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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국칼럼

강남중 기자

워싱턴 DC는 미국의 수도이자 세계의 정치·행정 수도이다. 워싱턴 지역 동포사회 또한 이런 프레임에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정치와 민감하게 서로 교차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방미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한미 간 풍습과 제도적 차이점을 매주 월,화 【리국 칼럼】으로 전해드린다. 필명인 리국 선생님은 재미 언론인으로 오랜기간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기자이다.



이승만 대통령 “우리 집이 없어서...”/ 대통령 방미에 얽힌 일화 1

워싱턴을 처음 방문한 한국 대통령은 역시 이승만이었다. 한국전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7월26일 이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했다. 전후 한국에 대한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회담, 상하원 합동회의에서의 연설, 뉴욕에서의 ‘영웅 행진’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이승만 대통령 부부가 김포공항에서 미 군용기 트랩에 올라 환송 꽃다발을 받고 있다.



# "절대 일본땅 안 밟겠다"

이 대통령은 7월25일 오후 5시 비가 내리는 김포공항에서 미국이 제공한 군용기 편으로 장도에 올랐다.
원래 일본을 경유해야 하나, 이 박사가 절대 일본 땅을 밟지 않겠다고 고집해 비행기는 얄류산 열도의 에이댁(Adak)섬과 시애틀을 경유해 26일 오후 4시 워싱턴 공항에 도착했다.

워싱턴 공항에서 이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기록관>

# 닉슨 부통령 공항 영접

공항에서는 닉슨 부통령과 덜레스 국무장관, 래드포드 합참의장, 리지웨이 육참총장 등이 영접을 나왔다. 또 수십 명의 한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이 대통령을 환영했다.

이 대통령이 도착연설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닉슨 부통령. <사진= 대통령 기록관>

노익의 대통령은 15분간이란 긴 도착 연설에서 관례를 깼다.
“우리가 압록강까지 차지할 수 있었으나 일부 사람들이 조금 겁을 먹어 우리는 다 차려놓은 밥상을 차지할 수 없었다.”
미국이 겁을 먹어 한반도 통일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며 한방 먹인 것이다.

백악관에 도착한 이 대통령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맞이하고 있다. <사진=대통령 기록관>



# 공식 수행원은 27명

이승만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백악관 기자회견,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미 의회 연설, 대통령 주최 만찬과 각계 인사들 접견, 알링턴 국립묘지와 조지워싱턴 대통령 집 방문, 링컨기념관 방문, 주미 한국대사관에서의 환영회, 조지워싱턴 대학 명예 법학박사 학위 수여 등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이어 뉴욕과 필라델피아 방문, 콜럼비아 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여, 미 정계 인사 참석 만찬회에서 연설, 유엔(UN) 본부 방문 및 사무총장 환담, 시카고 방문,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의 트루만 전 대통령 자택 방문, 로스앤젤레스 방문 등의 일정을 마치고 호놀룰루를 거쳐 8월13일 서울에 돌아왔다.

대통령 공식 수행원은 27명이었다. 손원일 국방장관, 정일권 육참총장, 최덕신 육군작전기획부장(소장) 등 군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부부와 아이젠하워 대통령 부부



#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다툼

이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순탄치 않았다.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희망하는 미국 측의 요구에 이 대통령이 반발하자 화가 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이 대통령은 회의장을 먼저 떠나버리며 응수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못 말리는 고집과 자존심은 미국 측 인사들의 고개를 흔들게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6월28일 이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하며 30여 차례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는 트루먼 전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한국을 위기에서 구해준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 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왼편 뒤에 앳된 얼굴의 닉슨 부통령과 하원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 메이플라워 호텔에서의 만찬

이 대통령은 저녁에는 D.C.의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 부부를 위한 만찬을 베풀었다. 도착일 저녁,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베푼 국빈만찬에 대한 답례였다.

70여명을 초청한 만찬장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 집이 주미 한국 대사관이므로 아무리 궁핍할지라도 각하를 우리 집에 초대해야 마땅하나 손님에 비해 집이 너무 협소해 메이플라워에 초대했다”고 인사했다.

1925년에 문을 연 유서깊은 백악관 인근의 메이플라워 호텔.
전쟁을 막 치른 나라의 궁핍한 사정이 연설에 그대로 묻어났다.

만찬 도중에는 성악가 김자경이 ‘봉선화’ 등 한국 가곡을 불렀고 와싱톤한인교회의 황재경 목사가 악기인 톱을 연주했으며 그의 딸은 한복을 입고 고전무용을 추었다. 만찬은 밤 8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됐다.

이 대통령의 숙소는 백악관 바로 앞의 영빈관(블레어 하우스)였다.
당시 워싱턴 지역의 한인 수라 해봐야 고작 50명 남짓 하던 시절이었다. 주미대사관에서 동포 환영회를 열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