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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워싱턴 벚꽃여행: 춤추는 꽃잎처럼 마음도 흩날리고


사진=실비아 패튼
적막했던 호숫가마다 꽃이 피었다. 겨우내 좌절했던 벚나무들의 열정은 사춘기 소년의 여드름처럼 어느 봄날 불쑥 솟았다. 순백 같기도 한 핑크빛이다.

그 벚나무들이 앓는 봄의 열병에 덩달아 인간사 숨결도 거칠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련한 한 생애의 봄날을 떠올리며 포토맥 강가로 달려간다.

사진=실비아패튼
이 꽃 기행은 흔히 타이들 베이신(潮水) 의 동북면으로부터 시작된다. D.C.의 모뉴먼트 방면에서 접근, 호수를 끼고 돈다.

시간이 충분하면 제퍼슨 기념관 앞에서 공연을 볼 수도 있고 포토맥 강변을 따라 핀 벚꽃투어를 해도 좋다.

이 벚나무들은 1912년 도쿄시가 워싱턴 D.C에 3천여그루를 기증하면서 호수와 강가에 뿌리를 내렸다한다. 그러나 한국산이란 주장이 근래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의 동양 미술사학자인 존 코벨이다.

“당초 일본에서 건너온 나무들이 다 죽자 적응력 강한 제주도 산 왕벚꽃을 새로 옮겨 심은 것이다.”

사진=실비아패튼
모뉴먼트에서 보이는 타이들 베이신은 호수가 아니라 아예 '불붙은 바다' 다. 호숫가마다 연분홍으로 출렁대는 건 꽃만이 아니다. 봄나들이 객도 물결친다.

꽃나무 아래서 마주치는 인파의 얼굴에는 또하나의 홍조꽃이 피었다. 그들의 생애에도 이렇듯 꽃잎 띄우고 지나는 때 있었을 것이다. 오늘처럼 발걸음 가벼운 날 있었을 것이다.


노년에 벚꽃 피우는 4월은 잔인하다. T.S. 엘리엇이 그랬듯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들에 생명이 시작되는 봄은 잔인하다.

안톤 체홉도 그랬다. 이 극작가가 ‘벚꽃 동산’에서 묘사한 봄도 이처럼 잔인하다.

19세기 러시아의 귀족이었던 라네프스카야 일가는 벚나무들이 찍혀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쫓겨나듯 그들의 집을 떠난다. 차르와 귀족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면서 이들도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다.

꽃나무 아래 사람들이 문득 돌아볼 황무지 같은 삶의 오늘은 비감하다. 그러나 21세기의 꽃동산으로 온 사람들은 이 비감함을 애써 외면한 채 연신 싱글벙글이다.

하얀 대리석 빛나는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 앞에서 만난 손잡은 청춘들의 체온은 욱일 상승한다.

토마스 제퍼슨 기념관
가장 아름다운 길은 역시 사랑하는 연인과의 산책이다. 가슴 두근거림이 그 길의 먼지조차 빛나게 하는 것이다.


기념관 앞은 벚꽃 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의 무대다. 매년 이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70만명의 관광객이 워싱턴 D.C.를 찾는다.

일본 문화 공연
코비드 19 팬데믹으로 2020년부터 축제의 흥과 정취는 사라졌지만 호수를 배경으로 한 무대에서는 갸부키 연극과 춤사위, 노래가 연일 흘러나왔다.

과거 축제는 이 도시의 도처에서 요란한 향연을 피운다. 컨스티튜션 애비뉴에서는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낮마다 밤마다 요리와 전시, 공연에 심포지엄이 풍성하다.

스시 앤 사케 행사장
1935년 처음 시작된 이후 축제는 온통 메이드 인 저팬으로 채워졌다. 선량한 미국인들은 60여년전 울린 공습 사이렌을 너무 빨리 잊었다. 이 대륙의 정신과 대척점에 서있던 주의(主義)의 발흥이 그들의 기억을 편리하게 했다.

이 미국의 중심에서 스시와 벚꽃만큼 일본을 잘 상징하는 건 없다. 매년 축제때마다 열리는 ‘스시와 사케 시식회’는 일본문화에 열광하는 워싱토니언들의 오늘을 보여준다.

스시 앤 사케 행사

2021년 벚꽃은 어느 해보다 장려하고 화사하다. 3월의 마른 태양은 이 꽃잎의 엽록소마다 풍부한 색소를 선물했다.
포토맥 강가에 여기저기에는 자리를 깔고 앉아 재잘대는 사람들로 정겹다. 벚꽃 놀이다.

해마다 봄, 이 강가를 찾을 때마다 아쉬운 건 바로, 찾을 수 없는 한국에서의 정취다. 서울 이들은 창경원 밤 벚꽃놀이의 추억을 읊는다. 어떤 이들은 여의도의 윤중로를 이야기한다.

사진=실비아 패튼
하지만 어떤 이들은 지리의 산 아래 쌍계사를 장식한 벚꽃을 최고로 친다. 투명한 봄날, 산사에 바람 불면 내리는 벚꽃비에서는 법열이 느껴진다.

예부터 한국인들은 벚꽃을 제대로 꽃 대접하지 않았다. 고전에 모란과 국화는 나오나 벚꽃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일본 작품마다에는 벚꽃의 냄새가 진동한다. 언제부터 한국인들이 벚꽃에 취했는지는 오리무중이다.

포토맥 강상으로는 하얀 보트와 유람선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린다. 저 보트를 바라보면서 도쿄 스미다 강에서의 크루즈 놀이를 떠올린 건 망측한 일일까.

에도 시대의 풍취가 흐르는 놀잇배에서의 벚꽃 크루즈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봄날은 역시 바람과 함께 지나간다. 나른한 봄바람에 팝콘 같은 꽃잎들이 강물위로 낙화한다.

탐 크루즈가 나온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The Last Samurai)’에서도 그랬다.
사무라이의 마지막 지도자 카츠모토가 천황 군대의 기관총에 맞아 장렬히 전사할 때, 벚꽃은 소리없이 날렸다.

사진=실비아 패튼
그리고 퇴역 미국 군인은 떨어지는 벚꽃을 응시하며 좀처럼 짓기 어려웠던 마지막 싯구를 읊조린다.
"완벽해(Perfect)…."

사진=실비아 패튼
스스로의 마음을 베는 것이 사무라이의 혼이다. 소란스레 피었다 장렬히 사라지는 벚꽃은 그 사무라이의 표상이다.

워싱턴에서 지금, 꽃은 시들어가도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