴 DC의 북쪽에 있었다. 매일 출퇴근길에 펜타곤 옆을 지나 포토맥 강 위를 지나는 14가로 접어들면 왼편에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이 보이고 바로 다운타운이 나온다.
잠시 후 의회와 기차역인 유니언 스테이션 옆을 지나 북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채 3분도 안 돼 거리의 풍경은 확 바뀐다.
말로만 듣던 흑인촌이다. 깨끗하고 품위 있는 건물과 거리는 지저분하고 낡은 건물들도 대신해 있다.
집과 건물들은 화려한 페인트로 치장돼 있고 담벼락마다 알 수 없는 난해한 암호 같은 그림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쇠 철망으로 유리를 막은 동네 수퍼마켓 앞에는 껄렁하게 보이는 흑인들이 삼삼오오 담장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거나 맥주병을 들고 있다. 음산하고 폐허 같은 극적인 대비다.
어떻게 미국의 심장부인 의회 바로 뒤편에 이런 흑인촌이 있을 수 있는지 놀랐다. 한 번 더 놀란 건 미국에 오래 산 동료들의 말을 듣고서다.
“요즘 워싱턴 DC의 인구가 예전보다 줄어 60만 명가량 되는데 그 중에 약 70% 정도가 흑인입니다.”
미국의 수도에 흑인이 그렇게 많이 사는 줄 몰랐던 것이다.
물론 2000년대 들어 도심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지금은 높은 임대료에 밀린 흑인들이 시 외곽으로 많이들 이사를 갔다. DC 인구도 늘어 2020년 현재 70만 명 중에 흑인 주민의 비율은 45.5%, 백인 비율은 42.2% 수준으로 비슷해졌다.

흑인촌의 모습

# 도시로 몰려든 흑인들
흑인들이 워싱턴 DC로 본격적으로 몰려든 것은 1960년대부터다.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을 거치며 민권법이 통과하면서 각종 차별이 없어지자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가난해서 승용차가 없던 흑인들은 대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쉬운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들이다.
물론 그들은 배우지 못했고 일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조그마한 가게 사장님이든 번듯한 회사의 사장님이든 흑인들을 종업원으로 채용하기를 꺼려했다. 특별히 그들의 인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흑인들은 전문적인 기술도 배움도 없었으며 또 성실하지 못하고 게으르다는 인식도 팽배해 있었다.
도시로 오면 뭔가 더 나은 삶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지만 흑인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자신들을 보는 눈도 곱지 않았다. 희망이 없다는 건 곧 절망적인 삶으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흑인촌에서 만나는 그들의 하루는 대개 비슷하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동네 수퍼마켓이나 술집 근처에서 배회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빈민들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푸드 스탬프(Food Stamp: 마켓에서 식품과 바꿀 수 있는 쿠폰 같은 것이다)가 그들에겐 용돈이다. 동네 마트에다 주고 맥주로 바꿔 마신다. 물론 불법이다.
그렇게 산 맥주를 안주도 없이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며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또 어떤 녀석들은 마약에 취해 비틀거린다. 거리에서 보는 흑인들의 삶을 보면 왜 저들이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거리의 상점 앞에서 배회하는 흑인들



# 백인들은 워싱턴 근교로 밀려나
도시에 흑인들이 하나둘 이주하면서 흑인촌이 형성되어 가자 그곳에 살던 백인들은 하나둘씩 보따리를 쌌다.그리고 흑인들이 없는 워싱턴 DC의 근교로 집을 옮겼다. 워싱턴에 40년을 산 L의 말이다.
“출퇴근길은 조금 더 멀어졌지만 더 쾌적하고 안전하며 자녀들의 교육환경이 좋은 곳으로 찾아간 것이죠.”
워싱턴 DC는 한때 80만 명에 육박했으나 1970년대 들며 인구가 급격히 줄기 시작해 1990년대 말에는 60만 명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백인들이 시 외곽인 버지니아나 메릴랜드로 이주하자 한인들이나 다른 인종들도 보따리를 쌌다. 워싱턴 근교는 지하철도 거의 없고 대중교통도 불편해 흑인들이 살기에는 불편한 곳이었다.
시 외곽은 갈수록 팽창했다. 수도 서울이 강남으로 넓혀지고 과천, 분당이나 일산 등으로 퍼져나가 수도권을 만들었듯이 워싱턴 메트로폴리탄(수도권)도 커져만 갔다.
1970년대 들어 한국에서 몰려온 이민자들도 처음에는 워싱턴 DC와 가까운 근교에서 살다 80년대 들어서 백인들의 뒤를 따라 점점 더 외곽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지만 주재원이나 연구원, 학자 등을 제외한 대다수 한인 이민자들의 생업의 현장은 워싱턴 DC 안에 있었다.
한인들은 흑인촌에서 작은 수퍼마켓을 열고, 술을 파는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며, 가발 등을 파는 뷰티 서플라이를 하며 이민생활을 했다. 흑인촌에서의 장사는 가게 인수자금도 싼 데다가 백인들은 그 동네에서 장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흑인촌의 수퍼마켓

한인 이민자들은 억척스럽게, 근면하게 일했다. 아침 7시에 가게 문을 열어 밤 9시까지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다. 대부분 주 6일 일했고 심지어는 주 7일을 일하는 한인들도 있었다.
워싱턴 D.C.에서 스몰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한인 상인들은 한때 D.C.내 자영 소매업자의 65%를 점유할 정도로 막강한 상권을 형성했다.
물론 한인들은 그 동네에서 장사만 했지 가게 문을 닫으면 워싱턴 근교의 집으로 와 잠을 잤다. 흑인들은 자신들의 동네에서 주머니를 챙기는 한인들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 한국 국회의원들의 흑인촌 '방문'

DC는 흑인들의 세상이 되었다. 일부지역은 슬럼화 되어갔다. 이 도시의 밤을 접수하는 건 흑인들이다. 의회에서 도보로 불과 10분 거리면 법이 미치지 않는 흑인들의 세상이 존재한다.
미국의 대다수의 도시에서 흑인촌은 백인들이 사는 구역과 확연히 구분돼 있다. DC도 마찬가지다. 의회를 중심으로 남동쪽은 흑인촌으로 봐도 무방하다.
“사우스 이스트(South East) 지역으로는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대낮에 들어갔다가도 총 맞고 나옵니다.”
워싱턴에 오래 산 사람들은 농담처럼 그 살벌한 동네에 대해서 이야기해준다. 점잖은 흑인들조차 그 동네에는 발걸음을 잘 하지 않을 정도다.
2000년대 초반에 한국의 국회의원단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저녁에 인근의 한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을 때 그날 낮에 본 광경을 화제 삼아 이야기했다.
“워싱턴에 흑인촌이 그렇게 가까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말로만 듣던 흑인촌을 지나가는데 좀 섬뜩하더라구요.”
그들은 흑인촌을 차로 지나갔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마 흑인촌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 국회의원들이었다. 그 후에도 없었다.

워싱턴의 흑인촌이 재개발되어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 워싱턴 재개발 사업
DC의 인구가 줄고 슬럼화 하자 시 정부는 다급해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앤소니 윌리엄 시장은 인구증가책을 시정목표로 삼아 각종 재개발 규제를 철폐하고 주상복합 프로젝트를 추진해 나갔다.
옛날 서울의 달동네를 허물고 재개발하는 것과 비슷한 프로젝트였다.
비어 있는 폐가 재개발 사업인 ‘홈 어게인 프로그램’은 시내에 흩어져 있는 약 4,000채의 버려진 집들을 새로 단장, 서민들에게 싸게 임대하는 사업이다.
흉물처럼 버려진 집들을 헐고 콘도미니엄이나 고층 아파트를 지었다. 사무실용 빌딩도 늘어났다. 흑인촌은 외곽부터 점점 작아졌다.
DC의 생활환경이 개선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0년 만에 인구는 증가해 70만 명을 넘어섰으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존 흑인 주민이 재개발로 인해 주거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타 지역으로 떠나가고 젊은 백인 인구가 유입되면서 흑인 주민의 비율은 50%가 무너졌다. 상당수의 흑인들은 인근 메릴랜드의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 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가고 있다.
1990년대까지 흑인촌의 주류는 민권법 1세대들이었다. 민권법으로 인해 남부 등지에서 워싱턴으로 이주해온 이들이었다. 이는 워싱턴뿐만 아니라 미 전국의 대도시들도 대동소이하다.

흑인촌의 거리.
그들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기술도 없는 흑인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들의 자식세대들이, 그래도 초중고를 다닌 흑인들이 흑인촌의 주류가 되고 있다.
제법 교육을 받고 기술을 익힌 젊은 흑인들은 그 동네를 떠나고 있다. 이젠 늙은 1세대들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 층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머지않아 흑인촌은 점점 축소되어 갈 것이다. 흑인촌은 미국의 현대사가 만들어낸 자발적인 집단 인종 주거지이자 인종차별의 역사적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